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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1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만 보면 아주 로맨틱하고 근사한 -사실은 보는 사람 닭살 돋아 죽을 것 같은- 연애사가 줄줄 흘러나올 것 같다. 살랑살랑 바람부는 봄날에 애인 팔짱끼고 길 걸어가다가 '나 잡아봐라~'할 것 같은 이런 제목이라니.. 스르륵 훑어보고 흥, 하고 콧방귀나 껴주려고 했으나 이거이거, 내용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담담하게 혹은 살짝 흥분한 채,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들려주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존재와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1년 3개월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돌아온 싱글'이 된 두 남녀는 이혼 후에도 가끔씩(아니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결혼한 호텔에서 결혼기념일마다 보내주는 50% 할인권이 아까워서 그 날 하루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만났었다. 그 호텔 스테이크가 아주 일품이라나. 아니 그깟 스테이크가 뭐라고 이혼한 부부가 다시 만나나 싶지만 사실 그런건 무시할 수 없는 일상중에 하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50%나 되는 할인권은 그냥 썩혀버리기엔 굉장히 아까운 거니까. 그 후, 그들이 예전에 자주 가던 가게에서 마주치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물건을 돌려주려고 만난다거나 혹은 자잘한 용무로 만나는 횟수가 늘다보니 그들은 어느새 '친구'라는 새로운 관계에 놓여있다. 말로는 친구관계라 하나 아직 털어내지 못한 지난 날의 오해와 응어리는 그들을 솔직하지 못하게 만든다. 자존심 때문에 표현도 못하고 서로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으르렁 거리기 일쑤인 그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생기길 응원하며 서로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기에 이른다. 그렇게 두사람은 각자의 연애를 하는듯 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은 그들의 지난 날을 돌이키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고만다. 처음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결심하고, 신혼을 즐기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들은 추억에 젖는다.
현재 방송중인,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 드라마에는 '헤어지고 시작된 이상한 연애'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헤어지고 시작된 연애라니..다소 역설적인 이 부제는 이 작품을 단 한마디로 정의하는 최상의 카피다. 게다가 그 헤어짐조차 연인사이에 으레 있을 수 있는 평범한 헤어짐이 아니다. 이혼이다. 결혼을 한 부부의 헤어짐. 서류상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는 이혼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그 헤어짐 후, 그들은 연애를 시작한다.(본인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지만...) 헤어짐의 이유야 당사자가 아닌 이상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문제겠지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여태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 생각했던 나의 사고방식에 적게나마 변화가 왔달까. 연애의 끝은 결혼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 전환점을 맞이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아직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지라 아직 결혼을 할 계획도, 할 마음도 없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진지하게 생각할 것 같다. 연애에 있어서나 결혼에 있어서나 중요한 건 관계를 지속하는 힘. 사소한 오해나 실망감을 얼마나 빨리 응어리 지지않게 풀 수 있느냐가 지속성의 관건이리라. 속으로 삭이는것만이 능사는 아니니 가끔은 큰 소리를 치고 울부짖으며 풀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달까.
아, 그리고 중요한 것!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아직 빛바랜 핑크빛의 그 어떤 감정이 손톱만큼이라도 남아있다면, 그 (혹은 그녀에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답시고 또다른 혼란속에 빠지는 꼴일테니...
아직 2권이 나오지 않은 관계로 제대로 된 감상은 힘들겠지만 일단은 독특한 설정과 전개가 마음에 든다. 각자의 입장에서 풀어쓰는 구성도 그들 나름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좋고.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드라마보다는 밋밋한 원작이다. 자고로 원작보다 나은 영상은 드물다는데, 이건 그만큼 드라마 제작진의 연출이라든가 극본이 훌륭하단 말이겠지. 게다가 1권보다 드라마의 진행이 빠르다니, 너무해. 2권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