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총 페이지수가 겨우 150쪽 남짓한 얇은 하드커버의 책이다. 그럼에도 한장한장을 넘기는 속도가 생각만큼 빠르지가 않다. 술렁술렁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에세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연애와 결혼, 사랑에 대한 수 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는 책이었다.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모를 이야기는 아주 담담하고 관조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스펙터클하고 적극적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은 '이랬다 저랬다'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지조없이 흔들렸다. 이를테면 이런거다. '결혼이란 거 한번 해볼만 한 거구나!'하다가도 '결혼같은 거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은데?' 로 바뀌는 것. 그도 그럴것이 이야기속의 화자는 결혼한 지 3년이 채 안되는 여자로, 결혼한 여자의 조금 씁쓸한 고독함과 기질적으로 자유로운 열정사이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주말은 특별한 것이다. 그녀의 모든 에너지는 주말에 거의 소모될 정도라고 하니 그녀의 '주말'이 어떤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결혼하기 전에야 남편과 만나서 데이트를 하는 날은 모두 주말 같았겠지만 결혼 후에는 그렇지 않다. 결혼은 연애가 일상이 되는 거니까. 회사에 다니는 남편의 생활은 규칙적이다. 평일에는 퇴근 후 파김치가 되어 쓰러지기 일쑤이므로 당연히 그들이 무언가를 같이 하는 날은 주말이 되는 것이다. 사실은 주말 내내 잠만 자거나, 할인 매장에 가는 정도라 해도 결혼 후,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연애할 때와는 다른 특별한 어떤 것을 느끼게 하나보다. 그것이 결혼의 묘미일까? 그렇게 매일매일이 주말같은 인생이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러면 산산조각날 인생이란 걸 어렴풋이 느끼는 여자. 그녀를 보며 나도 결혼한 여자의 일상을 잠시 꿈꾸어 보게 된다.
작품해설을 맡은 '이노우에 아레노'는 이 책을 두고 위험한 책이라고 했다. 이유는,
한창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증오를 생각하고,
증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사랑의 기억을 추억하고,
혼자인 사람은 둘이 되고 싶어하고,
둘인 사람은 혼자가 되고 싶어할 테니까.
라고 적고 있다. (p.138)
이 말에 무척 공감한다. 책을 읽는 동안 지조없이 흔들리는 마음속에 한 번씩 떠올렸던 것들이기 때문에.
내 경우 결국은 사랑의 추억을 기억하고, 둘이 되고 싶어하는 쪽이므로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느낀 것들을 햇빛 쨍쨍한 오후처럼 나른하게, 혹은 별빛 가득한 밤처럼 감성적으로 써낸 글들이다. 나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 그럼에도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맞춰주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생활패턴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 평범한 일상이 시시해보이기는 커녕, 행복해보여 부럽기까지 한 걸 보니 아무래도 나 요즘 사랑이 하고 싶나보다.
덧) 1. 다섯 번째 이야기 「밥ごはん」에서 여행을 가겠다는 여자의 말에 "그럼, 밥은?" 이라고 대꾸한 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 떨어진다. T^T 아아, 이것이 결혼한 남자의 실체인가, 싶은 생각이 확- 드는 것이..-물론 그 한 단면 만으로 섣불리 판단하면 안되겠지만- 정 떨어지는 건 사실. 하다 못해 "그럼, 나는?"이라고 했다면 차라리 괜찮았을텐데...
2. 아- 이것도 직업병 비스무리한 건가; 책 읽다가 맞춤법 오류나 오타가 눈에 띄면 아주 찜찜하다. -ㅁ-
"당신도 내 생각해야 되." -->p.49
이 경우 '당신도 내 생각해야 돼.'가 맞다.
혹시 여태껏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해서 책까지 뒤져봤으나 역시 '돼'가 맞다.
흐음.. 교열상의 실수일까나? - _-
내가 읽은 건 초판 1쇄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설마 이 이후로도 계속 저 상태인건 아니겠지? (헉-)
아아- 비교해보고 싶어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