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박규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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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름지기 어떤 새로운 분야를 접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를 잘 설명해 놓은 개론서나 혹은 이른바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을 통해 해당 분야를 접하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물론 어떤 프랑스 철학자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고 자괴감에 빠진 말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을 접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 무엇일까?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국화와 칼]을 일본을 소개하는 책으로 가장 먼저 꼽게 될 것이다.

 

 다만 이 책이 일본을 소개하는 가장 좋은 개론서 혹은 고전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인이 직접 쓴 책이 아니라 미국인이 쓴 책이라는 점이고 당시 태평양 전쟁 중이라 현지 조사를 할 수 없어 재미 일본인과의 면담을 통해 쓰여진 간접적 책이며 이 책은 미국 '전시정보국'을 위해 수행된 정책 연구를 기초로 발간된 책으로 러미스(C. Douglas Lummis) 같은 경우 이 책에 대해 하나의 정치적 문학이나 정치적 논문 혹은 기껏해야 미술 평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하기도 한다.(p.41)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본문 내용을 살피기 전에 먼저 아래에서 하나씩 살펴볼 것이다.

 

 일단 일본인이 쓴 책이 아닌데 일본 문화론의 고전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마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를 보는 듯 하다. 미국인인 브루스 커밍스가 쓴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큰 산이었다. 마치 미국인인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 일본 문화 분석에 있거 아주 기본적인 준거가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일본인이 아닌 미국인이 쓴 책이므로 어쩔 수 없이 편견, 특히 미국적인 가치('개인'과 '자유'라는 가치)가 일본적인 가치(집단주의적 가치)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은 책 속에 내포될 수 밖에 없다.(p.406~407) 그래도 그나마 외국인에 의한 일본 연구 중에서는 실로 편견이 적은 편이라는 점은 많은 학자가 인정하고 있다.(p.38)

 

 이어서 이 책에서 사용한 방법론에 대한 비판(문화상대주의적 관점, 유형 분석, 비교 방법, 원격지 조사 방법 등에 입각한 문화인류학적 방법론)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글쓴이는 일본의 역사적 측면을 도외하여 당시 봉건 사회에서 근대 시민 사회로 급격히 변하던 일본 사회를 동일 평면 위에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둘째, 글쓴이가 사용하는 '일본인'은 균질적인 인간의 총체로 전제되어 다양한 계층, 지역, 직업, 연령 등의 구체적 차이가 간과되어 글쓴이는 가변적이고 동적인 측면을 무시한 채, 불변적이고 정적인 것에 매달렸다는 것이다.(p.139), 셋째, 글쓴이가 구상하는 일본 문화의 유형은 너무 정적이고 통일적이며 넷째, 글쓴이가 선택한 인터뷰 대상자들이 대부분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전에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한 후 미국 내에서도 주로 일본인 집단 내에서만 생활하여 메이지 유신 전후 일본 문화의 변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다.(p.39, 43) 이런 방법론에 대한 비판은 타당하다. 다만, 전시 상황에서 일본 문화 연구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기존에 디딤돌이 되어줄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수월한 조사 및 연구를 위해 일본 문화의 유형을 정적이고 통일적으로 여길 수 밖에 없었던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러미스(C. Douglas Lummis)는 이 책이 인류학자에 의한 전쟁 관여라는 점에서 [국화와 칼]이 [문화의 패턴]에 비해 '문화의 상대성'이라는 '자기 비판적 정신'을 완전히 상실하고 '자신감에 찬 정복자의 태도', 즉, '관용의 정신'이 표면에 나타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p.41) 이에 대해 이 책은 비교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책이라는 반론과 함께 많은 이들은 인류학을 순수하게 객관적인 과학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많은 부분 정치적 개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과 정치와의 관계는 문제가 되어 왔다. 개인적으로는 과학에 정치가 관여하여 탄생한 최악의 과학(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은 우생학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우생학으로 얼마나 많은 차별이 있어 왔는가? 또한 문화인류학이 과거 제국주의 침략의 도구로 사용된 역사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학과 정치는 완전히 분리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배층·금력 의존적이며 위계 질서적인 세계 학계의 내부 구조가 바뀌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비판이 있지만 일본 문화의 핵심적 요소들, 특히 일본인의 에토스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가령 일본인의 계층적 위계질서 의식, 하지와 명예 관념, 기리, 닌죠, 온 개념 등)을 최초로 명확하게 분석해내어 차후 일본 문화 분석에 있어 아주 기본적인 준거가 되었다는 점(p.35)은 이 책을 일본 문화의 개론서, 혹은 고전으로 높게 평가받게 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이 책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반론을 살펴 보았는바 이제 이 책에서 나타난 여러 개념을 먼저 살펴볼까 한다.

 

 가장 먼저 '온(恩)'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글쓴이는 5장과 6장에서 일본 사회에서의 지배 종속 관계가 자기에게 주어진 온에 대한 온가에시(

 



 

 이어서 이 책에서 좀 더 생각할 것을 찾아보면 글쓴이는 일본인은 지도처럼 정밀하게 미리 정해진 세계, 각자의 사회적 지위가 고정된 세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지만 이런 계층적 위계질서가 고정되지 않고 유연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p.103~105) 즉, 고리대금업자나 상인들이 자신의 아들을 사무라이 집안에 데릴사위로 보내는 '무코요시(壻養子)'를 통해 상류 계급 신분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에서는 각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끼리 혼인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처럼 봉건제도를 붕괴시킬 강력한 중산 계급이 발생하지 않았고 상인과 하층 사무라이 간의 동맹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며 이런 동맹 관계가 봉건 질서를 가진 막부를 무너뜨린 동맹이 되었다는 점을 글쓴이는 지적하고 있다.(p.106) 사실 나는 유럽에서는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가 봉건 신분 제도를 무너뜨리기 위해 혁명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당시 일본에서는 유연한 신분 질서가 있었고 상인과 하층 사무라이 간의 동맹 관계로 강력한 중산 계급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왜, 그리고 어떻게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는 명확하게 알려주지는 않는 것 같다. 또한 메이지 유신 당시 '존왕양이(尊王攘夷)'의 기치를 내걸었던 존왕파가 승리하여 1868년 왕정복고가 일어났으므로 당연히 지독하게 보수적인 고립주의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왜 오히려 반대로 개항과 개혁을 했는지는 역시 명확하지 않다. 이렇게 궁금한 점은 다른 책을 통해 채워야 할 듯 하다.

 

 또한 글쓴이는 유럽이나 아시아 어느 나라든 향후 10년간 군비 지출을 하지 않는 나라는 군비를 지출하는 나라를 증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일본이 군국화를 국가 예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경제적 번영의 기틀을 마련해 아시아의 통상에서 중심적인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p.400~401)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일본이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소비하지 않고 경제 발전에 투자하였기 때문에 세계에서 손 꼽히는 경제 대국이 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찌 되었건 경제 강대국이 된 것은 분명한 바 글쓴이의 통찰력이 놀랍다. 이에 대해 좀 더 첨언하자면 우리 나라는 미국, 일본으로 대표되는 해양 국가와 중국, 러시아로 대표되는 대륙 국가 사이에 있는 나라로 우리 나라의 국력을 감안했을 때 국방비를 근처 4대 강국보다 많이 투자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붇기를 하는 것 보다는 천문학적 국방비를 경제/문화 발전과 동아시아 평화 정착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국가 발전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결국 이 책은 비록 방법론에 있어서는 비판을 받지만 최초로 일본 문화의 핵심적 요소를 명확하게 분석해 놓았다는 점에서 일본 문화 이해의 고전이라고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안에 농밀하게 스며 있는 일본 컴플렉스(우월감과 열등감의 미묘한 조합)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사족을 달자면 이 책은 나름 '고전'이라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하고 대다수는 을유문화사의 책을 읽는 것 같으나 문예출판사의 책이 역주가 더 충실하고 역주에 다른 학자들의 의견도 틈틈히 들어가 있는 것이 좀 더 좋은 번역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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