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타락한 저급한 제국" 이는 1869년에 출판된 W.E 레키의 [유럽 도덕의 역사]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평가한 문장이다. 이런 견해가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 비잔티움 제국을 만난 18~19세기 영국인들의 일반적인 평가라고 보인다. 이렇게 악랄한 평가는 18~19세기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인들이 외국을 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글쓴이의 평가대로 서유럽에서 학문의 빛이 거의 꺼져 있었던 암흑기에 비잔티움 문명이 고대 그리스와 라틴 유산을 대부분 보존해 준 덕분에 서유럽 세계가 큰 혜택을 입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안하무인 격이다. 이를 읽는이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글쓴이의 노력은 이 책을 통해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3권에서는 드디어 비잔티움 제국의 쇠퇴와 멸망을 다루게 된다.(소제목 역시 쇠퇴와 멸망이다.) 이렇게 비잔티움 제국의 쇠퇴와 멸망은 십자군 전쟁과 콘스탄티노플의 지리적 요건과 교역로의 변화, 대포의 등장과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람들의 이중적 모습이 큰 원인이 되었다. 가장 먼저 십자군 전쟁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십자군 전쟁을 아래와 같은 경로로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하였는데 보면 알겠지만 비잔티움 제국은 십자군 전쟁군이 지나가는 경로에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십자군이 말만 십자군이지 실제로는 약탈자였다는 점이다. 같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비잔티움 제국을 지나면서 십자군은 식량을 약탈하고 백성을 학살하며 특히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성전도 약탈하여 수많은 그리스드교 유물이 사라지고 수많은 여자를 강간하는 등 점령군과 다름이 없었다. 이와 같은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비잔티움 제국은 수도를 잃고 망명 정부를 세우는 등 더 이상 오스만투르크에 대항할 힘을 잃고 말았다. 정말 인간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일으킬 수 있는 전쟁 중 최악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라 본다. 이에 대해서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2권>을 추천한다. 만화책인데다가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 쉽게 십자군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다만 1, 2권 다음에 3, 4권은 언제쯤 나올련지….) 이어서 콘스탄티노플의 지형적 위치를 언급할 수 있다. 사실 콘스탄티노플은 제국의 수도로서 수비하기엔 천혜의 조건이나 공격적으로 제국을 확장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은 도시였다. 언제나 서유럽과 동방 이슬람 사이에서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두 군데 모두를 막기엔 비잔티움 제국은 이미 그 힘을 잃은 상태였다. 또한 콘스탄티노플은 동방 이슬람 세력과의 무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관세 등을 통해 재정을 손쉽게 확충할 수 있었으나 이후 해상 교통이 발달하여 베네치아나 제노바의 배를 이용하여 무역을 하였기 때문에 제국의 재정은 악화 일로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대포의 등장과 베네치아, 제노바의 이중적 모습이 그 원인으로 보인다. 10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콘스탄티노플이 난공불락이었던 이유는 3면이 바다에 접해있어 해로로의 접근이 힘든데다가 육로로는 당시 로마의 기술력이 총 집약된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성벽은 안으로부터의 변절자가 있지 않고서는 점령이 거의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러나 점령자인 메머드 2세는 대포를 가져와 성벽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하였고 그 결과 콘스탄트노플은 그 생을 다하게 되었다. 또한,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고 같은 그리스도교의 형제이지만 언제나 교역 이익에만 관심이 있어서 비잔티움 제국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하긴 같은 종교라고 해서 이익이 없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를 흘리라고 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긴 하다.) 이와 같은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글쓴이는 비잔티움 제국의 최후를 굉장히 처절하게 써 놓았지만 이렇게 망한 나라가 한 두개 던가? 나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타락한 저급한 제국"이란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비잔티움 제국이 타락하고 저급한 제국이란 면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 시대와 비교해 보아도 수많은 궁중 암살과 음모, 배반이 일어나고 무능한 황제가 유능한 황제보다 많았던 점은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또한 글쓴이는 <살라딘>을 제외하고는 이슬람 국가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듯 하다. 이는 비잔티움 제국이 서유럽을 이슬람 문명으로부터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는 글쓴이의 평가에서도 보이지만 사실 그리스도교는 굉장히 타락한 상태였고 문명이나 문화 수준 역시 이슬람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또한 번역에서도 한 가지 지적해야겠다. 이슬람교의 예언자로 마호메트라고 이 책에서는 표시하는데 마호메트는 영어식 표현이고 아랍어 표시법대로 <무함메드>로 표시하는 것이 옳은 표시법이라 할 것이다.(예컨데 우리가 독도라고 부르는 것을 외국에서 다케시마라고 표시한다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비록 순서는 바뀌었지만 이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 전통적으로 비잔티움 제국을 바라보던 시각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