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연대기 2 (양장) - 번영과 절정 비잔티움 연대기
존 J.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역사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역사, 특히 여러 영웅이 각축을 벌이는 전쟁사는 읽는이로 하여금 재미와 흥미를 선물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재미와 흥미를 원한다면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 책을 읽는 이유는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명제 아래 역사를 통해 오늘날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비잔티움 연대기>는 현재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2권의 소제목은 [번영과 절정]이다. 즉, 여기서는 수많은 뛰어난 황제가 등장하여 비잔티움 제국은 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예컨데 테오필루스, 바실리우스 1세, 현제 레오 6세, 니케포루스 2세 포카스, 요한네스 치미스케스, 바실리우스 2세 불가록토누스, 이사키우스 콤네누스 등은 비잔티움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위대한 황제들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비잔티움 제국의 위기는 닥쳐오는데 이는 역시 크게 3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제국 안정에 가장 큰 걸림돌은 뭐니 뭐니 해도 권력 불안이었다.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어느 제국보다도 황제의 암살, 온갖 궁중 음모와 쿠테타가 가장 많았던 제국이 바로 비잔티움 제국이었다.(p.645)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황실 핏줄이 끊겼던 적이 많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황제가 능력만 되면 수많은 여자를 거느릴 수 있었던 동양과 달리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된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세번째 재혼부터는 큰 죄가 되었기 때문에 현제 레오 6세도 후사를 얻기 위해 4번이나 결혼하면서 부득이하게 교회와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뒤를 이은 황제 역시 정통성이란 면에서는 약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쿠테타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이어서 동양과 서양의 종교와 사상 차이라고 생각된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유교의 충(忠)을 강조하여 황권 강화에 이용했던 반면에 서양의 그리스도교는 황제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사상이 부족했는 듯 싶다. 물론 그리스 정교에서는 황제는 12사도와 동급으로 인정 받았지만 적극적으로 백성들의 충성을 요구하는 그 무엇이 부족한 것 같았다.

 

 이어서 종교 갈등 문제이다. 여기서 드디어 성상 파괴 문제는 일단락 되지만 이제는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가 완전히 분열되게 되어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이 단일한 통일 제국을 이루려는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이 책에서도 말하듯이 로마의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사이의 끗발 싸움은 계속되어 왔었다. 교회법에 따르면 교황이 총대주교보다 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잔티움 제국 황제의 비호를 받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끗발 역시 로마 교황과 견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비록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서로를 존중하던 중에 편협하고 완고했던 훔베르트 추기경이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파문시키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 역사는 아주 가관이다. 교황이 유부녀와 바람이 나고 교황권을 함부로 남용하며 위선자들로 가득찬 교회는 말 그대로 악의 소굴이었다. 아마 카톨릭이든 기독교든지 지우고 싶은 역사일 것이다. 특히 면세권을 가지는 큰 수도원이 난립하여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국력을 약화시켰는바 이는 오늘날 세금을 면제받는 종교인들 역시 반성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이렇게 말하면 분명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세금 뗀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뛸 목사님들이 분명 계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힘쎈 자'들 문제였다. 그 당시에도 광대한 토지를 가진 대지주가 많았는데 이로써 평소에는 세금을 내고 전시에는 군인이 되는 자영농이 점점 줄게 되었다. 특히 그들은 황제가 후사가 없이 죽자 꼭두각시 하기 좋은 콘스탄티누스 10세 두카스를 황제로 옹립하여 자영농을 보호했던 법률을 전부 폐기시키고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는 당시 대지주이자 명문가인 두카스 일족의 안도로니쿠스 두카스는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일부러 황제가 전사했다는 소문을 퍼뜨려 로마누스 4세가 셀주크투르크 술탄에게 포로가 되게 하였다. 사실 이 전투는 절대 질 전투가 아니었다. 역사가들 마다 견해가 나뉘지만 로마누스 4세는 최소 6만에서 최대 60만명을 이끌고 있었고 셀주크투르크는 1만 5천 명이 전부였다. 그런데 오직 로마누스 4세가 '힘쎈 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지 않을 군사 귀족 출신 이라는 것 때문에 황제를 배반하였고 그 결과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참패하여 광대한 곡창 지대이자 인구 밀집 지역인 아나톨리아와 아르메니아를 셀주크투르크에게 뺏기게 되어 결국 비잔티움 제국은 내리막길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힘쎈 자'는 오늘날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보수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오히려 군대에 가지 않고 원정 출산하고 재산을 해외에 빼돌리는 상황이 비잔티움 제국과 비슷하지 않는가? 이제 마지막 3권을 통해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을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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