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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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하면 원래 이 책을 구입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유시민>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굉장히 공격적이고 사납게 보인다는 것과 의원 선서할 때 정장을 안 입고 와서 다른 의원들의 질책을 받았다는 것(사실 정장을 안 입고 왔다고 선서를 못하게 하는 것도 웃기다. 그만큼 우리 나라 '구캐우원 아기들'은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또한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있다는 점, <100분 토론 100회 특집>에서 '진중권 교수'와 함께 엄청난 달변을 자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00분 토론에서 보기 전까지만 해도 부정적 인상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평소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을 책이었지만 KOEX 반디앤루디스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손이 가게 되었다. 그런데 맨 첫 장을 넘겼을 때 <유시민의 사인>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맨 처음에는 복사한 것인줄 알았는데 전체 책 중에서 딱 3권만 사인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초판 1쇄 작가 사인본의 유혹에 못 이겨 지름신의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다. 참고로 유시민의 사인은 "생각은 힘이 쎄다"라는 메세지였다. 그냥 단순히 이름과 날짜만 적는 것이 관행인데 이렇게 메세지가 있는 것 또한 신선했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메세지대로 '생각'하면서 읽으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서 관통하는 한 가지의 주제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데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피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중에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이른바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것''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헌법을 현재 2MB 정부는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자기 자랑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변명'이다. 초반에는 주로 후불제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나 뒤로 갈수록 2MB 정부에 대한 비판이 강조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책 내용을 살펴보면 유시민이 나름 생물학적 지식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3000년 전 인간과 현대인 사이에는 뚜렷한 생물학적 진화가 없으며 오직 도구와 제도, 문화만 진화했다는 것을 지적했는데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동감한다. 다만 <진화 생물학>에서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를 주장하는데 과거에는 유전자가 진화를 이끌었다면 인간의 두뇌가 물리학적 한계에 도달한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진화가 느린 문화가 유전자의 진화를 쫓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다시 유전자-문화가 서로 같은 수준까지 진화한다면 다음 진화는 무엇이 앞서 나가게 될까?

 그리고 국방부 불온도서와 이에 헌법소원을 신청한 군법무관에 대한 칭찬이 있는데(p.113) 이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있다. 나는 2005년 1월 달에 전역을 한 달 앞두고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란 책을 사서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정보장교가 샅샅이 살펴보고 군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고 뺏어 버린 것이 아닌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현재도 이런 세대에 뒤떨어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교육시킨다고 진실이 가려질까? 과거 '유신 교과서'로 공부한 유시민이 이렇게 '좌파'가 된 것을 보면 진실은 가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얼마 전에 국방부에서 군법무관을 징계했는데 그 결과 그들은 판,검사가 될 수 없고 3년간 변호사 자격이 제한되게 되었다. 정말 멋진 대한민국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대학생으로 되돌아 간다면 하고 싶은 일을 간략히 적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p.289) 즉, 유시민은 '영어와 수학, 라틴어, 한문을 공부하고 철학과 물리학 분야의 고전을 읽을 것이며 우주와 세계의 질서, 국가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필요한 지식 탐구의 도구를 풍부하게 갖추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라고 했는데 나도 이제 얼마 안 남은 젊은 동안 이런 도구를 갖추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수학은 다시 공부할 생각이고 라틴어는…

 그러나 에세이 형식이다보니 주제가 난잡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2MB 정부에 대한 비판만 있는 점은 아쉽다. 좀 악의적이다 싶을 정도인데 어차피 2MB 정부를 선택한 것은 '국민'(참고로 난 아니다)이고 어찌되었건 5년은 지나야 하는 것이니 좀 더 충고 위주로 썼으면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물론 나 역시 '국개론'(국민 개병신론)에는 안타깝지만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돌베게 출판사>는 좋은 인문/사회 서적을 내기로 유명한 곳이고 편집자인 김희진씨 역시 유능한 사람이므로 읽어도 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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