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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지음, 이충 옮김 / 바다출판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뇌과학] 관련 서적으로는 김종성의 <춤추는 뇌>에 이어서 두번째로 읽은 책이다. 앞서 읽은 책에서 [뇌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습득했기 때문에 의욕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른바 '리스 강의(Reith lecture)'라는 유명한 영국 대중과학강연의 내용을 묶어서 낸 책이다. 사실 일종의 강연 노트를 묶어서 낸 책들의 경우 질에서 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었다.(물론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같이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특히 뇌과학이라는 첨단 학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대중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지식의 전달과 대중의 눈높이라는 두 가지의 목표를 과연 잘 추구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주로 지식의 전달이라는 면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특히 5장 <뇌과학 - 마음의 비밀을 푸는 21세기의 철학>의 경우에는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과 난해한 철학적 내용이 많아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어느정도 철학적 소양이 있는 나로서도 소화하기에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은 수많은 뇌과학의 논점 중에서 '시각', '예술', '공감각' 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뇌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다른 책을 통해서 접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책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몇가지 놀라운 실험을 접할 수 있었는데 특히 맹시 환자에 대한 실험이 기억에 남는다.(p.54) 맹시 환자란 시각겉질이 손상되어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옥스퍼드의 래리 와이스크란츠는 볼 수 없는 맹시 환자에게 불빛을 만져보고 가리켜보라고 함으로써 놀라운 결과를 알아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안 보이는 사람에게 불빛을 가르켜보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연구자는 이를 일단 실험해보았으며 이로써 맹시 환자도 99%의 확률로 정확한 위치를 가르킨다는 놀라운 결과를 알아낸 것이다. 이것을 보면 과학연구자는 선입견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멋진 통찰도 알 수 있었다.(p.81) "만약 재갈매기에게 미술관이 있다면 벽에 3개의 붉은색 줄무늬가 있는 긴 막대기를 걸어두고, 그 막대기를 숭배하며, 수십억에 구입하고 그것을 피카소라고 부를 것이다"라는 것은 한 마디로 우리가 예술이라고 여기는 것들도 실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면서 예술에 대한 과학의 멋진 반격인 것이다. 이 글귀를 읽으면서 얼굴 한 쪽에서 웃음을 띄울 수 밖에 없었는데 결국 나도 '예술은 쓰레기'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글슨이는 예술을 과학의 수준으로 내린 것에서 더 나아가 '자유의지는 뇌가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주장한다.(p.138) 이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철학자와 종교학자는 반대하겠지만 자유의지로 손가락을 움직이기 0.75초 전에 준비전위라는 뇌전도 전위를 측정할 수 있었다는 실험결과는 글쓴이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만약 이를 연결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면 우리는 어떻게 판단할까? 우리 뇌 속에 우리를 조정하는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을 부인하게 될까? 정말 자유의지는 단순히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책에는 헛점이 너무 많다. 특히 각주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가 않으며(p.165) 책 마지막에 있는 용어 설명은 크게 써야할 단어를 작게 쓰는 등 과연 교정을 보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주관적인 감각을 의미하는 퀄리아(qualia)라는 단어는 좀 더 쉬운 단어를 써야하지 않았을까? 역시 첨단 학문인 뇌과학 서적을 화학공학과 출신이 번역한 것 부터 잘 못되었는지 모른다… 다음에 개정판이 나올 때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