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주니어 클래식 1
윤소영 풀어씀 / 사계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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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본인은 [풀어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책을 풀어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나름 그 유용성에 대해서는 동감을 하는 편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풀어쓴 책을 싫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일단 내 자신의 능력이 굳이 누군가 풀어쓴 책에 의지해야 될 정도로 원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문을 번역하는 것조차도 번역 과정에서 [이중 오역]의 큰 위험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누군가'의 손을 거쳐서 풀어쓴 책이라면 그 책에는 풀어쓴 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분명 풀어쓴 이의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쉽게 풀어쓰다보면 아무래도 풀어쓴 이가 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다는 것 위주로 구성할 수밖에 없는데 솔직히 이런 판단을 믿지도 못하겠고 설혹 믿는다고 해도 생각 없이 그냥 입에 떠주는 음식을 그대로 먹을 생각을 추호도 없다.

 그리고 이 책은 찰스 다윈(Charlse Darwin)[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을 풀어쓴 책이다. 수많은 풀어쓴 책들 중에서 하필 [종의 기원]이라니… 나름 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면서 생물학과 유전학 등에 대해 당시 찰스 다윈이 살던 시대의 과학 수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19세기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 따분한 일일 것이다. 이런 점은 현대 과학 교양서적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를 읽으면서도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었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기껏해야 대학 일반 생물학 수준으로서 전공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따분해서 읽다가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위해 중앙도서관을 찾았으나 행방불명 도서임을 알았을 때 구입하기를 망설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책의 표지 디자인 또한 도저히 2004년에 발간된 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꼭 읽어야 될 책이었기 때문에 힘들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이 책을 구해서 읽게 되었다.

 [종의 기원]의 내용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에서도 조금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 위주로 언급해보도록 하겠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윈이 맬서스의 [인구론]을 통해 자연선택 이론의 개념을 다듬을 수 있었다는 것(p.38)이다. 물론 인구론을 통해 이끌어낸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이 결론적으로는 타당하게 보인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이 타당하므로 그 전제가 된 맬서스의 [인구론] 또한 타당하다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이는 결국 [사회적 다윈주의]로 변형되어 '생존 경쟁', '적자생존'만을 강조하여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 이끌어 나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유엔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는 FAO(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이미 지구는 120억 명이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런 맬서스의 주장은 유럽/백인 우월주의에 빠져 있으며 단지 제 3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결국 비록 다윈이 맬서스의 [인구론]에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 타당성에 대해서는 서로 독립된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어서 '늑대 소년'에 대한 이야기(p.54)가 눈에 들어온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얼마 전에 제 2회 충무로 국제 영화제에서 본 [카스퍼 하우저의 신비]가 생각났다. 이 영화 또한 1828년 독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다만 '늑대 소년'과 다른 점은 카스퍼 하우저는 태어나자마자 평생 지하 감옥에 갇혀있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풀어나게 되서 말도 할 줄 모르고 걸을 줄도 모르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청년'일 때 풀려났으며 나름 사회 적응 훈련에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말과 글, 심지어 논리적인 사고 능력까지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차이가 평생 말과 글을 모르고 생고기만 먹은 '늑대 소년'과 말과 글을 배우고 논리적인 사고 능력까지 갖추게 되는 '카스퍼 하우저'의 다름을 설명할 수 있을까? 분명 둘의 환경은 거의 비슷했을 텐데 말이다…

 그 외에는 본격적인 [종의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특별히 언급할 생각이 없지만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결에서 진화론의 약점이 되는 문제에 대해 다윈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p.129) 이 책에서는 진화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4가지를 차례로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것은 넘어가더라도 여전히 눈과 같이 완벽하고 놀라운 구조를 생긴 기관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하지만 자연선택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계속 더욱 유리한 구조를 걸러 내는 체와 같은 역할을 해 왔다."(p.137)면서 교묘하게 얼버무리고 있음도 명확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 진화론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진화론을 무너뜨리는 증거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말한 대로 나 또한 진화론이 허구임이 증명된다면 가장 먼저 내 관점을 바꿀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는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서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창조과학회'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과거 우리 학교 공대 안에서 한국창조과학회 총회가 열리면서 외부에 창조과학회의 주장을 담은 자료를 전시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과거 고등학교 생물책에 실려 있던 삽화였다. 이것은 바로 이 책에서도 소개된 헤켈의 삽화이다.(p.214) 물론 이 책의 글쓴이 또한 헤켈의 '발생반복설의 법칙 (the law of recapitulation)'이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있으나 헤켈의 삽화가 거짓이라는 주장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창조과학회의 자료에서는 바로 헤켈의 삽화가 거짓이라며 Science지에 실린 논문을 소개하고 있었다.(Elizabeth Pennisi, 'Haeckel's Embryos: Fraud Rediscovered', Science 277(5331):1435, September 5, 1997.)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일까? 역시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일까?

 결국 이 책은 [종의 기원]을 쉽게 풀어썼다는 점과 멘델의 유전학실러캔스의 발견을 함께 소개하여 원문에서는 얻을 수 없는 좀 더 정확한 진화론적 지식을 가지게 도와주고 있다는 점, 다양한 사진과 삽화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딱 이 정도이다. 이미 생물학 관련 수업을 들었거나 전공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 시간에 다른 인문/사회 서적을 읽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인 또한 생명공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몇 가지 이 책의 내용에서 불명확한 점과 오해할 만한 점이 남아 있으므로 그다지 높은 평가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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