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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밀사 - 일본 막부 잠입 사건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임진왜란은 지우고 싶은 역사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단순히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흉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조선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의 많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굉장히 흥미롭고 교훈을 주는 일본의 전국시대(센코쿠 시대)의 역사마저 별로 조망받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원래 역사라 함은 꼭 하나의 나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삼국지>를 보면서 중국의 역사를 통해 현대의 삶의 지혜를 얻는 것과 같이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인의 경우 <대망>으로 번역된 총 36권짜리 대하소설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KOEI사의 명작인 <신장의 야망 12 : 혁신>을 통해 여러모로 일본 전국시대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당시 조선과 일본의 교류가 별로 조망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임진왜란 이후 조선 통신사를 배경으로 만든 팩션이 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기대와 한편으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팩션이라 함은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이 바탕되어지지 않고서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힘든 법이다. 과연 "글쓴이가 당시 조선과 일본의 사정과 배경에 대해 정통할까?"라는 걱정은 유독 나만 가지는 걱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당시 역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감탄할 만한 팩션을 만들어 내었다. 특히 북벌론의 중심에 섰던 효종이 북벌을 위해 일본 막부의 힘(특히 서양 문물의 도입)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과 젊은 나이에 <쇼군>에 오른 이에쓰나도 정치의 안정을 위해 조선의 도움이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작가의 머리속에서 교차되면서 <조선 통신사의 살인사건>이라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주제를 가지고 추리소설과 팩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을 탄생하게 되었다.
그보다 더욱 더 놀라운 점은 하이쿠의 성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바쇼>의 등장이다. 하이쿠라 함은 일본의 한줄짜리 시인데 본인의 경우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한줄도 너무 짧다]라는 하이쿠 모음집을 통해 <바쇼>, <이샤>등의 하이쿠 시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바쇼>의 내력과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스스로 함구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전해지는 것이 없다. 그런 <바쇼>가 이 책에서 살인사건과 일본의 정치적 음모의 중심인물로 등장하게 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다는 팩션의 기초에 굉장히 충실한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본적인 역사적 인물과 사실에 대한 묘사는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만 이 책 맨 앞의 [일러두기]에서 글쓴이가 5번째로 지적한 바와 같이 "소설은 역사서가 아닌, 소설로 읽혀져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임진왜란 이후의 중국, 한국, 일본 역사에 정통한 글쓴이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을 버무려 만들어낸 탁월한 팩션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아직 일본 전국시대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일본과의 관계가 궁금하거나 혹은 열대야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면 <조선 통신사의 살인사건>을 다루는 이 책과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