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나의 고전 읽기 1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혹시 어렸을 때 백과사전을 보면서 수많은 이름 모를 물고기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적은 없는가? 본인의 경우 백과사전에서 화려한 물고기의 사진을 보면서 부모님께 하나 하나 물어봤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하지만 이른바 머리가 커지면서 백과사전 속의 물고기와는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날이 계속되던 중에 국사 시간에 조선시대 유명한 실학자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자산어보>라는 바다 백과사전을 집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수업이 그렇듯이 그냥 <자산어보>=정약전이 쓴 바다생물 백과사전이라고 외우고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다시 <자산어보>를 만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과거 화려한 사진으로 치장된 백과사전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제 아무리 실학자인 정약전이 썼더라도 1800년대의 책이라면 읽어도 썩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원전으로 현대적으로 다시 쓴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나의 이런 선입견을 무너지고 잊어버렸던 "바다"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바다가 굉장히 친숙했었다. 당시 아버지를 따라서 여수에 살았었는데 그곳에서는 조그마한 산에만 올라가면 바로 남해 바다가 눈 앞에 보이고 곳곳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의 유적지가 있었던 곳이었다. 산에 올라가 남해 바다를 바라보면 왠지 기분이 좋고 바다를 보면서 바다 같이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서울 노원구로 이사오면서 나의 시선은 이제는 을 향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 노원에는 고층 건물이나 아파트가 없었다. 그래서 하교길에 산을 바라보면 노을이 지면서 산의 웅장한 모습이 나를 매혹시켰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함으로써 하교시간이 한 밤 중으로 바뀌고 점점 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서 산을 향하던 나의 시선도 점점 교과서를 향하게 되었다. 이런 잊어버린 기억이 이 책을 통해서 되살아 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있어서 <바다>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일단 이 책을 펼치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수윤(秀潤)이란 단어(p.9)이다. '더욱 갈고 닦아 빛내라는 뜻'으로 요새는 한방 화장품의 이름으로 더욱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이런 마음 가짐을 가지고 바다로 가는 뗏목인 [자산어보]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지구(地球)라는 말이 얼마나 육지 중심적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p.20)과 같이 표면적의 72%가 바다이니 만큼 해구(海球)라고 불리는 것이 어울릴텐데 우리는 육지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정약전은 고정된 중심을 가지지 않은 학자였다. 이런 점은 정창대라는 한 섬 소년의 이름을 책 맨 앞에 똑똑히 밝혀 두는 점이나(p.49) 가숭어를 숭어로 바꿔 부른 것(p.77)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고정된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를 통해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특히 과학자에게 있어서 [고정된 중심]을 치명적이다. 토마스 쿤의 유명학 저작인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이른바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런 고정된 중심을 가지지 않은 젊은 학자나 다른 분야의 학자에 의해서 일어나게 된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글쓴이가 시인이니 만큼 곳곳에서 훌륭한 자연묘사가 숨겨져 있다. 특히 하늘을 나는 물고기 날치 부분에서 글쓴이가 보여준 상상력과 묘사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p.88~89) 역시 똑같은 것을 봐도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느끼는 것 만큼 알 수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못 보는 것을 글쓴이는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묘한 질투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언제부터 나는 이런 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이 책에서는 아직 내가 맛보지 못한 여러가지 물고기도 등장한다. 가장 먼저 흑산도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홍어(p.106)가 등장하는데 썩기 직전의 홍어가 이렇게 좋은 음식이 된다는 점이 굉장히 역설적이다. 글쓴이는  "두엄과 같은 지긋지긋한 세상 속에서 인생도 슬픔을 삭이고 삭여서 성숙한다"고 묘사하던데… 이어서 정말 무서운 독을 가지고 있는 복어(p.111)가 등장한다. 이 장에서는 이형기 시인의 [복어]라는 시가 소개되고 있는데 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독'을 품고 살아가게 만드는 세상이 과연 살기 좋은 세상인지 물음을 던지게 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과학적 관점에서 '독(毒)''약(藥)'은 다르지 않다. 다만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실제로 수많은 독이 관점을 바꾸자 훌륭한 약이 되어 수많은 인간의 생명을 구한 경우도 많다. 여기서 나오는 복어독도 "보톡스"라고 주름살을 개선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물론 조만간에 FDA에서 부적격 판정이 나올 것이라고 많은 분들이 예상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p.188)도 감동적이다. 이 시에서 소개되는 대로 우리는 가마우지처럼 주인이 만족할 때까지 소득 없는 슬픈 노동을 계속해야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국 구이린 지방에서 가마우지가 죽을 때가 다가오면 주인과 함께 술을 나누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금치 못했다. 가난한 어부를 위해 고통스러운 노예의 삶을 받아들인 가마우지의 삶은 마지막에 주인과 술을 나누면서 극적으로 화해하게 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마지막에 극적으로 화해한다고 해도 그런 삶을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런 딱딱해 보이는 <자산어보>를 이렇게 훌륭한 솜씨로 현대에 되살려낸 글쓴이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특히 곳곳에 삽입된 삽화도 서양화가, 동양화가를 졸업한 2명의 노력으로 굉장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으며 책 내용과도 훌륭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오래되어서, 그리고 군대에서 고생하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바다>를 나에게 되찾아준 책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마지막 여름 방학이 될 지 모르는 이번 여름에 이 책과 함께 바다를 찾아갈 생각이다. 혹시 바다 내음을 잊어버리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잊어버린 바다를 되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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