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평이 좋은 책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제목은 멋있는 책"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내가 이렇게 표현했는지 알고 싶으신 분은 중간 단락은 읽지 말고 맨 마지막 2 문단만 읽어보기 바란다. 어차피 중간 단락은 책 내용을 요약하는데 불과한 것이고 내가 이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2단락에 다 적어놓았다. 1부 벽에 들린 사람들에서 특히 감동을 준 것은 굶어죽은 천재 김영과 위대한 둔재 김득신의 일화이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천문학과 수학의 천재 김영…. “세상은 재주 있는 자를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란 말로 그의 삶을 한마디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능력 있는 자를 신분이 비천하다고 손가락질 하고 그의 죽음 뒤엔 유작을 모조리 훔쳐간 천문관들의 행태는 요근래 학벌중심주의와 남의 저술을 제 것이랑 훔치는 사람들의 행태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또한 위대한 둔재 김득신의 경우, [백이전]을 11만 3천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그의 [독수기]에는 만번보다 적게 읽은 것은 아예 꼽지도 않았는데도 36권이 되니 요새 현대인들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나도 책을 읽은 후 그 횟수를 기록하는데 기껏해야 한권당 3번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은 한달에 책 1권 읽기도 힘든 상황이니 모두들 김득신을 본받아 독서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에 책에 미친 이덕무에 대한 일화가 소개되는데 나를 깨우는 죽비소리와도 같았다. 고백하건대 나의 독서는 지적 편식이나 편집적 욕망에 머물고 있었다. 이에 비해 이덕무의 독서는 이를 뛰어 넘어 천하를 읽는 경륜으로 이어지는 지적 토대가 되었다. 나에게 있어 독서의 목적을 일깨워 주는 좋은 비판 이었다. 이어서 박제가와 서문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둘의 공통점은 세상을 바꿀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세상이 그들을 알아주니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박제가가 묘항산에 가면서 서문장전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닐까? 서문장은 세상과 만나지 못한 좌절로 인해 번뇌를 없애기 위해 도끼로 제 머리를 깨뜨리기도 하고 귀가 멀어야 이 미친 세상의 소음을 들을 수 없기에 송곳으로 귀를 찌르기도 하였다. 이를 보면 위정자들은 인재 없을 탓하지 말고 인재를 알아볼 눈이 없음을 탓해야 할 것이다. 이어서 현대로 말하자면 쪽집게 과외교사에 불과할 노긍이란 인물에 대한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그는 정조시대의 과거시험 답안 대필업자였다. 그는 수없이 많은 과거에서 급제를 하였으나 단지 명예만을 더할뿐 몰락한 잔반에 불과한 그에게 벼슬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시대를 한탄하면서 보냈으며 양웅을 알아준 환담과도 같은 이가환이 아니었으면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2부는 멋진 만남에 대한 이야기 이다. 첫번째로 허균과 화가 이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가 이정은 당시 세도가 집에 초청되어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솟을대문에 두마리의 소가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들어가는 것을 그려주었다. 이는 "너 혼자 다 해먹어라"란 뜻이렸다. 결국 평양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는데 허균이 그에게 평소 생각하던 집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어서 그의 뜻을 이루어 지지 못하였고 결국 허균도 11년 후 반역을 꿈꾸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도 허균이 그려달라고 부탁한 집에서 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중에 나이가 먹으면 함 시도해 봐야 겠다. 이어서 허균과 기생 계량의 우정의 일화가 나온다. 과연 남자와 여자와의 우정이 가능한가의 문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위의 경우는 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기생은 현대의 몸파는 계집이 아니었다. 가무와 시서화에 능숙한 전문직종이었으며 허균은 그런 계량과 몸을 섞지 않은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요새 선생님이 대학을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권필과 송희갑의 강화도 생활을 많은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송희갑은 원래 무식하였는데 "선비가 세상에 나서 스승 없음을 근심할 일이지 배움이 서지 못함은 근심할 것이 못 된다"라면서 강화도로 권필을 찾아오게 된다. 돌이켜보건대 나에게 있어 그런 스승은 없는 듯 하여 매우 아쉽다. 이 모두가 내가 교만하고 스승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정약용과 황상의 만남도 소개하고 있는데 황상에게 준 오로지 부지런하면 된다는 가르침을 붙잡고 글에 매진한 황상을 보면서 나를 돌이키게 된다. "부지런함"이라...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어서 홍대용과 그의 벗들의 음악이 있는 풍류를 소개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음악에 있어서 그다지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다. 늘 음악을 듣고 간단한 악기는 다루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매우 미미한 편이다. 얼른 악기에 노력을 쏟아서 홍대용과 같은 풍류를 겪어 보아야 겠다. 이어서 박지원의 돈을 꿔달라는 편지에서는 돈을 빌리는 입장이면서도 전혀 비굴해 하지 않고 위트를 섞는 연암의 성격을 알수 있었으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내의 노을치마에 써준 글에서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제 3장은 일상 속의 깨달음에 대한 내용이다. 이 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그림자놀이와 홍길주의 이상한 기행문과 세검정 구경하는 법등을 보면 고리타분한 양반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이런 글이 쓰여진 시기가 조선 초기가 아닌 후기라는 사실이다. 그 전까지는 아마도 이런 고리타분한 성리학은 우리의 상상 그대로 였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미쳐야 미친다'이다. 그런데 제 1장을 제외하면 제목과 관계 없는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래서 1장에서 받았던 감동과 나를 채찍질하게 하는 죽비소리는 2, 3장에 들어서는 단순한 '지식' 이상을 독자에게 주지 못한다. 또한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원문을 소개하고 다시 글쓴이가 풀어서 설명하는 것은 읽기에 어려운(하지만 오래된 글이라서 낯선 것일 뿐일 수도 있다.) 글을 현대어로 풀어주는 것은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해주는 순기능도 있으나 어떻게 보면 작가의 생각을 강요하는 게 될 수도 있으며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쪽수를 늘리려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결국 비교적 많은 자료를 찾아서 수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인물(허균, 정약용 등)에 치우친 것과 1장을 제외하면 단순한 인물 소개를 벗어나지 못한 점, 특히 책이 전혀 하나의 흐름을 잡지 못하고 각각의 장과 에피소드가 따로 따로 설명하는데 그친 점은 책과 글쓴이에 대해 실망하게 하는 점이다. 즉,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선택하신 분은 이 책의 1장만 보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