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개역판 까치글방 86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외 옮김 / 까치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군주론]에 대해서는 과거에서부터 읽어볼 생각이 있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주저했던 이유는 첫째, 일반적으로 '고전'을 좀 어렵고 두꺼울 것이다라는 선입관과 둘째, 서점에 존재하는 수많은 번역본들 때문이다. 하지만 [군주론]은 물론 어렵기는 하지만 [전쟁론]이나 [과학 혁명의 구조] 등에 비할 바가 아니며 본문 내용은 '고작' 177쪽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점에 존재하는 수많은 번역본들은 과연 어떤 책을 고를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한다. 분명한 것은 [군주론]은 아직 완역본이 존재하지 않으며 전부 영역본을 중역한 책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는 강정인 교수가 번역한 [군주론]이 여러가지 면에서 가장 뛰어난 번역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이른바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읽기도 힘들지만 서평이나 요약하기에도 쉽지 않다. 특히 이미 많은 분들이 읽고 연구하는 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다는 점이 굉장히 낯 뜨거운 일이며 자신의 지적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서평 쓰기에 주저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이 책을 비록 읽었지만 모든 '책'이 그렇듯이 이 책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이나 글쓴이의 처해진 상황에 대한 지식이 없고서는 고작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나는 정치외교학이나 이탈리아 역사를 공부한 적이 전무하기 때문에 [군주론]을 온전히 소화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여러운 책이라도 계속 되풀이하여 읽다보면 글쓴이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자 싶어하는 속내를 알 수 있다. 나도 계속하여 이 책을 읽으므로하여 이 책을 집필한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먼저 [군주론]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상황과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래 마키아벨리는 1498년 피렌체 공화정에 발탁되어 14년 동안 많은 외교적 임무를 띠고 외국에 파견되었으나 1512년 갑작스런 피렌체 공화정의 붕괴와 더불어 그의 공직생활도 끝나게 되었으며 1513년 2월에 불발로 끝난 정권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로 투옥되어 고문받은 끝에 자신의 농장에서 은둔하게 되었으며 1513년 후반에 [군주론]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글쓴이가 [군주론]을 집필한 이유는 현재 피렌체의 군주인 메디치 가에 자신의 정치적 식견과 능력을 입증하는 책을 헌정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었고, 나아가서 공직에 복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군주론]은 군주제가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역설하는 내용일 수 밖에 없었으며 하지만 공직 복귀가 불가능해진 이후에 집필한 [로마사 논고]에서는 군주제 이후에는 공화제로 정치체제가 바뀌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결국 [군주론]을 이해할때도 이런 글쓴이와 시대 상황에 대해 잘 고려해보면 행간에 숨어있는 진실로 마키아벨리가 말하고 하는 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군주론]을 통해 드러나 글쓴이의 정치사상은 대표적인 현실주의를 지향하며 정치역역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역설했다는 점에서 근대 정치사상의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특히 그는 현실주의적인 시각에서 공적인 윤리와 사적인 윤리를 구별하면서 군주에게는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 비정하고 냉혹한 행위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영혼의 구원을 원하는 자는 차라리 정치영역에 들어서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욕'에 못이겨 정치영역에 발을 내딛다가 그동안 쌓아 왔던 명성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던가? 이를 보면 '정치'라 함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돈이 든 성배'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이어서 마키아벨리는 정치에 있어서 '외양'(appearanc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통치자는 능란한 위선자요 가장자여야 하며 성실함, 자비, 인간애 및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역자의 해제를 참고하자면 역자는 '서구에서 민중의 지속적이고 끈질긴 투쟁을 통해서 확보된 현대의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에서 인민주권론과 민주주의를 이름뿐인 허울에 불과헤 만든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정치적 선전과 상징조작 - 곧 외양의 조작 -에 근거한 대중정치라는 점만을 지적하고자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보면 역자는 최소한 '외양'에 대해서 만큼은 마키아벨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즉, 과거 군주제 아래에서는 군주가 보여주는 '외양'이 정치를 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면 현대 민주주의 아래서는 '외양'이 장점보다는 단점이 부각되어 '대중정치'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이어서 당시 시대에서 가장 획기적이었던 '군대'에 대한 주장을 살펴보자. 당시에는 용병을 이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어떠한 군주도 자신의 군대를 양성하지 않는 한, 훌륭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이야 상비군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신민들에 의해서 사랑받는 군주라면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결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결국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주론]은 이와 같이 현실주의를 지향하며 정치역역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주장하여 이른바 기독교적 윤리가 정치영역에서는 오히려 '나쁜 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최초로 주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9.11 이후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된 세계 정치 역학관계에서도 이런 점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자 후기에 수많은 오역으로 가득찬 번역본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타나 있다. 특히 글쓴이는 이런 번역본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오역본이 가득한 이 상황이 독자들의 무감각과 지적 풍토 일반의 책임이며 이러한 책이 널리 보급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의 이른바 '고급문화'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들어내는 단면처럼 보인다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에 자신이 번역한 "이 책은 이탈리아어에 능숙하고 정치사상사 일반은 물론 마키아벨리 사상에도 정통한 번역자가 [군주론]에 대한 탁월한 번역서를 낼 때까지, 잠정적이고 과도기적인 가치를 지닐뿐이다"라고 다시 한번 제대로된 번역서가 나오기를 기원하고 있다. 나 또한 비록 이 책을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완역 [군주론]이 나온다면 당장 구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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