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정도를 야외에서 걸어다니다가 모 커피 전문점의 야외매장에서 아메리카노를 사 먹었다. 한 모금 마신 후에 나도 모르게 "와 이 커피 진짜 맛있다. 여기 커피가 원래 이랬나?" 했더니 평소 고진감래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오력하는 자가 "원래 추울 때 마시는 커피가 맛있지."라고 했다. 진짜 맛있는 커피는 겨울 라이딩 후에 마시는 커피라고 했다. 보온병 2개를 준비해 간다. 보온병 1개는 커피용, 다른 1개는 컵라면용. 사람들이 편한 집 놔두고 굳이 캠핑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뭔가 부족하고 힘든 상황에서 허기를 채울 때가 제일 맛있다고. 그 설명을 들은 내 반응은 "그게 바로 인간이 결함 투성이라는 증거야. 굳이 고진감래할 필요가 뭐가 있느냔 말이지? 왜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 것이며, 왜 맞아가면서 훈련을 해야하는건지...엔돌핀, 아드레날린 그런 게 애초부터 없어야 하는건데. 생각해보면 조물주란 작자는 식물을 만드는데에만 최선을 다한 것 같아. 햇빛과 물만으로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내는 존재. 완벽하지!! 정말. 하지만 동물은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낼 수 없잖아? 그 전제조건 자체가 '고통'의 원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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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영화 <윤희에게>를 봤다. <윤희에게> 상영 시간표와 내 생활의 일정이 어긋나서 보질 못했다. 물론 피곤과 극장까지 가기엔 너무 귀찮아 하는 마음도 컸다. 왓챠에 신작으로 있어서 봤다. 나는 이미 윤희에게 ost를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는 그 음악과 나래이션들이 장면으로 펼쳐지는 걸 보는데...그냥 서럽고 슬펐다.

마음의 바닥에 큰 슬픔을 닻처럼 내려두고 현실에 정박된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면 왜 태어나야만 할까?

사람들을 보면 영화 <4등>의 준호 같다. 살려고(1등을 하려고) 온갖 비참함(대걸레 자루나 빗자루 자루로 맞는 것)을 견디면서도 삶(때리는 코치)을 욕하지 못하고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좋게 해석(코치님은 내 실력 향상을 위해서 때리는 거니 참자, 1등 하자)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좋다라고 맹신한다는 점이 준호 같다. 물론 준호는 나중에 깨닫게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나는 오래 안살고 안락사 할건데."라고 말할 때의 사람들의 표정은 내가 마치 "나 사람을 죽였어." 라고 말했나 싶어서 잠시 내가 한 말을 되새김질 해보곤 한다. 태어나서 사는 것이 그렇게 좋나? 뭐가 좋지? 다들 <4등>의 준호엄마처럼 아들의 피멍이 든 허벅지를 보고도 못 본 척 그렇게 사는 건가? 그래서 사는 게 좋은건가?  

 

고진감래만이 인간 삶의 진리라면 나는 그 진리 사양이다.

쾌감과 고통이 없는 완전한 충만한 상태에서 만족감을 느끼면서 살 수 없는 데 왜 태어나서 굳이 살아야 하는지 정말 살면 살수록 이해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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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거나 말거나 내 아침은 시종일관 드립커피다. 곁들이는 음식은 빵일수도 쿠키일수도 떡일수도 있지만 여튼 아침의 나에게는 카페인이 함유된 뜨거운 액체가 필수다. 늘 말하는 거지만 카페인이 몸 속에 스며들어서 뭔가 정신이 빠릿해지는 기분이 들 때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렴 내일은 산삼보다 더 용하다는 대체공휴일이다. 덕분에 일요일 아침 내 마음은 할결 더 너그러워진다. 카페인으로 각성된 정신을 노동이 아닌 휴식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얼마없는 횡재중의 횡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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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TV에서 연날리는 장면을 보다가 갑자기 어렸을 때 연만들기 하던 게 생각이 났다. 요즘은 어렸을 때 생각이 정말 자주 떠오른다. 폭삭 늙어버린 나를 보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먹어서 흰머리 염색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아무튼, 학교 준비물이 연만들기 재료였다. 문구점에서 연만들기 재료를 사고 싶었었는데 아빠가 대나무를 깎아서 연살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근사한 방패연을 만들고 싶었던지라 연살이 6개는 필요했었는데, 손재주가 전혀 없었던 아빠에게 6개의 연살은 무리였다. 그래서 연살이 2개만 있으면 되는 가오리연을 만들수 밖에 없었다. 종이는 엄마가 오려준 창호지. 연살이 이쑤시게 만큼 가늘었어야 하는데 나무젓가락만큼 굵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 연은 날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무거운 연살때문인듯 했다. 대나무를 깎는 아빠를 미심쩍어 하면서 아빠 옆에 쭈그려 앉아 있던 게 문득 생각이 났다. 2020년 현재 이런 아빠는 매우 가정적이고 자상한 아빠의 표본일지 몰라도,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건 오직 가난해서였을 뿐이었다. 

아무튼, 내 부모 두 사람은 돈이 들지 않는 모든 건 최선을 다해서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돈 드는 건 거의 해주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 시절 바람이 부는 겨울날에는 누군가는 꼭 그 장소에서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걸 발견하면 나는 벙어리 장갑과 외투를 주섬주섬 껴입고 연 날리는 장소(나무도 없고, 전봇대도 없는 곳!!)로 달려나가 나도 좀 날려보자고 친구를 졸라서 잠시 잠시 연날리기를 할 수 있었다. 


또 겨울에는 얼음썰매도 많이 탔다. 원래는 위험하다고 못타게(얼음 녹아서 물에 빠져 죽을까봐)했는데 아빠가 어떤 땅주인과 협상해서 안전한 땅에 약간의 물이 고이게 하고 그게 얼게 만들어서 그곳에서 안전하게 썰매를 탔던 기억이 있다. 일년 내내 창고에 보관했던 얼음 썰매의 스틱과 썰매의 날 부분에 슨 녹을 사포로 반질반질하게 닦아낸다. 나는 아빠 옆에 쭈그려 앉아서 이런 저런 요구사항을 말한다. 아무튼 돈이 들지 않는 모든 요구사항은 체결된다. 하지만 손재주가 없는 아빠가 수선해준 썰매가 잘 나갈리가 없다. 친구랑 경주를 하면 항상 내가 졌다. 그러면 나는 또 집에 가서 아빠한테 썰매 날을 더 날렵하게 갈아달라, 아니 날을 바꿔달라, 스틱이 이상하다 스틱의 못을 다시 박아달라 이런 저런 요구를 했었다. 어떤 친구들은 눈썰매장을 가고 사람들은 스키라는 것도 타고 그랬었지만, 나는 계속 공터에서 얼음썰매를 탔었다. 군데 군데 녹이 쓴 날을 가진 핸드메이드 썰매로. 


이상하게도 요즘은 생전 떠오르지 않았던 어린 시절, 많은 것이 부족했지만 나름 즐거웠던 일화들이 아련히 떠오르곤 한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서 연을 날릴까?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연날리기 같은 건 필요가 없을지도. 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에는 연을 날려야 제 맛이긴 하지만 연날리기만큼 즐거운 무엇인가로 미래에 비하면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나름 즐거운 일화를 요즘의 어린이들도 만들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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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라면을 먹었더라면서 아빠 밥 해주러 집에 가야한다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엄마, 진짜 엄마를 보면 팔자는 셀프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같은 사람들이 제일 나빠. 상대방이 바라지도 않는 친절과 정성을 부담스럽게 퍼다주면서 내가 너한테 이만큼 해줬는데 너는 나한테 해주는 게 뭐냐 하는 사람들. 내가 남한테 이만큼 해주면 남도 나한테 이만큼 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남에게 잘해주지마. 그렇게 주고 받지 말고 그 정성으로 엄마 본인한테 잘해줘. 각자 행복은 셀프로 추구하면 될 것을 뭣하러 그걸 주고 받으면서 서로 싸우면서 사니 못사니 니가 내 인생을 망쳤니, 내가 너 때문에 병이 났니 어쩌니 하는건지..." 라고 했더니 엄마는 "니는 말하는 게 꼭 법륜스님같다." 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나와 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꼭 "너는 정말 결혼 안해?"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결혼 왜 해야 하는데?"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내 대답이다. 그러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에 꼭 결혼해야 할 필요는 없지..."라고 말끝을 흐리고 마는데, 이번에 한 친구는 "그래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결혼하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 라고 하길래 "아마 불가능할거야. 나는 나 자신만이라도 정말 좋아하고 싶거든. 나는 나를 좋아해주고 챙겨주고 돌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쳐."


다들 마더 테레사도 아니면서 자신을 방임하면서 가족을 챙기는 걸 보면, 어휴 어버이연합이 박근혜 걱정하는 것도 이것보다는 덜 오지랖이겠다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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