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 시모다
리처드 바크 지음, 박중서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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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쓰기 싫었지만 쓰게 된 책

 

갈매기의 꿈으로 나에게는 청소년기부터 유명한 이름인 리처드 바크는 내 기대와 전혀 다른 태도로 서문을 시작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글을 쓰지 않으려 했다는 것. 그런데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기록하지 않을 도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책이라는 것.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글쟁이의 말이구나 싶고. 한편으로는 글쟁이가 뭐 이렇게 글을 쓰기 싫어하나 싶기도 하고. 어떤 측면이든지간에 누군가가 머릿속에 이렇게 근사한 소설을 쓸 수 있는 원천을 불현듯 떠오르게 해 준다면 그저 부러울 뿐이다.

 

3달러로 갖게 되는 자유

 

리처드는 사람들을 비행기에 태워주는 일을 하고 있다. 한번에 3달러다. 시모다 역시 한번에 3달러를 받고 사람들을 태워준다. 그리고 덤으로 걸어다니지 못하는 사람을 걸을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실현하는 능력이 메시아의 것이라면 시모다는 메시아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통해 이 능력을 습득한 리처드 역시 메시아이다. 하지만 메시아는 기적을 가져오는 사람이 아니다. 기적이란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듣는 것이다. 시모다는 여기에 실패했고, 그때문에 좌절했다. 그런 그에게 리처드가 말한다. 당신의 행복은 남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냐고. 시모다가 리처드로부터 얻은 큰 자유의 하나는 바로 이 질문에 있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착각. 스스로 자유롭지 않다면 행복하지 않을것이고,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를 꺾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한다면 그렇다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모든 일은 순리대로 될 것이라는 .

 

"만약 황금률이 '남들이 원하는 바대로 남들에게 행하라'로 바뀐다한들, 우리는 남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턱이 없고, 오로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만 아느니라. 중략 '네가 진정으로 남들에게 행하고 싶은 대로 남들에게 행하라.'" p.198

 

리처드는 이러한 답변으로 수업을 다 받게 된다. 그가 메시아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이 책을 쓰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해하게 만들고, 또 그렇게 살도록 하려는 의도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메시아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메시아 핸드북의 마지막은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 나와 있는 / 모든 것은 / 틀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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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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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추리 소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추리 소설에는 명탐정이 등장한다. 이렇게 등장한 명탐정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서 여러 개의 시리즈를 갖게 되는 경우도 많다. 유명한 셜록 홈즈도 그렇고, 괴도 루팽은 범죄자이기는 하지만 시리즈 후반으로 갈수록 탐정스러운 면모를 보여준다. 우리의 마플양도 빼 놓을 수 없고, 그리고 포와로는 당연 유명한 명탐정이고. 일본에는 긴다이치 코스케와, 가가 고이치로, 최근 읽은 소설에 등장하는 시라토리역시 명탐정이다. 법의학쪽으로는 서양에도 스카페타라는 여성 법의관이 있으며, 이밖에 시리즈까지 가지지 못했어도 다양한 직업을 지닌 명탐정들은 소설에 드라마에 만화에 각각의 개성을 뽐내며 멋지게 등장하고 또 다시 돌아온다. 이들을 읽은 후에 디저트 삼아 펼쳐들면 좋을 책이 이 명탐정의 규칙이다.   

 언제나 틀리는 2인자. - 오가와라 경감

명탐정의 규칙이니까 당연히 명탐정이 등장해야한다. 그런데 명탐정보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사실 명탐정 소설에서 빠지면 섭섭한 인물이 바로 이 경찰이다. 법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 공권력의 존재가 무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번 사건은 너무 복잡해서 나는 해결할 수 없다고 무능을 인정해 버리는 속편한 인물.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탐정중 한 사람인 몽크의 경우에는 경감이 제법 멋지지만^^) 그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 매번 알아도 모르는 척 해주기 어렵다는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할 때 독자들은 그의 처지에 공감하게 된다. 명탐정의 그늘. 사건 현장에 먼저 도착해도 늘 물러나 있어야 하는 그림자. 댁도 참 불쌍하우.  

독자를 감동시키는 논리력 폭발의 1인자 - 덴카이치 다이고로 

긴다이치 코스케와 가가 고이치로의 묘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름같지 않은지? 두 명탐정의 조합이니만큼 수식어도 부끄러울 만큼 길다. 등장인물들은 작가가 캐릭터를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해 내세우는 상투적인 명칭이라고 수군대지만. ^^ 이 인물은 명탐정답게 등장하여 명탐정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본격적인 재미는 이 인물이 수사해나가는 추리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인물이 소설 속에서의 자기 역할이 아니라 현실로 돌아와 오가와라 경감과 대화하며 자기가 이렇게 간단하고 가당찮은 트릭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는 것을 한탄할 때 생긴다. 맞아맞아. 그래그래.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 모르겠다.   

범인은 의외의 인물 - 히가시노 게이고

의외성. 반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작가라면 늘 고민할 것이다. 대개의 트릭들은 모두 발견되었고, 과학의 발전을 따라 범행의 방법까지도 첨단화 되어가고 있는데다 독자들은 웬만한 이야기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시점에서 추리 소설을 쓴다는 것.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이런 정도의 스토리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겠느냐고 자조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작가생활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으로 들리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뻔한 스토리도 읽어주겠다는 아량을 보일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는 의외성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다양한 인물들이 범인일 수 있다고 소설의 모든 부분에서 소리치고 있다. 이제 작가만 빼고는 다 범인이다. 다음에는 작가가 범인인 소설을 써버릴지도.  

이 책은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독자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우선 추리소설을 좋아할 것. 그리고 몇 가지 명탐정 시리즈를 읽어본 독자일 것. 하나 더 추가하자면 트릭을 간파하기 위해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분석 및 도면 그리기, 시간표 정리하기 등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 당신이 그런 독자라면 이 책을 박장대소하며 읽어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조건에 만족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다. 절대 진지한 추리소설을 기대하지 말 것. 그런 기대만 버린다면 다양한 트릭과 여러 사건과 많은 범인을 만나는 추리 소설의 박물관을 또는 오마주를 또는 패러디를 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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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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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니카 공화국은 식민지로 시작된 나라다. 1492년에 발견된 이래로 끊임없이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에 놓여있었다. 타국의 지배를 벗어났나 싶었지만 정권을 갖게 된 자국의 정치인들은 독재를 일삼았다. 1978년에야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해낸. 다른 것들을 다 차치하고 정치만 가지고 말한다면 후진국에 속할. 그런 나라다. '염소의 축제'는 이 암울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 중에서도 암흑기였던 트루히요 정권의 마지막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족벌정치를 펼친 독재자. 이 포악한 염소의 피를 흘리는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여기 네명의 인물이 자동차 안에 숨죽이며 도로에서 오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다.

충성은 어떻게 변질되는가. 

트루히요를 죽이기 위해 모인 네 사람. 살바도르와 아마디토, 임베르트. 그리고 델라 마사. 이 중 살바도르를 제외한 나머지는 변절자들이다. 트루히요를 위해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들이었다. 임베르트는 트루히요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국가에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를 긍정했었다. 아마디토는 트루히요가 정당한 권력자라고 생각했다. 델라 마사는 그를 증오했지만 그가 주는 이익을 받아들이고 한때나마 그 평안을 누렸었다. 그러나 모두 그에게서 가족과 연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증오는 이토록 개인적인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개인적 비극이 국가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변질된 인물이 또 한 사람 등장한다. 바로 트루히요로부터 버림받은 아구스틴 카브랄의 딸 우라니아이다. 그녀의 변질도 엄밀하게 말하면 가족의 해체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겉모양은 아버지에게서 그녀를 떠나게 만든 것처럼 보일테지만 실상은 그녀로부터 아버지를 없앤 것이다. 트루히요는 능력있고 자애로운, 그녀가 말했듯이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였던, 유일한 가족을. 트루히요의 총애를 얻기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추악한 추종자로 바꾸어 놓고 말았다. 

삶은 독재할 수 없다. 

3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트루히요가 그 자리에 그렇게 오래도록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의 정치기 마지막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지만 그의 추종자 헨리 치리노스가 트루히요를 위해 그의 개인 재산을 축내기보다 국가의 재산으로 만들어 국가가 손해를 보도록 하자고 했을 때의 반응으로 통해 그가 국가를 위한다고 여기는 그 신념의 저변을 볼 수 있다. 그는 자기가 조국을 부유하게 하며, 자기가 꿈꾸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자기의 돈을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그 권력으로 국가의 모양을 만들었다. 그랬던 그가 자기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의 분노. 절박함. 도로변에서 네 사람이 간절하게 기다리는 차 안에는 젊음을 되찾겠다는. 삶을 다시 자기 발 아래에 두겠다는 트루히요의 의지가 가득 들어 차 있었다.  

이제 편지에 답장을 쓰자.  

35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우라니아가 떨쳐내고자 했던 것은 독재의 기억이었다.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독재의 상처. 트루히요가 죽은 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그가 살아있었던 때의 공포와 무기력함이 남아있어 그들을 조종했던 것처럼 우라니아는 고국을 떠나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와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계속 그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몸짓을 보이는 남자에게 얼음같이 차가워지는 여자. 가족과 사랑을 소유할 수 없게 된 여자로 살아온 것은 그녀의 성격적 결함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그녀는 그녀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답장을 써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점차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그녀 역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그녀를 트루히요의 사슬에서 온전히 벗어났다는 증거가 되어 줄 것이다.  

식민의 역사에서 이어진 독재의 역사. 그리고 공포. 독재자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정치적인 혼란과 다시 그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남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어느 인물이든 우리의 이름을 붙여주면 마치 우리 역사속의 누군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조차 통치권력의 매혹과 기능과 부패와 타락은 동일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되새겨야 하기 때문이다. 우라니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과거의 독재를. 그 역사를 자꾸만 꺼내고 파헤치고 기억해야한다. 그래야 과거에서 벗어나 온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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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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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미스터리라고 하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도 잠깐 멈칫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추리소설을 즐기기 위해서 책을 골랐을 때에는 어려운 용어들이나 새로운 개념의 등장에 발목을 잡히기 싫게 마련이다. 그러니 집어들었다가 내려놓을 때도 있다. 다른 거 먼저 읽고 이건 좀 머리 잘 돌아갈때 읽자. 뭐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고민할지도 모를 예비독자들에게 미리 밝혀둔다. 읽어보라.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술술 읽었는지 궁금해질테니.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어쩌면 독자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미스터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메디컬은 메디컬이다. 생소한 용어, 새로운 개념은 당연히 나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읽게된다. 그래서 미스터리다.   

수사에 적격이라고 모두가 인정하지만 본인만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수사관 - 신경내과강사 다구치 고헤이. 

문제의 해결을 맡은 주인공이 기세 등등하게 등장해서 남들은 가지지 않은 재능을 드러내보이면 독자로서 안심이다. 주인공을 믿으면 된다. 이 사람이 답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지켜볼까. 라는. 느긋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인물. 논리적이기도 하고 제법 머리도 잘 굴리지만 당최 믿음직스럽지는 않다. 그를 이 문제에 끌어들인 다카시나 병원장 앞에서 끊임없이 감점받을 소리만 골라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이 임무가 결과적으로 절대 득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간다. 게다가 그는 이 문제가 문제라는 확신도 없다. 그가 이 수사를 혼자서 완수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인지도 모른다. 

구치외래가 수사에 미치는 영향 - 다구치의 패시브 페이즈 

그가 하는 일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다. 신경정신과도 아니면서 신경정신과에서 할 법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신경정신과의 일과 상당히 다른 일이다. 이들은 정신병자가 아닌 것이다. 이들은 그저 하소연할 곳이 필요한 불평분자들이다. 그러니 정신병자보다 귀찮고, 어떤 면에서는 정신병자들보다 위험하다. 다구치의 수사는 이 경험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들의 하소연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 그래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이미지를 끌어내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일게다.  

 환자에게 열린 의사 - 기류 교이치 

바티스타 수술팀의 능력있는 의사 기류. 그는 팀을 구성하고 난 후 단 한 건의 실패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팀에서 수술실패가 연속으로 일어난다. 그런데도 누구도 그의 멱살을 잡고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다. 마지막 실패에서도 그랬다. 그건 그가 열린 의사였기 때문이다. 수술 전과 후에 책임감있고 성실한 태도를 보인 의사. 그가 자신의 팀에서 생긴 문제를 간과하지 않은 이유도 이러한 그의 태도에 있다. 다구치가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면 바로 이 점이었을 것이다. 다구치역시 카르테를 환자들도 열람할 수 있도록하는 전자카르테 도입을 주장하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들 둘의 의학적 궤적은 전혀 달랐지만, 그들의 의학적 신념은 동일했다.  

다구치에게 공격성과 용기를 허하라 - 시라토리 게이스케 

다구치가 자신의 수사를 종결하고자 한 그 순간. 혜성처럼 등장한 바퀴벌레 시라토리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홈즈같은 인물이다. 행동 하나하나를 계산하고 움직이는데다, 논리력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상대가 무지하다면 가르쳐서 이해시키기보다는 간단하게 무시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홈즈와 달리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점. 다마고치같은 귀찮은 동물을 키우는 데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 다른점이라면 다른점이랄까. 조심성 많은 다구치와 대칭점에 있는 것 같은, 안하무인의 이양반은 묘하게 다구치와 일치한다. 반으로 접으면 대칭점이 결국 한 자리에 겹치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팀의 탄생 - 의료과실 사망관련 중립적 제3자 기관 설립추진 준비실 실장과 도조대학 리스크 매니지먼트 위원회 위원장 

이 거창한 이름을 달게 된 두사람은 물론 시라토리와 다구치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시라토리의 칭찬을 받았던 다구치가 이제 점점 성장하게 된다면 어떨까. 시라토리는 어떤 놀라운 논리력과 대담한 계획을 통해 다른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게 될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들의 이 새로운 지위가 길고도 험한 미래를 예언해 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독자들에게는 기대되는 즐거운 미래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팀이 정말 마음에 든다. 오랜만에 탐정소설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변칙 명탐정을 만난 기분이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 이들 팀을 중심으로 한 다음 이야기는 벌써 나와 있다. 하지만 읽기 전에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시라토리가 별볼일없음.으로 단정지어버린 얼음공주를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그녀는 논리력강한 시라토리앞에 눈물바람으로 대응하는 여자이니, 그를 당황하게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재주도 갖고 있지 않을까. ^^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지만 의외로 휴식을 꿈꾸는 다카시나 병원장도 다시한번 만나고 싶다. 그의 의외의 로맨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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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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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다이치 코스케는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더 유명할지 모르겠다.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만화를 보고 앗! 할지 모르고, 만화를 먼저 본 사람이라면 소설을 보고 앗! 할 것이다. 어느쪽이 되었든 두 장르가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된 지 오래. 코스케 시리즈로는 이번이 세번째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나스시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집안. 부유하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명성도 있는 이누가미 사헤옹이 죽으면서 남긴 유서는 그야말로 피바람을 불러오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늙은이의 머릿속에서 지키고자했던 두 인물은 그의 정식 딸들과 그 손자들이 아닌, 은인의 손녀딸이었던 것이다. 함께 살았고, 그 부유함을 함께 누렸지만 단 한번도 사랑을 받지 못했던 세 딸과 손자들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다. 그리고 한편으로 체념하며, 한편으로 살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도 의심스럽지 않은 인물이 없는 공간. 누가 죽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 상황 속에서 긴다이치는 그 더벅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자신의 맹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  

 명탐정 긴다이치를 따라가다보면 추리의 길이 보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작가의 의도는 그를 따라가면서 독자도 자연스럽게 그의 맹점에 함께 빠지는 데 있는지도 모르지만 친절하다 싶을 정도까지 그는 자신의 추리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그래서 그가 의심스럽게 여기는 것을 함께 의심하고, 그가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함께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나는 특히나 작가의 의도에 흠뻑 빠지자는 주의여서 전혀 다른 생각 없이 그를 따라 의심스러운 등장인물들 사이를 거닐어 보았다.  

범죄는 끝까지 이루어졌다. 범인을 찾아내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이래서야 과연 명탐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계획과 우연이 함께 범죄에 참여하면 아무리 명탐정이라도 밝혀내기 쉽지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 기이한 사건과 상징. 인물간의 사랑과 증오. 이런 것들이 토대 된 범죄의 현장에 탐정과 함께 발을 들여놓기 좋은 작품이다. 명탐정에 대한 신뢰도 함께 쌓아준다면 더 즐거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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