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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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니카 공화국은 식민지로 시작된 나라다. 1492년에 발견된 이래로 끊임없이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에 놓여있었다. 타국의 지배를 벗어났나 싶었지만 정권을 갖게 된 자국의 정치인들은 독재를 일삼았다. 1978년에야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해낸. 다른 것들을 다 차치하고 정치만 가지고 말한다면 후진국에 속할. 그런 나라다. '염소의 축제'는 이 암울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 중에서도 암흑기였던 트루히요 정권의 마지막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족벌정치를 펼친 독재자. 이 포악한 염소의 피를 흘리는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여기 네명의 인물이 자동차 안에 숨죽이며 도로에서 오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다.

충성은 어떻게 변질되는가. 

트루히요를 죽이기 위해 모인 네 사람. 살바도르와 아마디토, 임베르트. 그리고 델라 마사. 이 중 살바도르를 제외한 나머지는 변절자들이다. 트루히요를 위해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들이었다. 임베르트는 트루히요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국가에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를 긍정했었다. 아마디토는 트루히요가 정당한 권력자라고 생각했다. 델라 마사는 그를 증오했지만 그가 주는 이익을 받아들이고 한때나마 그 평안을 누렸었다. 그러나 모두 그에게서 가족과 연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증오는 이토록 개인적인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개인적 비극이 국가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변질된 인물이 또 한 사람 등장한다. 바로 트루히요로부터 버림받은 아구스틴 카브랄의 딸 우라니아이다. 그녀의 변질도 엄밀하게 말하면 가족의 해체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겉모양은 아버지에게서 그녀를 떠나게 만든 것처럼 보일테지만 실상은 그녀로부터 아버지를 없앤 것이다. 트루히요는 능력있고 자애로운, 그녀가 말했듯이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였던, 유일한 가족을. 트루히요의 총애를 얻기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추악한 추종자로 바꾸어 놓고 말았다. 

삶은 독재할 수 없다. 

3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트루히요가 그 자리에 그렇게 오래도록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의 정치기 마지막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지만 그의 추종자 헨리 치리노스가 트루히요를 위해 그의 개인 재산을 축내기보다 국가의 재산으로 만들어 국가가 손해를 보도록 하자고 했을 때의 반응으로 통해 그가 국가를 위한다고 여기는 그 신념의 저변을 볼 수 있다. 그는 자기가 조국을 부유하게 하며, 자기가 꿈꾸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자기의 돈을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그 권력으로 국가의 모양을 만들었다. 그랬던 그가 자기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의 분노. 절박함. 도로변에서 네 사람이 간절하게 기다리는 차 안에는 젊음을 되찾겠다는. 삶을 다시 자기 발 아래에 두겠다는 트루히요의 의지가 가득 들어 차 있었다.  

이제 편지에 답장을 쓰자.  

35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우라니아가 떨쳐내고자 했던 것은 독재의 기억이었다.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독재의 상처. 트루히요가 죽은 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그가 살아있었던 때의 공포와 무기력함이 남아있어 그들을 조종했던 것처럼 우라니아는 고국을 떠나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와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계속 그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몸짓을 보이는 남자에게 얼음같이 차가워지는 여자. 가족과 사랑을 소유할 수 없게 된 여자로 살아온 것은 그녀의 성격적 결함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그녀는 그녀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답장을 써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점차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그녀 역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그녀를 트루히요의 사슬에서 온전히 벗어났다는 증거가 되어 줄 것이다.  

식민의 역사에서 이어진 독재의 역사. 그리고 공포. 독재자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정치적인 혼란과 다시 그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남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어느 인물이든 우리의 이름을 붙여주면 마치 우리 역사속의 누군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조차 통치권력의 매혹과 기능과 부패와 타락은 동일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되새겨야 하기 때문이다. 우라니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과거의 독재를. 그 역사를 자꾸만 꺼내고 파헤치고 기억해야한다. 그래야 과거에서 벗어나 온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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