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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 - 태종실록 ㅣ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로 있기에는 너무 잘난 남자였던 이방원. 그가 드디어 본 모습을 드러낸다. 태조가 부인의 조언(이라기보다는 애교나 협박에 가깝겠지만)을 듣고 두번째 부인인 신덕왕후의 장남도 아닌 차남을 세자로 책봉하자 이방원은 분노와 함께 기회를 얻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와 달리 지략가이기도 했던 그는 오랜 기간동안 왕이 될 기획을 세운다. 태조가 정도전과 함께 일을 도모했다면 이방원은 하륜과 함께 일을 도모하게 된다. 정몽주를 제거할 때도 그랬지만 도덕적인 명분에 얽매이는 타입이 아니었던 그는. 그 아버지가 왕조를 새로 세울때도 그리 흘리지 않았던 피를 아들이 계승하는데도 더 많이 흘리게 한다. 자신의 배다른 두 동생과 여동생의 남편을 제거한 뒤에 오른 자리. 그 자리에서 왕권을 바로 세우고 세자에게 그늘이 되지 않게 하고자 흘린 더 많은 피들. 왕의 자리가 매우 비정한 자리임을 보여준 건 태종이 최초가 아닐런지. 물론 이후에도 그 자리와, 그 자리의 근처에 설 수밖에 없는 많은 인물들이 허망하게 사라지게 되지만 말이다.
그 자신이 장자를 제치고 왕위에 올랐으나 자신의 친 혈육에게까지 잔인하지는 않았다. 아마 스스로 장자를 제치고 피를 흘리며 왕위를 얻었다는 컴플렉스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명분에 얽매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여론이 좋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장자를 세자로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야사에는 양녕이 자신보다 충녕을 더 좋아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느니, 스스로도 그리 생각했느니, 등등 양녕 역시 총명한 인물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양녕이 처신을 잘 해서 살아남은 것도 있지만, 세종이 피를 흘리기를 즐기지 않는 임금이었던 탓도 있었을테니.
아무튼 세종은 임금이 된 이후에도 아버지 태종에게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태종이 그의 뒤를 봐 주었기에 세종이 자연스럽게 임금의 권력을 굳게 잡고 시작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으니 바로 세종이 집권했다면 어떠 했을지를 알아낼 수 없지 않은가. 이 세종은 전쟁터를 누비며 시작하지 않은 최초의 왕이 되었다. 우리 문민정부의 시작이랄까.. ^^;;
이 세종과 문종의 이야기를 다루는 4권에 오면 약간 지루해질 수도 있다. 세종이 이룬 업적이 한 두가지가 아닌 데다가 워낙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어서 어딘가 한 분야에서 흐름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편안한 마음이어야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 아.. 과학과 음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려다가 한 페이지를 몇 번씩 읽어내야 했는지. ㅠㅠ 읽기는 힘들지만 뿌듯한 마음이 드는 부분이다. 문종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매번 안타까워하게 되지만. 이제 조선왕조의 초기를 서서히 지나게 된다. 이제 서서히 왕이 되기 위해서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