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낭만녀 "꿈이면 어때, 백마 탄 왕자님 … 역시 순정물"

[중앙일보 2006-07-15 ]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취향이 엇갈리는 경우가 어디 한두 가지이겠습니까만 만화 고르기는 그중 대표적인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주 '책캉스'는 추리.미스터리 소설, 여행 에세이에 이어 세번째로 '만화남녀'를 준비했습니다. 남녀 칼럼니스트 두 명이 남녀의 취향을 세심하게 고려해 휴가철 읽을 만한 만화를 추천했습니다. 촌철살인의 유머가 반짝반짝하는 웹툰(인터넷 연재만화) 중 최근 책으로 출간된 작품들도 챙겨봤습니다. 국내 작품과 일본 작품의 비율을 가급적 맞추려고 애썼습니다.

강추1 ▶ 사랑해(전 2권, 허영만 그림, 김세영 글, 김영사)=그 옛날 초등학교 국어책에서 영희와 철수는 바둑이와 놀았다. 하지만 허영만 만화 '사랑해' 속에서 영희와 철수는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속도위반을 했고, 결혼을 했으며,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신혼의 단꿈에 젖는다. 만화가 남편과 철없는 아내, 파란만장한 유아기를 보낼 아기까지 삼위일체 세 식구가 이루어내는 단단한 사랑, 그것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긴다.

만화가 허영만과 스토리 작가 김세영 콤비의 찰떡궁합은 세월이 가도 망가질 줄 모른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세이툰 류의 말랑한 감수성과 달리 이들 콤비의 독특한 성찰은 보고 또 봐도 감탄스럽다. 누군가를 파멸시키고 성공하는 대신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그리는 만화다. 사랑에 관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울고 웃는 주인공들의 삶은 뻔한 감상주의가 따라올래야 따라올 수 없는 사색과 깨달음을 안겨준다. 언제 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만화다.











강추2 ▶ 불의 검 애장판(전 6권, 김혜린, 대원씨아이)=명실상부한 한국 순정만화의 걸작. 작가 김혜린씨가 연재 12년만인 2004년 말 완성한 이 대서사 판타지 로맨스는 험난한 세월을 겪어낸 사람들을 위한 해피엔딩으로 세월을 아우른다. 배경은 고대 철기 부족 카르마키와 청동기 부족 아무르가 오랜 싸움을 하던 시대. 그 속에서 기억을 잃은 아무르의 최고 전사 가라한과 산골 처녀 아라의 가슴 저미는 사랑 이야기가 근 10여 년 간 지속되면서 수많은 팬들을 애타게 했다. 결국 기억을 찾은 가라한은 아라를 아내로 맞는다. 아라는 불칼을 두드리며 격랑의 시대를 살아낸 여성의 성장을 보여준다. 이밖에 아무르의 왕 마리한과 신녀 소서노, 여장 남자가수 바리와 카르마키의 마녀 카라 등 완벽하게 선하거나 악하지 못한 인물들의 삶도 '불의 검' 페이지 곳곳을 장식한다.



 

 

 


김혜린씨의 작품 가운데 판타지와 시대극이 가장 선명하고 농도 짙게 결합된 이 만화는 작가에게 더이상 무엇도 요구할 수 없는 경지가 어떤 것인지 말해준다. 아라로 대표되는 여성의 단아하고 넉넉한 이미지는 전쟁 같은 삶이 부서지지 않도록 세상을 받쳐온 힘이야말로 여성에게 있다는 작가의 의지를 드러낸다. 가슴 속에 불칼 하나씩 벼르고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만화이다 보니 어느 곳을 펼치든 모성이 가득하다. 무더운 여름, '불의 검'이 들려주는 건강한 야만의 노래를 지친 눈과 귀에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진정한 재충전이야말로 이런 것이니.



 




김혜선 (영화주간지 필름 2.0 기자)


추천작 (여성용)











■ 그린빌에서 만나요(전 4권, 유시진, 서울문화사)=그린빌 아파트에 사는 평범하고 외로운 고교생 도윤. 어느날 아파트에 이사 온 사이비.사이언 남매와 마주치면서 생활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소통과 성장을 담담하게 그리는 역작.

 

 

 

 


■ 엠마(현 7권, 카오루 모리, 북박스)=19세기 영국 귀족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귀족 윌리엄과 하녀 엠마의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 영국 귀족과 하인들의 일상을 지극히 평범하게 묘사하면서도 캐릭터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담아낸다.

 

 

 

 


■ 불친절한 헤교씨(현 2권, 박기홍 글, 김선희 그림, 작은책방)=너무 유능해서 무시당하는 게임회사 여직원 소헤교의 서바이벌 스토리. 지하철 무가지와 포털사이트를 돌며 연재를 지속하다 단행본까지 출시된 파란만장한 만화다.

 

 

 

 


■ 백귀야행(현 14권, 이마 이치코 지음, 시공사)=일본 전래 괴담들을 다루는 판타지 호러의 모범 답안. 가장 전통적인 일본 가정 '이이지마' 가문 사람들을 통해 괴담을 풀어나간다. 괴담을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센스가 탁월하다.

 

 

 

 


■ 궁(현 12권, 박소희, 서울문화사)=해방 이후 남북분단 없이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가상의 한반도가 배경이다. 평범한 여고생이 세자빈이 되면서 궁중이 소란해진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근래 보기 드문 한국 만화계의 대형 히트작이다.



 





 








■ 바람의 저편(전 14권, 히가와 교코, 서울문화사)=어느날 갑자기 별세계에 떨어진 여고생 노리코와 정체불명의 남자 이자크. 이들은 서로 죽여야만 하는 운명의 연인. 판타지 서사극과 순정 로망의 결합이 보기 드물게 멋진 만화다.

 

 









 

 



 

■ 사랑의 아랑훼스(전 4권, 마키무라 사토루, 서울문화사)=1980년대 해적판으로 소개돼 순정만화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은 작품. 지난해 정식 번역본이 나왔다. 피겨 스케이팅을 소재로 은반 위에 선 천재들의 사랑과 고뇌를 그렸다.












■ 절대미각식탐정(테라사와 다이스케, 학산문화사)='미스터 초밥왕' 작가의 최신작. 주인공은 언제 어디에서건 음식을 먹으며 단서를 찾아내는 절대미각의 소유자 다카노. 그가 독특한 미각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기선, 서울문화사)='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개그 버전. 게임방을 경영하면서 게임 폐인이 된 엄마 가영과 딸 옥희 그리고 '자뻑'과 자폐 기질의 만화가 선생님. 이들의 삼각 만담 코미디가 펼쳐진다.











쾌걸남 "불의에 불끈 … 뭐니뭐니 해도 무협 판타지"

강추1 ▶ 아파트(전2권, 강풀, 문학세계사)=진정한 공포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적 공간,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아파트 주민들은 서로를 잘 모른다. 하지만 사는 공간은 밀착돼 있다. 공간마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지만 정작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잘 만나게 되지 않는다.

'아파트'는 아파트라는 공간이 주인공인 공포물. 밤의 특정시간에 반대편 아파트의 모든 불이 꺼지고 누군가가 죽는다. 익명의 공간, 익명의 죽음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각자의 사정과 깊은 원한이 서려 있다. 수많은 주인공들마다의 사연을 촘촘히 깔고 서로 미묘하게 교차시켜 나가는 작가 강풀의 솜씨는 발군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그 속에는 필연적인 비밀, 미묘한 오해들이 서로 엇갈린다. 공포와 해학이 수시로 교차하며 사람 사는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여름철 강추하고 싶은 작품이다.

강추2 ▶ 일지매(전8권, 고우영, 애니북스)=호쾌한 재미의 원형 하면 역시 기구한 운명에 맞서며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호걸의 일생 만한 것이 없다. 다만 그것이 허황된 공상에서 그치지 않고 진짜배기 쾌감을 줄 수 있으려면 초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사는 향기가 진해야 한다. 고우영의 사극만화들이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정수가 담겨 있는 게 바로 '일지매'다. 양반계층의 사정으로 버려지게 된 서자 일지매가 기구한 운명을 겪으며 청나라와 일본에서 수련한 무술을 바탕으로 의적이 돼 부패한 조선사회에서 활약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고우영식 해학과 풍자, 자유로운 서술 방식이 완전히 제 모습을 갖춘 명작이다. 특히 일지매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복합적인 심경 묘사와 변천 과정은 섬세함의 극치를 이룬다. 무협물이자 정치


사극의 요소도 띠고 있으며, 일지매라는 한 인간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한 탁월한 모험물이다.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가 제도 전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소리꾼이나 마당극의 광대처럼 호쾌하고 시원하게 세상을 풍자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솜씨 앞에서는 옥에 티에 불과할 뿐이다.

김낙호 만화 칼럼니스트 capcolds@hotmail.com

추천작 (남성용)

■ 단구(현 8권, 박중기, 학산문화사)=상고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양식 무협 판타지. 운명과 맞서는 처절하고 호쾌한 싸움의 연속이 강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 식객(현 12권, 허영만, 김영사)=한국 요리를 가장 먹음직스럽게 그려내는 만화. 음식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히스토리에 (현 3권, 이와아키 히토시, 서울문화사)=알렉산더 대왕의 전투 서기관 에우메네스의 특이한 일대기. 인간 사회에 대한 물오른 통찰력으로 중무장했다.








■ 츄리닝 (현 5권, 이상신 글, 국중록 그림, 애니북스)=허름하고 편한 차림새로 친한 복학생 선배 자취방에서 농담 따먹기를 하는 듯한 분위기의 개그만화. 인간의 치졸함에 대한 멋진 유머.





 







어~이! 료마(현 17권, 다케다 데츠야 글, 코야마 유우 그림, 삼양출판사)=검술의 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세를 평정하기 위해 힘보다 화합과 실용주의를 펼친 일본 근대화의 일등공신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










 

 

 



■ 야후 (전 20권, 윤태호, 학산문화사)=1980~90년대를 관통하는 이 사회의 부조리함이 한 인간을 어떻게까지 분노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대안역사 SF물. 거침없는 호흡과 전개 덕분에 마지막 권까지 손을 놓을 수 없다.

 

 

 

 

 

 




■ 바람의 파이터 (전 10권, 방학기, 길찾기)=강함의 진리를 찾아 나선 구도자 최배달의 인생. 굵고 간결한 화풍 속에 진정한 강함을 추구하던 의지가 역동적으로 녹아 있다.









■ 비천무 (전 4권, 김혜린, 대원씨아이)=선 굵은 무협물의 틀에 드라마틱한 순정만화 특유의 섬세함이 결합된 수작. 여성 팬들도 많지만 남성 팬들도 많은 대하 무협사극.

 

 

 

 


■ 아기공룡 둘리 (전 5권, 김수정, 대원씨아이)=언제 봐도 유쾌한 명랑만화. 둘리의 귀여운 모험도 재미나지만 둘리가 식객으로 눌러 살고 있는 집의 가장 고길동이 주는 페이소스가 일품이다.



 

 

중앙일보 &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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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의 밤이 다가온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오싹한 공포·스릴러 소설로 더위를 잠시 잊어볼 만하다. 여름을 맞아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공포소설 작가 2인의 대표작이 차례차례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

평범한 일상 생활도 조금만 비틀면 지옥이 되어버린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작은 공포를 새롭게 발견해 극대화시키는 작가다.

겉으로 보기에 정상적인 인물 속에 숨어있는 광기와 공포를 발굴해내는 것이 특기인 그는 에드거 앨런 포의 진정한 후계자로 불리며, 공포소설을 정통문학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애완동물 공동묘지’(황금가지·전2권)는 한 평범한 가정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죽어버리면서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를 다룬 소설이다. ‘스켈레톤 크루-스티븐킹 단편집’(황금가지·전2권)은 그의 번뜩이는 상상력이 빚어낸 놀랍고 섬뜩한 단편 22편이 실려있다. 책에 수록된 단편 ‘안개’는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 등 킹의 소설을 영화화해온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영화로 제작중이다. 이밖에도 ‘그것’ ‘샤이닝’ 등이 같은 출판사에서 묶여나왔다.

#비뚤어진 여성들, 기리노 나쓰오

연약하고 갸냘퍼보이는 외모 속에 기괴하고 뒤틀린 내면을 가진 여인들. 일본 소설가 기리노 나쓰오 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이다. 여류작가인 기리노 나쓰오는 여성들이 감추고 싶은 자기중심적이고 잔혹한 부분을 집요하케 캐낸다.

그의 ‘그로테스크’(문학사상사)는 낮에는 대기업 엘리트 여사원으로, 밤에는 매춘녀로 활동하던 미모의 여인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살해당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반대로 ‘아임 소리 마마’(황금가지)는 자신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며 살인과 방화를 일삼는 엽기적인 여성 살인마를 다뤘다.

어느쪽이든 비정상적이고 뒤틀린 여자들이지만, 과거 행적을 뒤쫓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의 약자로서 헛되이 저항하는 여성상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독자는 현대 사회에서 억눌리고 비뚤어진 여성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종원기자 high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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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6-06-30

[중앙일보 기선민김성룡]

 

 

 




일본의 권위 있는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 후보에 지난 해를 포함, 네 차례 올랐던 이사카 코타로. 최근 한 달 새 국내에 출간된 그의 작품은 3편이나 된다.'중력삐에로'(작가정신)'러시 라이프'(한스미디어)'사신 치바'(웅진지식하우스)등이다. 코타로의 다른 작품들도 이미 국내 출간 계약이 끝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지난해 세 작품이 한꺼번에 번역 출간됐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은 올 초 나오키상을 받자 바로 한 국내 출판사에 판권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중견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도 최근 다섯달 새'이유'(청어람미디어)'용은 잠들다'(노블하우스)가 잇따라 나왔다.











서점가에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 쏟아지고 있다. 독자들의 관심도 1990년대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등 스타 작가들에서'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냉정과 열정 사이''지금 만나러 갑니다'등 로맨스 소설을 거쳐 이제는 서서히 미스터리로 옮겨가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추리.미스터리 소설 분야 누적베스트셀러 순위(장기간 판매량을 집계) 30위권 내에도 일본 미스터리가 4권이나 올라 있다. 미스터리 출간 붐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레몬''호숫가 살인사건''게임의 이름은 유괴'(이상 노블하우스),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삼월은 붉은 구렁을'(이상 북폴리오),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이상 한스미디어), 심포 유이치의 '스트로보'(민서각)등 최근까지 출간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출판 에이전시 북코스모스의 김수경 대리는 "이사카 코타로나 미야베 미유키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은 편당 최소한 출판사 4~5곳이 경합을 벌인다"고 전했다.












"작품성과 재미가 고루 갖춰져 한 번 집어들면 도저히 놓을 수 없다." 20대가 주류를 이루는 일본 미스터리 매니어들의 얘기다. 한 마디로 훌륭한 엔터테인먼트물이라는 것이다. 충무로의 젊은 감독들이 일본 미스터리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일본 미스터리는 추리소설 독자들에게 익숙한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 마쓰모토 세이초, 모리무라 세이치 등으로 이어지는 본격 추리물과는 구분된다. 미스터리 기법을 취했을 뿐 연애소설이나 사회파소설, 가족소설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일본 미스터리의 흡인력은 크게 두 가지. 첫째, 작가들의 탄탄한 구성력과 필력이다. 나오키상을 받았거나 후보에 오른 이들이 대부분이다. 작가로서 '기본'을 갖췄다는 얘기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구분이 우리처럼 엄격하지 않은 풍토도 한몫 거든다. 일본 작가들은 순수문학으로 등단하더라도 대중소설 쓰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둘째, 감탄스러우리만치 다양한 소재다.


정지연 노블하우스 편집장은 "신용불량 문제(미야베 미유키,'인생을 훔친 여자'), 버블 경제와 부동산('이유'), 입시 과열과 중산층 이기주의('호숫가 살인사건'), 인간의 죽음 여부를 결정짓는 사신(死神) 이야기('사신 치바')등 다양한 글감들이 독자의 구미를 자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스터리.SF.판타지.호러 등의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글쓰기도 큰 매력 중 하나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 국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작다. 좀 팔리는 작품이라고 해도 대략 5000~1만부 선이다. 그러나 출판계는 독자들의 충성도가 워낙 높은 점, 우리 문학작품이 젊은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 등을 고려할 때 시장이 좀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글=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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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의 부재와 가벼움만을 추구하는 출판계가 합작하여 한국소설의 위기를 불러왔다.’

 한국소설의 위기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종합해보면 대략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다.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화씨는 “우리 소설이 예전의 활기가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문학적 역량이 뛰어난 신인들이 시나리오나 방송작가를 선호하는 현상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방민호 교수(서울대)는 “대중적 코드에 맞춰 독자의 관심을 끌려는 시도는 있지만 문학성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지적·미적 관심을 일으킬 작품은 많지 않다”면서 “결국 우리 문단이 가진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소설 비평도 현장과 떨어져 있고 문학상의 권위나 파괴력은 예전에 비하면 땅에 떨어졌다. 결국 소설이란 장르는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작가들이 문제다

 소설이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작가들의 책임 때문이다. 독자들이 읽고 감동할 만한 작품이 없다는 얘기다. “소설 상당수가 ‘똥’이다”(문학평론가 도정일)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높아진 독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독자들의 사고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문학평론가 고명철 교수(광운대)는 “소설은 언어의 밀감을 통해 사회를 인식하는 장르지만 지금 소설의 언어는 다른 장르나 영화, 드라마, 인터넷 등의 언어들과 대동소이하다”면서 “결국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느낄 질감을 맛보지 못하고 ‘소설을 위한 소설’이 즐비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 대해 그는 “작가들이 인터넷 등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자료 찾기에 머물러 있는 데다 자료를 통해 세상을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떨어졌다”며 “작가들이 ‘지성의 빈곤’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전통적인 한국소설의 주제나 플롯은 이제 진부하게 느껴진다. 독자는 새로운 소설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독자와 멀어지는 소설을 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987년 민주화,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사회 전반이 첨단 자본주의화되고 철저하게 개인주의화됐지만 우리나라 작가, 평론가, 편집자들은 아직도 87년 이전의 정서에 갇혀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소설 등 외국문학의 점령

                                                                                      

 

 



지난해 10월 번역돼 나온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도쿄타워’는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돼 지금까지 20만부 가까이 팔렸다. 그의 전작 ‘냉정과 열정 사이’(쓰지 히토나리와 공저)는 60만부나 나갔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99년 발매 이후 지금까지 25만부가 넘게 팔렸다. 대중문화에서는 한류의 물결이 높지만 소설만은 일류(日流)가 판을 치고 있다. 독자들은 여전히 소설을 읽고 싶어하지만 우리 소설이 이를 채워주지 못함을 의미한다.

공무원 박신영씨(26·서울 신림동)는 “일본소설은 심도 있고 ‘쿨’한 사랑이야기로 읽기에도 재미있다”며 “소설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감정이입이 우리 소설보다 잘 된다”고 말했다.

일본 소설에는 선진국의 고도의 자본주의적 소비패턴이 잘 녹아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주인공의 치밀한 심리묘사로 세련된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우리 문단은 이런 독자들의 입맛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시인)는 “70·80년대 우리 소설읽기는 그 시대에 당연히 읽어야 했던 시대적 강제성이 있었다”며 “그러나 사회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문학에서 정치적인 담론을 원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해리포터’(조안 롤링), ‘반지의 제왕’(JRR 톨킨) 등 영국 판타지 문학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로도 알려진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영국에서 출간된 최초의 판타지 소설이다. 이렇듯 영국의 판타지 문학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뿌리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다. 즉 영국에는 신화와 민담 등 그들만의 독특한 전통이 녹아있다. 우리나라에 판타지 문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 배경도 없고 글쓰는 차원도 문학적·인문학적 훈련이 없이 그냥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마니아층만 열광하거나 대중의 주목을 받더라도 문학적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문학평론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소설이 살아나려면 출판계의 자성과 작가들의 분투가 필요하지만 다양성의 사회 한가운데서 마냥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모든 문화 콘텐츠의 중심이 소설에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지원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박재현기자〉경향신문 200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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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죽었는가. 한때 문화의 맹주였던 소설이 통 팔리지 않는다. 영화 한 편에 1천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들 동안 소설책은 1만부 이상 팔리는 작품을 찾기 어렵다. 웬만한 신간소설은 대대적 홍보에도 불구하고 초판 3,000부를 넘기기 힘들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한국소설의 위치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인터넷서점 ‘예스24’가 6월14일 집계한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30위 안에 든 한국소설은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12위)과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25위)뿐이다. 교보문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10위, ‘아내가 결혼했다’가 23위에 랭크됐을 뿐이다. 오히려 외국소설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의 제작진이 선택한 책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비롯해 ‘다빈치 코드 1, 2’,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이 영화 개봉에 힘입어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이를 두고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작가들의 역량 부족부터,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란 분석까지 다양한 진단들이 쏟아져 나온다. 2006년, 지금의 한국소설은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한국 소설의 회생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소설은 분명 위기에 서 있다. 지난해 출판 물량 중에서 한국소설이 차지한 비율은 5%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설을 찾는 독자가 줄고 있다. 지난해에는 문화예술위원회가 복권기금으로 마련한 돈으로 ‘힘내라, 한국문학’이라는 문학회생 프로그램도 시행했다. 우리 소설이 벼랑끝에 몰렸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소설이 팔리지 않는 것은 맞지만 소설의 위기까지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정확히 바로잡자면 ‘독서의 위기’라고 말하는 게 타당하다. 즉, 책 읽는 사람의 숫자가 줄었다. 영화의 인기가 높고 24시간 TV방송이 끊이지 않으며 인터넷을 즐기는 세상이다.

작가 김연수씨는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무용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렸다”면서 “소설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출판산업 또는 마케팅 측면에서의 위기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소설의 판매 부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소설의 창작 가치나 문학성까지 위협받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문학과지성사 채호기 대표는 “시장에서의 위기가 창작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면서 “시대가 변하면서 문학의 역할은 더 첨예해지고 날카로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설의 판매 부진은 우리나라만의 상황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서평란을 픽션보다는 논픽션에 주력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독자들이 지식이나 교양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세상은 소설보다 한층 재밌다. 정보와 기술의 발달에 따라 사회 자체가 박진감 있게 변화한다. 세계의 변화 자체가 허구보다 더 짜릿하기에 굳이 소설을 찾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흡입력 강하고 재미있는 소설은 여전히 많다. 작가들의 글쓰기에도 새로운 시도들이 많아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는 “좋은 소설이 여전히 문예지 등을 통해서 대량 생산되고 있다”면서 “문제는 독자의 수준이 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작가의 역량이 모자란 게 아니라 독자들의 수준이 예전같지 않아 좋은 소설을 찾아 읽지 못하는 게 위기론의 진실이란 얘기다. 실제로 인터넷, 영화 등의 뉴미디어에 익숙해진 10~20대는 소설을 외면한다. 대학의 문예창작학과나 국문학과 학생들도 제대로 된 소설을 찾아 읽지 않는다는 게 교수들의 전언이다.

소설은 모든 문화 콘텐츠의 출발점이다. 소설을 읽지 않으면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자고 얘기하는 것은 코미디다. 기초과학의 토대가 부실한 상황에서 첨단공학을 육성하자고 떠드는 것과 같다. 실제로 ‘해리포터’ 등을 비롯, 외국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은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이렇듯 문화의 중심, 책읽기의 기본이 되는 소설이 왜 점점 더 변방으로 내쫓기고 있는가.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도정일 대표는 “문학이란 인간을 형성시키는 가장 요긴한 절차이지만 교육당국은 이를 망각하고 있다”면서 “중·고등학교에서부터 독서습관이 망가져 독서문화 자체와 새로운 독자층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입시위주의 교육이 문제란 얘기다.

한국소설이 쫓겨난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일본소설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팔려나가는 일본소설의 문학적 가치가 우리 소설보다 높은 것은 결코 아니다. 하응백씨는 “지금 언급되고 있는 일본 소설은 쉽고 편하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라면서 “이 소설들의 문학적 가치는 우리보다 못하다”고 잘라 말했다. 정과리 교수는 “지금 대중이 손에 들고 있는 일본 소설은 일본의 전통적인 소설이나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같은 삶의 성찰이 녹아 있는 문학이 결코 아니다”라면서 “감각적 소비를 위한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로 대표되는 ‘잘 팔리는’ 일본소설에는 자본주의의 소비 패턴이 일상적으로 녹아있다. 대중의 소비적 취향을 만족시켜준다. 그래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무라키미 하루키 이후의 일본 문학을 순문학의 상실로 여기면서 못마땅해 하고 있다.











일본소설과 함께 급부상한 것이 ‘판타지’라고 부르는 소설이다. 하지만 문단(文壇)은 이를 철저히 무시한다.(대부분의 판타지 작가들도 순수문학을 동경하지 않는다.) 검유혼의 ‘비뢰도’, 전동조의 ‘묵향’ 등 시리즈 누적 1백만권 가까이 팔린 작품이 많지만 평론가들은 이것을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본격문학이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대중의 욕구를 채워줬다는 점을 애써 못본 척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문학의 다양성과 잠재력을 제대로 펼칠 계기를 출판계와 작가가 만들어가는 게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소설가 김연수씨는 “출판계에서는 작가에게 인기있는 외국소설을 예로 들면서 험한 세상에 마음을 달래줄 코엘료 유(類)의 소설쓰기를 강요한다”면서 “소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지 못하고 출판사가 요구하는 소설을 생산해낸다면 이미 소설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글 박재현·사진 정지윤기자〉 경향신문 200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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