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정신의 부재와 가벼움만을 추구하는 출판계가 합작하여 한국소설의 위기를 불러왔다.’

 한국소설의 위기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종합해보면 대략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다.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화씨는 “우리 소설이 예전의 활기가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문학적 역량이 뛰어난 신인들이 시나리오나 방송작가를 선호하는 현상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방민호 교수(서울대)는 “대중적 코드에 맞춰 독자의 관심을 끌려는 시도는 있지만 문학성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지적·미적 관심을 일으킬 작품은 많지 않다”면서 “결국 우리 문단이 가진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소설 비평도 현장과 떨어져 있고 문학상의 권위나 파괴력은 예전에 비하면 땅에 떨어졌다. 결국 소설이란 장르는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작가들이 문제다

 소설이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작가들의 책임 때문이다. 독자들이 읽고 감동할 만한 작품이 없다는 얘기다. “소설 상당수가 ‘똥’이다”(문학평론가 도정일)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높아진 독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독자들의 사고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문학평론가 고명철 교수(광운대)는 “소설은 언어의 밀감을 통해 사회를 인식하는 장르지만 지금 소설의 언어는 다른 장르나 영화, 드라마, 인터넷 등의 언어들과 대동소이하다”면서 “결국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느낄 질감을 맛보지 못하고 ‘소설을 위한 소설’이 즐비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 대해 그는 “작가들이 인터넷 등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자료 찾기에 머물러 있는 데다 자료를 통해 세상을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떨어졌다”며 “작가들이 ‘지성의 빈곤’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전통적인 한국소설의 주제나 플롯은 이제 진부하게 느껴진다. 독자는 새로운 소설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독자와 멀어지는 소설을 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987년 민주화,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사회 전반이 첨단 자본주의화되고 철저하게 개인주의화됐지만 우리나라 작가, 평론가, 편집자들은 아직도 87년 이전의 정서에 갇혀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소설 등 외국문학의 점령

                                                                                      

 

 



지난해 10월 번역돼 나온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도쿄타워’는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돼 지금까지 20만부 가까이 팔렸다. 그의 전작 ‘냉정과 열정 사이’(쓰지 히토나리와 공저)는 60만부나 나갔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99년 발매 이후 지금까지 25만부가 넘게 팔렸다. 대중문화에서는 한류의 물결이 높지만 소설만은 일류(日流)가 판을 치고 있다. 독자들은 여전히 소설을 읽고 싶어하지만 우리 소설이 이를 채워주지 못함을 의미한다.

공무원 박신영씨(26·서울 신림동)는 “일본소설은 심도 있고 ‘쿨’한 사랑이야기로 읽기에도 재미있다”며 “소설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감정이입이 우리 소설보다 잘 된다”고 말했다.

일본 소설에는 선진국의 고도의 자본주의적 소비패턴이 잘 녹아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주인공의 치밀한 심리묘사로 세련된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우리 문단은 이런 독자들의 입맛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시인)는 “70·80년대 우리 소설읽기는 그 시대에 당연히 읽어야 했던 시대적 강제성이 있었다”며 “그러나 사회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문학에서 정치적인 담론을 원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해리포터’(조안 롤링), ‘반지의 제왕’(JRR 톨킨) 등 영국 판타지 문학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로도 알려진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영국에서 출간된 최초의 판타지 소설이다. 이렇듯 영국의 판타지 문학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뿌리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다. 즉 영국에는 신화와 민담 등 그들만의 독특한 전통이 녹아있다. 우리나라에 판타지 문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 배경도 없고 글쓰는 차원도 문학적·인문학적 훈련이 없이 그냥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마니아층만 열광하거나 대중의 주목을 받더라도 문학적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문학평론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소설이 살아나려면 출판계의 자성과 작가들의 분투가 필요하지만 다양성의 사회 한가운데서 마냥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모든 문화 콘텐츠의 중심이 소설에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지원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박재현기자〉경향신문 200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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