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성희] 결혼, 달콤하고도 씁쓸한 유혹

가야마 리카 지음, 이윤정 옮김, 예문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달뜬 탓인가요? 책상 위로 툭툭 던져지는 청첩장이 늘었습니다. 문득 지난해 가을 무렵 나온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의 원제는 '결혼이 무서워'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여성, 결혼을 앞둔 신부, 남편 곁에서도 외로운 주부들의 심리를 파헤치는 내용이니 원제가 책 내용에 충실한 듯합니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는 케케묵은 말을 들출 것도 없이, 결혼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큰 일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TV 드라마의 대부분이 결혼을 둘러싼 줄다리기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잖습니까. 워낙 큰 일이다 보니 결혼이란 것이 마냥 설레고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혼수며 예단을 둘러싼 신경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잘한 선택인지'에서 '해야 하는 건지'까지 온갖 생각으로 심란했던 경험을 한 분이 적지 않을 겁니다. 특히 여성들은요.

이 책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는 결혼에 관한 심리학.사회학적인 분석서입니다. 지은이는 '하나보다 둘이 낫다'며 결혼을 지지하거나 '결혼은 미친 짓'이라며 만류하지 않습니다. 대신 독신 여성들의 결혼에 대한 환상은 물론 결혼 기피증이나 결혼 불감증, 결혼하지 않은 후회, 결혼하고도 외로움을 호소하는 심리들을 찬찬히 들여다 봅니다.

흔히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안정된 직장이나 고액 연봉이 아니라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이야기인데 이만큼 어려운 조건이 없답니다. 부모처럼 무조건적인, 그런 이해와 사랑이 쉽지 않다는 거죠. 그렇다고 이 조건을 포기한 채 넉넉함이나 외모, 시부모를 모시지 않는다는 등의 현실적 조건에 혹해 결혼한 사람들의 이후 인생 또한 행복하지는 않은 데 독신 여성들의 딜레마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일본 부부들을 대상으로 언제 외로움을 느끼는지 조사한 대목도 눈길을 끕니다. 1위는 물론 '홀로 있을 때'였지만 2위는 남편들은 '직장에 있을 때'인 반면 아내들은 '남편과 있을 때'였답니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무신경한 남편 곁에 있을 때 아내는 더 외로움을 탄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전문 연구서, 사례 조사에 지은이의 상담경험이 더해져 꽤 유용합니다. 결혼과 관련해 언젠가 부닥칠 장애와 그에 대처할 제안을 담았기에 결혼 적령기 여성에게든 주부에게든 상당한 도움이 될 듯싶습니다. 그런 이 책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사랑에 적기(適期)는 없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개인의 선택이다'라네요.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중앙일보 200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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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성희] 뿌리들의 이야기

강화고등학교 엮음

어르신들이 "내가 살아온 이야기만 엮어도 소설 하나는 거뜬할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걸 종종 듣습니다. 사실 그럴 만합니다. 환갑을 넘게 살았다면 가슴이 고동 치던 기쁨, 애끊는 듯한 슬픔, 주먹이 부르르 떨리던 분노 등 곡진한 사연 한 자락 없는 분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일제 치하, 해방 정국, 한국 전쟁, 혁명 등 굵직한 사건을 몸으로 겪고, 압축성장이라 일컬어지는 근대화의 흐름을 숨가쁘게 헤쳐온 세대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이 책은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그런 사연들을 묶은 것입니다. 일종의 전기(傳記)집입니다. 지난해 초 인천시 강화군의 강화고등학교(교장 이일섭)에선 학생들 인성교육을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전기를 써오라는 과제를 냈답니다. 연말이 되니 200여 편의 글이 모였는데 그냥 묵히기가 아까워 그중 32편을 고르고 추려 묶은 것이 이 책입니다.

작가나 기자 등 글쟁이들이 쓴 것이 아닌 만큼 글은 매끄럽지 않습니다. 디자인 역시 전문 출판사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어서 투박합니다. 그러나 이 책엔 그런 모자람을 뛰어넘는 장점이 돋보입니다. 무엇보다 진솔합니다. 생활에서 우러난 지혜나 인간의 도리가 꾸미지 않은 채 담겼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남들 보라고 쓴 것도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아, 나도…"할 구절,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 여럿 있습니다.

강원도 최연소 교장을 지낸 외할아버지 김진태 옹의 이야기를 정리한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교원평가 때 민원에 시달리던 김 옹은 "사람은 정도(正道)를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사람이 아닌 거다"란 집안의 가르침이 떠올라 여관을 전전하며 공정한 평가를 했답니다. 그런 외할아버지는 퇴임 후 외손자에게 "인간은 겸손해야 하는 거다. 최(最)나 장(長)이 붙은 자리에 있으면 거기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나는 평생 이 두 글자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라고 일러줍니다.

글을 쓰기 위해 한 구절을 집어냈지만 이 책은 생활사로도 읽히고,'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진 오늘날 생생한 교재 구실도 할 수 있습니다. 대화는커녕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 뵙기도 썩 내켜하지 않는 세태입니다. 이런 식으로 집안 어르신의 전기를 직접 만들어본다면 가족 두루두루 잊지 못할 가정의 달 선물이 되지 싶습니다. 굳이 일반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비매품'을 소개한 까닭입니다. 참, 책을 엮은 강화고등학교로 연락하면 여분의 책을 보내줄 수도 있답니다. 아니면 학교 홈페이지(www.ganghwa.hs.kr)에 책 내용을 압축파일 형태로 올려놓을 예정이라니 읽어 보실 수는 있을 겁니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중앙일보 200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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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성희] 워커홀릭 1, 2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황금부엉이



한창 TV 야구중계에 빠져 있는데 아내가 한마디 하더군요. 여성들의 86%가 요즘 우울증을 앓는다나요? 그러면서 만사가 귀찮고, 거울 속에 자기 얼굴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고, 뭔가 저지르고 싶고, 주위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짜증이 나고 등등 줄줄이 증세를 읊더군요. 사설이 길어지다 협박으로 변할 것 같기에 스윽 이 책을 내밀었습니다.

29살 난 사만타 스위팅. 영국 최고 법률회사의 잘나가는 변호사입니다. 열두 살 이후 자기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고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일을 하는 일 중독자죠. 승진을 코앞에 둔 그녀는 자기가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을 알게 됩니다. 감당이 안 된 그녀는 회사를 뛰쳐나와 기차를 타고 정처없이 떠납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시골에서 얼떨결에 가정부로 취직합니다. 여기서 젊은 정원사를 만납니다. 지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여유 있는 이 청년과 그의 어머니가 사만타를 돕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이 싹틉니다.

자, 이 정도면 그림이 그려지나요? 밝고 재능 있는 주인공, 속물적인 집주인 부부, 출세에 눈먼 변호사 동료, 그와 정반대인 정원사와 그의 정다운 시골 친구들이 빚는 이야기는 어쩌면 상투적입니다.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디즈니 식 동화나 어릴 적 읽은 할리 퀸 시리즈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톡톡 튀는 문체에 담긴 천연덕스러운 유머, 간혹 번득이는 성찰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단추 하나 못 달고 샌드위치 한 번 만든 적 없는 사만타가 살림을 하며 벌이는 소동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계란을 삶는다고 전자레인지에 넣고, 세탁기를 쓸 줄 몰라 빨랫감을 온통 분홍색으로 만들어 버리고…. 샌드위치를 전문점에서 배달시키는가 하면 표백제를 잘못 써 자기 머리 색깔을 바꾸는 등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정원사 나다니엘의 어머니는 이런 사만타에게 "모든 답을 다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닦달하지 마. 항상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라고 충고합니다. 사만타는 차츰 생활의 여유에 눈뜹니다. 그래서 회유하러 온 동료에게 "졸업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번드르르한 사무실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인생을 낭비하는 거야?"라고 항변할 정도로 생각이 바뀝니다. 결국 "창밖도 쳐다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라며 런던행 기차에서 내리죠. 자기가 원하는 삶을 택한 겁니다.

여권주의자들은 혹 '아편'같은 소설이라 비난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효과도 좋았습니다. 야구 중계를 끝까지 볼 수 있었으니까요.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중앙일보 200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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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성희] 바보들


야콥 아르주니 지음

안소현 옮김, 이레




어렸을 적에 천사나 요정이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들을 더러 읽었을 겁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해피엔딩하는 그런 달콤한 이야기 말입니다. 이제 세상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된 요즈음,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 어떤 기분일까요? 아니 만일 전능한 존재를 만난다면 뭘 빌까요?

독일 신진작가의 이 소설은 잠시라도 그런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해줍니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겼는데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장과 불편한 관계인 광고회사 직원, 자신감을 잃어버린 유망 영화감독, 유명 가수가 된 아들과의 사랑을 되찾고 싶은 노모, 걸작을 남기고 싶은 삼류 대중소설 작가, 유명 피아니스트 아내와 천재 아들 곁에서 홀로 서고 싶은 전업남편이 각각의 주인공입니다.

삶의 무게에 시달리는 이들 앞에 요정이 나타납니다. 서양 동화에 등장하는 그 귀엽고 깜찍하며 장난치기 좋아하는 그 요정입니다. 여기서는 맨발에 팔랑거리는 하늘색 옷차림의 소녀 모습으로 등장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요정은 지극히 현대적입니다. 출퇴근 시간에 매여 있고, 부서간 전근도 하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대장 요정에게 시달리기도 하니 샐러리맨과 다름없습니다.

능력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영생(永生).건강.금전.사랑에 관한 소원은 들어주지 않습니다. 엉뚱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북한 주민을 위해 고기를 보내주라고 빌자 유럽에 병든 소가 생기면 그 고기를 보낼 거라며 광우병이 돌게 한 적도 있다는군요.

그래서 책은 '환상 동화'라 자처하지만 풍자의 냄새를 짙게 풍깁니다. 가장 많은 소원이 '유명해지기'라서 TV 토크쇼가 범람하게 했답니다. 식기세척기가 세 번째인가 네 번째로 많은 소원이라고도 합니다.

어쨌거나 다섯 주인공들은 소원이 이뤄진 다음에도 진정 행복한 듯 보이지는 않습니다. 소원에 따른 변화의 폭이 넓고 다양해 뜻밖의 반전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의도는 우리의 평소 소원이 이뤄지든 못 이뤄지든 삶은 여전히 쓸쓸하거나 우스꽝스럽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읽힙니다. 그것도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냉담한 요정과 삶에 지친 주인공들이 빚어내는 서글픈 농담을 통해서 말입니다.

자, 이런 요정이 찾아오면 어떤 소원을 빌겠습니까? 소원을 떠올리기 전에 책 속의 요정이 전하는 이야기를 새겨 둘 것을 권합니다.

"소원에 관한 일은 흡사 삶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아요. 더 높은 데 있는 것을 잡으려 하면 그만큼 더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날씨나 기분에 따라 혹 달콤 쌉싸래한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합니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중앙일보 200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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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성희] 줌데렐라

고혜정 지음, 추수밭

"당신 몸매는 완전히 연예인 수준이야." TV를 보던 남편이 한마디 던집니다.

"정말? 누굴 닮은 것 같애?" 설마 하면서도 마음이 뿌듯해진 아내가 확인을 하려듭니다.

"응, 텔레토비를 그대로 닮았어. 흐흐흐." 농담 아닌 농담은 아내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그뿐인가요. 신경 써서 화장하고 나섰는데 남편이란 사람이 불을 지릅니다. "화장이 아니라 분장이구나. 분장. 그러다 분장이 아니라 변장을 하겠다"라고. 이건 인격 모욕입니다.

이건 약과입니다. 서러운 꼴도 겪습니다. 학부모회의라도 다녀온 아내는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집안을 치우랴, 저녁준비 하랴 핑핑 돌아갑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남편, "당신은 만날 집에서 뭐하기에 집안 꼴이 이래?"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세상 모든 부부가 이렇게 살지는 않겠지만 아줌마가 된 후 한두 번이라도 속 터지고, 한숨 지어보지 않은 이도 없을 겁니다.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척 보면 책의 내용이 짐작될 겁니다.

'줌데렐라'는 아줌마와 신데렐라를 합한 조어(造語)입니다. 재투성이의 신데렐라가 왕자가 반할 정도로 변신하듯이 아줌마들의 화려한 비상(飛翔)을 위한 도움말을 담았습니다.

우선 잘 먹고 잘 쓰면서 멋지게 사는 여자, 그게 바로 줌데렐라랍니다. 아끼고 아끼며 살다가 나중에 무슨 일 당하고서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데…"라고 울부짖어 봤자 억울한 건 자신밖에 없다네요. 나중에 자식을 키운 뒤 혹시 속이라도 상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울고불고하는 것 역시 줌데렐라로선 있을 수 없는 얘기랍니다.

우선 아줌마가 꿈꾸는 14가지 판타지를 꼽습니다. 무쇠 같은 건강, 수퍼맨 같은 남편, 쥐도 새도 모르는 비자금, 나만 바라보는 돌쇠, 스트레스 없는 시댁, 내 마음대로 커 주는 자식, 잘나가는 형제 등등. 정말 이것들만 이뤄지면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는 방법을 귀띔합니다. 사실 뜯어보면 쉽고도 어려운 처방입니다. 현실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아껴 자기만의 세계, 생활, 비자금 통장을 일구라는 식이니까요.

이 책의 미덕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방송작가인 지은이가 체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콕콕 집어내 비트는 글을 읽는 맛이 그만입니다. 또 하나 쓸모가 있습니다. 남편의 눈길이 닿을 만한 곳에 이 책을 슬그머니 놓아두는 겁니다. 책 머리에 '아내를 아프게 하는 말' 38가지가 나오는데 남편에게 이것만 읽혀도 책값은 충분히 뽑을 겁니다. '당신도 돈 벌어 봐' '가만히나 있어' 등에 뜨끔해진 남편이 입조심이라도 하면 그게 어딘가요.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중앙일보 200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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