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1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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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2년만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다정한 손편지를 써 주시고, 겨울에 따뜻한 코트를 사주셨던 어머니가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경험은 이 후 나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되었다.


돌아가시 전,

"베란다에 있는 작은 고추장 항아리가 있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가져오렴"


정신이 없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필 겨를이 없었는데,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고추장 항아리 안에는 옛날 보온도시락을 담아 다니던 도시락 가방 하나가 구겨져 있었다.


그것을 대충 털어서 부리나케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어머님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나보고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구겨진 도시락 가방을 열고, 겹겹이 둘러 싸여진 신문지를 벗겨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반지 한 개였다.


25주년 결혼 기념일에 아버님께서 선물하신 반지인데, 여즉 끼워보지 않으시고 누가 훔쳐갈까봐 베란다 고추장 항아리에 넣어 두신 모양이었다.


어머님 연세 58세에 나에게 작은 다이아반지 하나를 남기고 돌아가셨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젊다.


그때 이후로 "인생은 부질 없는 것" "아끼다가 똥 된다" "지금할 수 있는 것을 하자"와 같은 인생 모토가 생기면서, 결국 성공이든, 돈이든, 행복이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소중하다는 가치관이 다져졌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전적으로 어머님 손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시던 시아버지가 홀로 남았다.


매일 시댁에 가서 시아버님의 식사를 차려드리면서,

대체 성인이 된 인간이 왜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을 남의 손에 의지해야만 하는가.

진짜 남자라는 인간들. 왜 때문에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가.

이것은 교육의 문제인가, 결국 여자였던 어머니, 아내의 문제인가. 그런데 이번엔 며느리인 내가 이어받아 또 한 인간이 바보 멍청이인 것을 돕고 있는가.


자괴감에 빠졌던 2년이었다.


시댁을 드나드느라 내집 살림이 뒷전인것은 또 싫어서 힘을 내다보니, 결국 나도 병이 났다.

집에 사람들이는 것은 절대 싫다는 아버님댁은 어쩔 수 없이 내가 드나들고, 남편의 제안으로 우리집에는 청소를 도와주시는 이모님을 고용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4시간 동안 청소를 해주시는 일정이었는데

이모님이 오시기 하루 전에는 혹시 너무 더러운 곳은 없는지, 

빨래는 다 되어 있는지, 속옷같은 것들이 나와있지는 않은지 둘러보느라 두배로 바빴다.


이모님이 출근하시는 날이면 

오시기 전에 미리 커피나 차를 내드리고, 간식도 준비해두고, 

괜히 집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4시간 동안 걸리적 거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안절 부절 못하면서 이것이 과연 내가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인가 이럴거면 그냥 내가 하는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쨌든 그들도 정당한 대가를 받고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일 진데

왜인지 나보다 나이 많은 그녀들이 내 집에 와서 내 대신 청소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결국 한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녀의 도움을 포기했다.


<헬프>는 유색인 가정부들이 백인 가정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노예제도는 폐지 되었으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그 때,

유색인과는 화장실도 같이 쓰지 않는 백인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자신들이 쓰는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색인을 구타할 수 있는 시대임과 동시에 유색인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친구로 생각하는 백인들도 함께 공존하던 시대.


구별이라는 것은 그것을 만들고, 지키고, 공고히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혹은 넘어서는 안되는 어떤 선을 의미하지만 사실 그 구별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면 절대로 지켜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가는 이야기.


세상을 살면서

노력없이 주어진 것들에 대해 우쭐하지 말고,

같은 이유로 아무런 잘못없이 갖게 되는 불리한 입지 때문에 차별 받지 않고,

모두가 그냥 존재만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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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3-24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반지는 잘 끼고 계신가요?! ㅎㅎ

관찰자 2025-03-24 12:47   좋아요 0 | URL
심지어 저도 다이아반지는 체질이 아니라 그냥 모셔두고 있다는. 아들놈들 결혼하면 며느리들에게나 나눠줘야할까봐요.>.<
 

정말로

요새

너무 바빴다.


그리고

아직 바쁨이 끝나지 않았다.


몸이 바쁘고 할것이 많으니 마음도 따라 바쁘고,

책도 잘 읽히지가 않는 요즘이다.


그래도 주말에는 무거움은 내려두고 이야기 그 자체로 즐거운 책을 읽고 싶어서

예전에 읽고 구석에 꽂아둔 <헬프>를 다시 꺼냈다.
















웬일인지 요즘 알고리즘으로 계속 영화 <헬프>가 뜨길래 한번 더 읽고 싶어진 즈음이었다.


처음 시작을 왜 그렇게 구별지었는지 모르지만,

일단 구별이라는 것이 한번 지어지면, 이것은 무소불위의 권능이 된다.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래도 계속 싸워나가야 하는 이야기들이다.


구별짓기를 생각하다보니,




최근 계속해서 여유가 없었던 것은 일이 바쁜 탓도 있지만,

아이의 학교에서 벌어진 말도 안되는 일 때문인 탓도 크다.


아이가 옆반 친구에게 돈을 빼앗겼는데, 돈을 빼앗긴 방식이 가히 지능적이고, 조직적이다.


일단,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반단톡방 등에서 얻은 전화번호로 무작위 단톡방을 만든다.


목표 금액을 설정하고(300만 원), 단톡방에 초대된 아이들에게 계좌입금을 강요한다.

계좌입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단톡방을 나갈 수 없다. 또한 입금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중3형 들이 개인적인 협박이 이루어진다. 이 단톡방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계좌로 돈을 입금하고, 5명의 아이들을 초대해야 비로소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입금하고 5명을 초대한 후 단톡방을 나오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불려서 다시 또 그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시 도돌이표.


이러한 방법으로 거의 1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적게는 몇 천 원에서부터 많게는 몇 만 원까지 돈을 상습적으로 뜯겼다.


이제는 삥을 뜯는 것도 SNS를 이용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중간에서 단톡방을 만들고, 돈을 모아 상납하는 것은 일부러 촉법인 어린 동생을 시키고, 형들은 뒤에 빠져 있는 교묘함까지 갖췄다.


학교에서는 경찰과 함께 피해 규모를 수사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앞으로 이 학교를 계속 보내야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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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3-18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무섭군요.....
어른부터 아이들 세계까지 구석구석 그야말로 헬프!를 외치게 되는 사회 같습니다. -_-;;;

관찰자 2025-03-19 09:40   좋아요 0 | URL
처음에는 ‘이 정도는 뭐 사줬다고 생각하고 줄 수 있지‘ 하며 천 원, 그 다음에는 ‘빌려달라‘는 말을 믿고 또 천 원, 그 다음에 ‘왜 안 갚냐고‘ 말하면 이제부터 협박이 시작되는 그런 구조입니다. 선의를 이용해서 결국 눈덩이처럼 피해가 커진건데, 왜 엄마아빠한테 일찍 말하지 못했느냐고 물으니, ˝엄마가 몰라서 그렇지, 먼저 나서는 사람이 타깃이 되는 거˝라는 아이의 말에 또 한번 좌절입니다.

hnine 2025-03-18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중학생인가요? 고등학생인가요? 세상에. SNS 이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일까에 저는 회의적이네요. 대체 세상이 어쩌려고, 그 말씀이 절로 나옵니다.

관찰자 2025-03-19 09:42   좋아요 0 | URL
이제 중2인데. 어제 계좌 내역을 살펴보니 11월부터 시작된 것이 한달에 한번 꼴이다가 2월에는 거의 이틀 간격으로 계속 돈을 보냈더라구요. 어쩐지. 2월에 돈 씀씀이가 해프다고 생각했었는데. 방학기간이라 친구들이랑 맛있는거 먹고, 영화보고, 재미있게 노는 거라고만 생각했지....이런 일은...

다락방 2025-03-18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지.. 아이도 아이대로 너무 괴롭겠네요. 그걸 보는 관찰자 님도 너무 괴로울 테고요. 아 진짜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건가요. 하아-

관찰자 2025-03-19 09:44   좋아요 0 | URL
삥을 뜯으면서도 뒷골목으로 따라오라는 둥, 학교 끝나고 남으라는 둥 아주 작은 수고로움(?) 조차 감당하지 않고, 이마저도 SNS를 이용해 손쉽게 입금까지 받아버리는 이 악랄함. 아이들의 신고가 늦어진 이유는 일단 물리적 폭행이 없었고, 1회 피해비용이 적어서 신고까지 해야할 사안인 줄 몰랐다는 건데. 그렇게 100명이에요.ㅠㅠ
 
비폭력의 힘 - 윤리학-정치학 잇기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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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가담하지 않거나 폭력을 방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격적‘인 비폭력의 실천이 필요한 때다. <사람, 장소, 환대>와 이어지는 면이 있어 즐겁지만 개인적인 상황때문이 그저 즐거울 수만은 없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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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리뷰로 봐야하는 것인지 일상으로 봐야하는것인지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일상으로 분류했다.


이번 주말은 연휴였으므로, 오래도록 끌고 있었던 책들을 정독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 중에서 읽으려면 집중이 필요한 <비폭력의 힘>을 먼저 꺼내들었다.


인문학 서적들은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등만 봐도 왠지 지적 허영심이 차오르고,

그것을 읽고 있는 나 자신, 그리고 그것을 들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면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없는 구간 구간이 너무 많고,(순전히 재미로 놓고 보자면)

아무리 내 자신을 다잡고, 끌고 가더라도, 나 자신의 무식이 너무 깊어 

당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 이야기를 계속 몇 페이지나 읽고 있으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아주 많은 경우,

별다른 설명 없이(아니면 작고 긴 각주로 대강 설명하고), 마치 이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 듯이 본인의 논지를 계속 이어가면 어느새 나는 소외당하고 만다.

하지만 도태되기 싫어, 나도 알고 싶어, 하는 심정으로 기어코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것이다.

아마,

이렇게 읽어낸 많은 인문학 서적들의 반도 다 이해하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내가 읽어낸 인문학 서적이 무슨 내용인지 우리 아들들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면 나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얼마나 길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번 주말에는 <비폭력의 힘>을 읽었다.

그래도 주디스 버틀러는 비교적 잘 읽히고, 말하고자 하는 논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주말에 2호기 녀석이 친구들과 피씨방을 갔다가 노래방을 갔다가 고기 부페를 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왔다. 저녁 늦게 들어오는 것도 화가 났지만, 노래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는 받지 않으면서 바로 카톡으로 대답을 했다. 그게 더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이 새끼가 안 맞아봐서 그래,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라는 소리가 나왔다.


<비폭력의 힘>을 읽으면서, "맞아야 정신차리지!"라고 말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자니 또 한번 자괴감이 몰려 왔다.


맞아야 하는 짓은 과연 무슨 짓일까.

어디까지가 맞을 짓이고, 또 어디까지가 맞지 않을 짓인가.

내가 낳았다고, 나한테 때릴 권리까지 있는 것일까.

이번에 때리면, 다음에는? 다음에는 더 많이 때려야 되는 건 아닐까?

때리면, 정말 말을 잘 듣는 걸까?

말을 잘 듣는 다는건 어떤 상태인가? 아이가 행복한가? 내가 행복한가?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질까 염려된다고 하면서 그냥 내 말에 고분고분한 자식을 원하는 건 아닐까?

아이가 부모 말을 잘 듣는다면, 언제까지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걸까?

나중에 아이가 커서 "너는 언제 너 알아서 살래?"라면서 혼자서도 잘 하라고 강요하게 되는 건 아닐까?


부모가 처음이라,

또 아이도 사춘기가 처음이라

모두가 혼란스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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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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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지난한 여자의 인생사여. 결국 삶은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지나가는 것인가. 바쁘게.ㅜㅜ 예전에 읽었을 때랑은 달리 이순일에게 감정이입 당해서, 나는 너무 그냥 마음이 아팠다. 이제 엄마의 인생에 이입되는 시기가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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