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일컫는 아구찜은 '아귀'라는 생선으로 만든 요리이다.
아구라는 생선은 없다.
그러므로 아귀찜이 바른 표현이다.

그리고 '아귀가 맞지 않다'는 말도 '아구'가 아니라 '아귀'라고 써야 한다.
사물을 갈라진 부분을 나타내는 말이 '아귀'이기 때문이다.


아귀는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처럼 흉악한 몰골을 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아귀를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라고 부르기도 한다.

몸통에 비해서 큰 머리는 위에서 짓눌린 것처럼 넓적하고,
입은 매우 커서 몸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입 속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줄지어 있어 한번 붙잡은 먹이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아귀는 커다란 입으로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아귀의 식성은 대단해서 자신보다 큰 상어를 두 동강 내어서 먹은 것이
위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정도다.
 

아귀라는 이름도 입이 크고 먹을 것을 밝히는 지옥의 아귀(餓鬼)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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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쪽으로 버드러진 앞니를 버드렁니 혹은 뻐드렁니라고 한다.
'벋다'의 센말이 '뻗다'이므로 둘 다 바른 표현이다.

그런데 이 버드렁니와는 반대로 안으로 고부라진 치아를 옥니라고 한다.
발음은 [옹니]지만 쓸 때는 기역받침의 옥.니.가 맞다.

끝이 안으로 조금 고부라져 있다는 뜻의 형용사 '옥다'를 써서
옥니, 끝이 바깥으로 버드러져 있다는 뜻의 '벋다'를 써서 '버드렁니'이다.

우리 말법에 <자음동화> 또는 <자음접변>이라 불리는 현상이 있다.
음절 끝 자음이 그 뒤에 오는 자음과 만날 때,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닮아서 그와 비슷하거나 같은 소리로 바뀌기도 하고,
양쪽이 서로 닮아서 두 소리가 다 바뀌기도 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국물'이 [궁물]로, '밥물'이 [밤물]로, '섭리'가 [섭니]→[섬니]로 바뀌는 것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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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도시숲을 달리다 2 - 완결
엄정현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잿빛>에서 느껴지는 보편적인 인상이라는건
대체적으로 도시적, 퇴색, 우울, 차분함, 외로움 정도가 아닐까.  

<도시>에서 갖게 되는 이미지는
타산, 이기, 폐쇄, 고립, 변화... 기타 등등(적고 보니 상당히 암울하군)

우리는 이 도시에 산다.  

이 잿빛 도시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를 반복한다.
이 도시에서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 근데 진짜 사랑이란게 뭐지?

26살이면 충분히 사회적 속박에도 적응하며,
개인주의를 적당히 미덕으로 삼을 줄 알 나이의 여자가
되도 않게 아직은 꿈을 먹고 살고 싶다며 하소연을 늘어 놓는다.    

19살이면 미성년이란 보호막 아래 치기를 부려도
청춘이라는 미명으로 웬만한 일은 무마될 듯도 한데
'범무'란 남자애에게는 진작에 <애>에게 주어진 어리광은 포기해야 할
생활의 책임이 무겁게 쥐어져 있다.

삭막한 이 도시에서 꿈이라도 좇지 않으면 견딜수 없을거라 믿는 여자와,
세상 풍파의 앞뒤를 너무 일찍 겪어야 했기에 꿈 조차 가져 보지 못한 남자가
한 공간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철저히 타인인 남녀에게 한 공간이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채고,
심심하게 보내던 휴일을 서로간의 존재로 채우다,
그 사람의 공기를 나눠 갖게 되고,
마치 그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서로가 익숙해져 버려서 자연스레 연인 사이가 될 듯도 한데   

........ 19살 같은 26살의 '연욱'은 사랑 앞에서는 겁쟁이라
다가서는 19살의 순정을 거부한다.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지만
줄 수 있는건 마음 뿐이라 그것만큼은 다 주고 싶은 '범무'는 '연욱'의 거부 앞에 무력하다. 

이 둘은 과연 연인이 될수 있을까?

'연욱'의 불안은 이 어린 녀석이 변하지 않을까 싶고,
이 사랑 마저도 시간 앞에서는 덤덤해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거다.   

누구나가 사랑을 꿈 꾸지만 꿈꾸는 사랑이 꿈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기를 소원한다.  

하지만 비록 그 사랑이 나중에 떠나더라도 지금은 연애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팔딱이는 심장을 이미 그대에게로 뛰고 있으므로.

그래서 '범무'는 잿빛 도시숲을 달리기 시작한다.

이 도시에서 <기다리라>는 말은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르므로
단지 <천천히만 가>달라면서.  

육교 위에서 <아침>을 보던 남자와
그 남자의 뒷모습을 줄곧 봐온 여자의 만남의 나중은
해피일거라 짐작해도 될테지.

내가 참 좋아하는 만환데,
함부로 추천하기도 꺼려지는 작품이다.  

비싸보이는 작화와
작품 전반적으로 일관되게 흐르는 잿빛의 도시적인 분위기는
잘 살려진 만화지만
연출의 미숙함으로 내러티브가 약하고,
그래서 감정 전이력이 떨어진다.

프레임의 깔끔함은 높이 살만 하지만
군데군데 허전함을 느낄만큼 전개의 밀도는 엉성하다.  

부족함이 많이 잡히는 작품이지만
그것마저도 사랑스러울 만큼 분위기가 한몫 하는 만화.

게다가 책방에서의 고백장면,
범무의 샤워장면,
육교에서의 엔딩장면은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이 작가의 가능성을 엿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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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싫어요................    아.............

흰 눈밭을 보면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지는 것하고 비슷한 감각인지도...

나이도 차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미소가 공포와 고통과 처음 맛보는 쾌감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그런 느낌일까 ☆

꿈꾸는 소녀의 눈빛으로 태연스럽게 엄청난 소릴 하는구나.          엄연한 성범죄야 그건...

꿈 깨라.         그거 할때 귀여운 목소리로 신음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어.          절대로 없어.              있어도 싫겠지만

 


강공女(절대 야오녀 아님)와 꽃수男의 조합을 좋아하는 나로서의 최강의 커플이 아닐까 싶다.

회장님 꼭 뜻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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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김태용 감독, 문소리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오아시스>의 문소리씨도 봤다.
근데 <가족의 탄생>에서의 문소리씨를 내가 본 최고의 연기라고 말하고 싶다.

국제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았던 영화를 제쳐두고 무슨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아시스>에서의 문소리씨는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보여줘서인지
인지가 되지를 않았다.

그저 놀라울 뿐이었지.
몇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봐도 여전하니....

<오아시스>의 문소리씨는 아직까지는 논외로 두고 싶다.

그리고 또 뭣, 뭣을 봤든지 간에
<가족의 탄생>으로 난 그녀가 최고라고 감히 말하겠다.

"미라"라는 여자는,
문소리씨가 아니어도 될 역이었지만
문소리씨라서 탄생 되었던 역.

그래서 문소리씨여야만 했던 역이기에
그것만으로도 별 다섯개는 먹고 들어간 영화이다.

 

물론 문소리씨만이 뛰어났던건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것 같은데
또 다시 엉터리 선택을 하고 만듯한 "무신"역의 고두심씨.

너무 잘난 엄마 덕에 외롭게 자라야만 했던 현실주의자 "선경"역의 공효진씨.

천사표 애인을 둔 죄로 질투와 소심남의 딱지를 달고 살아야 하는 "경철"역의 봉태규씨.

혼자서 사고는 다 치고 다니면서 정만 넘치는, 다소 개념 없는 "형철"역의 엄태웅씨.

그밖에도 아역이나 단역에 출연하는 연기자 모두들이 가히 훌륭했다.

정말 연기는 삶이자 예술임을 보여준 영화였다.

 

<가족의 탄생>에는 두 패턴의 가족이 나온다.

"미라"네의 가족은 혈연관계가 없다.
물론 "형철"은 "미라"와의 혈연으로 묶였지만
한솥밥을 먹고 같은 지붕 아래 살지 않는 가족이다.

그리고 "선경"네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동생과 누나 단둘이다.

 

이 두 가족은 일반적인 가족 구성에서 많이 비켜간 모습이다.
사회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등한시 하는 가족인데,
그 어떤 가족보다 이해와 신뢰로 뭉쳐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들이 처음부터 단란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동생의 여인으로서는 지나치게 연상이었던 여자를 올케로 받아들이기에는
아무리 순진한 그녀라도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거기다 일만 벌렸지 수습이 안되는 동생이
시시때때로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면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일지라도 외면하고 싶어질테지.

 

남자한테 인기 많은 여자는 부럽다.
한데 그 여자가 자신의 엄마라면... 어떨까....

모든 사랑은
엄마의 남자와 나이 어린 남동생에게만 쏠렸다고 믿는
"선경"은 좀처럼 엄마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은
간단하게 불륜이라는 명목하에 행패를 부리고
자신의 사랑에게마저 쌀쌀하게 벽을 만들고는
상대를 떠나게 만들지만

"선경"은 엄마의 가방을 열기 까지는
그 누구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스스로 피해자의 멍에를 지고있다.

 
내게 하나 뿐인 여자친구인데
왜 자신은 그녀에게 다수 중 하나일까.

이런 불만에서 시작된 질투와 외로움이
"경철"을 소심하고 거친 남자로 몰아부친다.

나도 너무 정이 넘치는 "채현"이 이해가 안가서 여자가 잘못했네, 그랬는데
그녀가 바로 "미라"와 "무신"이 키운 "채현"이라는걸 알면
그녀의 넘치는 정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다소마나 이해가 될것이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대사가 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 있어"

"대체 나한테 왜 이래"  : 딱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식의 의미를 담고 있는 대사가 종종 나온다.

누구나가 한번씩은 해봤을 말.
그러나 누구에게나 쓸수 있는 말은 아니다.
오직 가족에게나 가장 친하다고 여기는 연인 또는 친구에게만 가능한 말.

 

가족이나 연인에게 상처 받았을 때 사랑해 주세요, 라는 말대신
방어기제로 쓰는 말이 아닐까.
난 널 이만큼이나 사랑하는데 그런 나한테 이러지 마, 라는 의미로.

 

서로가 어쩔수 없게 상처를 주면서도
결국은 뒤엉켜 등을 쓸어주고 밥을 해주고 두눈을 맞춰주고
서로 보물임을 알아주는게 사랑이고,
가족은 그 사랑의 원천임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였다.

빼어난 영상미도 없었고 미남미녀가 작렬하는 영화도 아니었지만
아주 따스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본것만 같다.

 

영화의 첫 시작에 엄태웅이 철문을 삐거덕 열고 들어오면서 그런다.

"뭐해, 들어와"

그 집 문을 들어서고
받아들여지면서
가족의 탄생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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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07-1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 본 영화인데.. 꼭 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