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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천사들 2
사노 미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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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를 재우고 타로의 지붕에 눈이 내린다. 지로를 재우고 지로의 지붕에 눈이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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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천사들]에 수록된 시다.
처음에 이 시를 접했을 때 너무 맹물 같기도 해서 별 맛을 음미하지 못했다.
시의 영향인지 아니면 [네가 없는 낙원]에 대한 애정이 깊어였어서인지 몰라도
이 책에 대한 감상은 더도 덜도 아닌 심심함이었다.
내게 사노 미오코는 [네가 없는 낙원]의 작가이고,
그 이전작이던 이후로 나올 작이던지 그녀의 작품은 [네가 없는 낙원]이 기준점이 될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책장에 몇년간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 헌책방을 이용해 팔리게 되어
마지막으로 책장을 넘겨보았다.
또다시 예의 그 시가 나왔다.
"타로를 재우고 타로의 지붕에 눈이 내린다. 지로를 재우고 지로의 지붕에 눈이 내린다."
근데 참 이상도 하다. 무슨 맛 같지도 않은 맹물이 어떻게 몇년간 기억에 고스란이 남아 있었을까.
단지 시가 짧기만 해서는 아닌듯 하다.
맹물 같은 이 시가 읽을 때는 몰랐는데 가문 가슴에 스며들어 오래도록 증발되지 않았던 것은
그 시가 갖는 순수함 때문이었을지도...
그와 같이 이 만화는 순수하다.
순수. 때 묻지 않은 고결한 상태. 내가 그리는 순수의 정의다.
아무 것도 몰라서 때가 타지 않는게 아니라,
다 알고도, 여러 선택의 길목에서도, 많은 유혹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는것.
나에게는 이게 순수함이다.
사악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남을 인정하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람을 대하는... 그런 순수함이 이 만화에는 있었다.
이미 내게서는 멀어지고 있는 것들.
어디다 두고 왔는지 잃어 버린것들.
그래서 끝없이 동경하게 만드는 순수함.
10년간의 아버지의 간병으로 인생 중 젤 찬란하다는 20대를 갇혀있게 되는 토우코씨.
그녀는 그런다.
젊음을 잃은 시간이 아니라 아버지랑 진지하게 1:1로 장기를 둔 시간이었다고.
13살 어린 그녀의 남동생은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고 단지 누나에게 의지해 커오면서
누나를 쉽게 대하는게 싫어서 누나라는 호칭이 아닌 토우코씨,라고 부르는 히로.
누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남에게 뺏기고 싶지 않은 이기적이고 못난 자신을 용감하게 성장시키는 소년.
표현이 서툴러 벽돌이(구석에 쳐 박혀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는 유형)가 좋다는 국어 선생, 오노씨.
추억을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아름답다,라고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멋진 그 남자.
히로를 짝사랑하기에 토우코씨에 대한 열등감이 심한 메구미.
그래도 그 열등감에 지지 않고 사랑에 달려드는 씩씩한 소녀.
큰 갈등도, 사건도 없이 시종일관 잔잔히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서 모두들 조금씩 마음의 키를 키우고, 시야을 넓히고, 손의 온도를 맞잡은 상대의 손에게로 나눠줄 수 있을 만큼 온기를 간직한 그러한 이야기이다.
지로와 타로가 자듯, 내 들썩이던 마음도 잠을 자고
지붕위에 눈이 쌓이듯 내게도 켜켜이 눈도 쌓이고 먼지도 내려 앉고 비도 오겠지만
이 모든걸 고스란이 받아들일줄 아는 순수한 어른이 되고 싶다.
힘든 시절 이 시로 인해 다시 용기를 가졌던 토우코씨처럼...
처음 이 만화를 접했을 때 그저 지루하게 읽었던건
다른 이유가 아닌 내 감성이 건조하고 자극에 취해있어서였을것이다.
더이상 [네가 없는 낙원]과 비교할 필요 없이 [순수의 천사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반짝거린다.
간혹 동화 같은 표현들이 닭살스럽기 하지만
토우코씨 사고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면 좀 더 순수한 천사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