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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Nabi - 단편
김연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단편집이라고 하지만 분절된 각각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장의 화선지 안에 그려진듯 서로가 연관되어 있는 여섯편의 이야기인 단편+집이다.       
딱 알맞을 정도의 농도로 익은 듯한 시 한편을 음미한 기분이랄까?       
서정적이고 함축적이라서 좀더 다가가고 싶고 여러번 눈길이 머물게 만든다.         

확 드러나지 않아서 더 보여 달라고 보채고 싶은 심정이 들게 만드는 이 여섯편의 이야기들은


<물푸레나무> -다음 생에서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던 그와
그사람의 소망만을 엿들은 소류의 물푸레나무 그늘 아래에서
백리향 가득한 이야기


<별>-시작도 못해보고 헤어져야 하는 연인들. 
같이 살자라고 못하고 그저 "겸이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살면 좋을텐데"    
"별이 넌 꼭 그러고 살아"라는 비껴간 대화를 하지만
그 속의 소망은 '너랑 살고 싶다'임이 분명하기에 좀 서글펐다.


<아이의 오후>-항상 상처투성인 남자아이와 그런 남자아이를 조용히 대하는 여자아이.   
상처투성인 얼굴로 여자아이의 잠을 재워주는 남자아이와 
남자아이의 말을 고스란이 다 받아들여줄줄 아는 여자아이                

그들의 첫시작... 묘운(妙雲)과 류상이 만나다.


<눈이 꽃에게> -다친 류상의 곁에 있고 싶어 서성이는 묘운과
묘운의 머무름에 들뜨면서도 아닌척, 무관심한척 행동하는 류상.
서로를 향한 마음은 같은데 류상은 거친 표현으로 숨겨버리고
묘운은 그 거침 그대로가 그의 마음일거라고 믿어버려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그들.

이 단편은 너무나도 맘에 드는데
간결함의 미학일 정도로 적은 지문과 대사이지만
오히려 이 표현법이 묘운과 류상의 사랑의 감정선들을 풍만하게 한다.

류상의 반어적인 표현 역시나 더욱 애틋함을 고조시키고.


<아루입니다>-아이는 부모가 다시 태어나는 그릇이라는 스승님의 말씀.      
아빠한테는 아루(娥樓)가 가장 예쁜 시니까 ...
아루라는 단 두마디 말로도 이미 시가 되어 버린다.


<유리알> -다리를 다쳐 절뚝이는 묘운을 아랑곳 하지 않고
혼자 앞서가는 류상이지만,
묘운이 중심을 잃고 휘청이자 그제서야 한마디 툭 내뱉는다. "잡아"

부러 피하는 듯 ... 차마 하지 못하는 듯이......       
이 만화는 접촉씬이 거의 없다. 
그래서 살짝 스치는듯한 최소한의 접촉만으로도 괜히 울렁대는 것이다.            

그렇다.        
이게 이 작가의 수법이다.           
감질나게 해서 애가 타게 하는 테크닉.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듯이 두손으로 가렸지만
그 손가락 사이의 틈으로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가린 두손을 확 거둬내고 싶게 만들어 버린다. 


<눈이 꽃에게>에서는 이 테크닉을 너무나 얄미울 정도로 잘 구사했다.

작화마저 동양적 색감이
(단지 소품이나 의상의 디자인만이 아니라
한지를 곱게 바른 전통 방문에 어리는 실루엣이라던가,
달빛이 고요하게 앉아 있는 듯한 정원의 풍취,
마치 먹가는 소리와 화선지 위를 스치는 붓소리가 들릴듯한 ..... 뭐 그런 분위기 말이다)

뚜렷하다보니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로서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이 기법과 너무나 잘 어울려주신다.

서사적이고 기승전결의 구조인 산문적 읽기가 아니라
회화적 특성으로 읽어내려야 이 만화의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구상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장편 [나비]의 외전격이라는 이 단편을 접하고 나니
이제 그 본격적인 이야기를 아니 듣고는 가지 못하겠다.  작가는 책임을 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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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8-26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아키타이프님~~~!!^^ 이제 여기서 만나게 되는 거예요?
결국 이 책 리뷰를 쓰셨군요... 작가는 책임을 져라~에 저도 한 표!!^^
 



 

주머니가 가벼워도 마음 하나는 때로는 넉넉하게 채워두고,  때로는 널찍이 비워두고자 했는데

어느새 주머니 무게 만큼만 웃고 우는 표정 잃은 여자가 돼있더군요.

깨우치자, 깨우치자 다짐을 하는데도 여전히 가난이 창피합니다.

그리하여 내 젊음을 스스로 놓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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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2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이프님, 가난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돈 좀 많이 벌든가요. ^^
아침에 저도 메일로 봤는데...

2004-09-07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더위 만큼이나 견디기 힘든건 습도다. 

습도가 높은 날은 그저 불쾌지수만 높아가는게 아니라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마치 내 몸이 카라멜이 된 기분.

그것도 먹다 뱉은 카라멜.

더이상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는 힘들다.

끈적하게 바닥에 내쳐진 기분-드럽다.

때마침 비가 내린다.

당장 습도가 제거되지는 않겠지만 축축히 젖어만 있던

공기가 한바탕 울고나면  한결 가벼워져 있겠지. 

그나저나 연정이가 외도에 간다고 했는데, 우산은 챙겨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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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08-1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찐득찐득해.. 견딜만하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이 글을 읽고나니 갑자기..ㅡ.ㅡ;;

로드무비 2004-08-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이 습도가 높긴 높더군요.
보수동 헌책방 골목도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세명상가 앞 비빔당면도 먹어보고 싶었는데...부침개 해서...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몰라도 부산은  강수량이 많은건 아니었다.

어쩜 우리 동네만 그런건지도 모르지만-지역도 동네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어쨌든 한번 쓸고 가준 비님 덕분에 날씨가 많이 수그러들었다.

27도씨도 그리 낮은 기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꽤나 더웠기에 시원하게 하루를 지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를 안 들으니 더욱 살맛 나더군.

더위가 이대로 순하게 물러가준다면 더할나위 없지만

매번 그렇듯 한번 꽥꽥 악쓸것 같아 걱정이지만 우선은 시원하니 즐겁다.

어쩌면 더위에게 너무 진저리를 치니 심술나서 더 사납게 구는건지도 모르지만

내 피부에는 고온과 땀과 습도는 독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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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초대 - 단편집 2
윤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윤린 작가님의 [아침향기]이후 두번째 단편집 [앨리스의 초대]

음반 업계에선 "소포모어"징크스라는게 있다.
1집이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킬 만큼 히트를 치지만
2집은 무시무시하게 실패할 때
2집 징크스를 전문용어로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부른다.

신인이 첫 스타트를 너무 잘 끊어도
그 이후 팬들을 만족시키려는건 데뷔하는것 보다 어럽기 마련.

그래서 윤린 작가의 첫 작품집을 보고 흔쾌히 만족스러웠던 나는
두번째에 대한 기대를 싹뚝 잘라내었다.
그럼에도 책을 산 이유는 [아침향기]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미 이 작가에게 콩깍지가 씌인것일까
분명히 별 재미가 없어야 함인데도 왜 이렇게 유쾌한걸까.

물론 소포모어 징크스를 운운할 만큼
[아침향기]가 공전의 히트를 친건 아니라는건 안다.
나를 포함한 몇몇의 팬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렇지만 나와 소수의 팬들을 매료시킨 그녀의 장점은 뭘까?
두번째 단편집 마저 손을 들게 만들어 버리는 재미는 뭘까?

이 작가의 힘은 상상력에 있다.
엉뚱하지만 삶을 재밌게 즐길수 있게 만드는 상큼한 상상력.
그래서 아무리 따분한 소재라고 해도
읽는 사람을 낄낄거리게 만들수 있는 위트

따분해- 한가?
심심해- 졌는가?
지루해- 미치겠는가?
그럼 [앨리스의 초대]를 읽고
잠시 일상속에 비일상을 꿈꿔보시라.
무리하지 않고 우리를 이상한 나라로 잠시 인도해줄것이다.

깨고 난뒤에 허망하지 않겠느냐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신나는건 만화속에서만 있는건 아닐터
각자의 마음속의 즐거움을 바라는 상상력이
우리에게 콧노래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경쾌함을 선사해 줄지도 모르는 일.

앞으로도 이 정도만 꾸준히 해 준다면
독자로서 더 바랄나위가 없을것같다.

더불어 표지 디자인도 참 예쁘게 나와줘서 읽는 재미를 배가 시킨다.
짧막 후기 역시 놓치기 아까운 깜찍스러운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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