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좀 사람을 질리게 하는 데가 있어” 이런 말을 친구가 대놓고 했다면 나는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저자가 그랬듯 모든 관계맺기에 이 말이 가시처럼 돋아오르는 경험을 했을 게 분명하다. 그걸 벗어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뒤틀어져버리는 마음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다 외톨이가 되거나 피상적인 관계만 맺고 살아갔겠지. 저자의 인생사 여러 에피소드 가운데 나는 이 대목이 제일 인상깊었다. 아마 나 또한 저런 말을 들을까 봐 무의식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많이 구축하고 살아서 그런 모양.
저자의 세계관도, 글 쓰는 스타일도, 나와는 맞지 않아서 어떤 부분은 그냥 넘겨버리고 달리기를 9년 동안 꾸준히 해온 사람이 터득한 소소한 팁만 메모해 둔다. 특히 발 마사지 요령이나 신발 끈 잘 매기 같은 것들은 의외로 수많은 유튜브 영상에서는 잘 안 보이는 팁들이라 더욱 반가웠음.
이게 내가 달리는 이유 같다
제대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달리기를 하면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면서 쓸데없는 욕심을 안 내게 되는 것 같아요.
달리기뿐만 아니라 일에서도 고작 8할까지 도달한 걸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아름답게 달릴 수 있을까?‘아름다움’은 주행거리나 기록과는 무관하다. 아름다운달리기에 의의를 두고 하나하나 배우면서 훈련을 거듭해야한다. 그동안 해왔던 것과 동떨어진 별개의 훈련 지침을 만들어서 다시 반복해야 한다.나는 5년 넘게 달린 뒤에야 겨우 이 사실을 깨닫는 지점에다다랐다. 일정 수준에 도달한 다음에야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것은 일과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날마다 변화하고 싶다. 아직 본 적 없는 나를 만나고싶은 욕구가 넘쳐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빈곤과 부조리를 미담으로 덮으려는 사회가 문제적이란데에 동의한다. 신사와 노숙인‘으로 대비되는 이미지가 자칫 후자를 온정에 감사해야 할 수혜자로 박제화할 수 있음도, 아름다운 한순간을 이렇게나 많이 기억하며, 우리가 어제와 다음 날의 서울역은 마치 없는 것인 양 착각할 가능성도, 문제의 원인을 치열하게 파고들어 투쟁해야 할 사안에서약자를 동정하는 데 그치게 만드는 ‘분노 없는 연민‘은, 문제의 원인으로 악인을 지목하고 그에게 분노를 터뜨림으로써손쉽게 정의감을 얻는 ‘연민 없는 분노와 동전의 양면을 이룰 것이다. 그럼에도 난 이 ‘미담‘에 냉소할 수 없었다. 선의가 하나 더해진 세상이 그것마저 제해진 세상에 비해 그 크기만큼은 나을 거라 생각해서다. 설령 이를 통해 부당하게가진 자들이 회개하거나 너무 많이 가진 자들이 호주머니를열거나 서울역 노숙인을 향한 시민들의 시선이 당장 바뀌는것은 아닐지라도 찰나의 선의는 그 자체로 귀하며,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 - P103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답은 모른다. 다만 그 질문을 지금, 여기서 다시 받게 된다면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통 받는 네가 되어줄 수 없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배신감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라고, 대체 무슨 소리인가 되묻는다면, 이 시를 들려주고 싶다.환승역 계단에서 그녀를 보았다 팔다리가 뒤틀려 온전한곳이 한 군데도 없어 보이는 그녀와 등에 업힌 아기 그 앞을지날 때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돈을 건넨 적도 없다 나의 선부른 동정에 내가 머뭇거려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그래서더 그녀와 아기가 맘에 걸렸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는데 어느 늦은 밤 그곳을 지나다 또 그녀를 보았다 놀라운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녀가 바닥에서 먼지를 툭툭 털며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자, 집에 가자 등에 업힌 아기에게 백년을 참다 터진 말처럼 입을 열었다 가슴에 얹혀 있던 돌덩이 하나가 쿵, 내려앉았다 놀라워라! 배신감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멀쩡한 그녀에게 다가가 처음으로 두부 사세요 내 마음을 건넸다 그녀가 자신의 주머니에 내 마음을 받아 넣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아기에게 먹일 것이다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뼛속까지 서늘하게 하는 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