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 씨 책을 읽고 있자면,
종종 드는 생각.

'너 참 잘났다'
'장난치냐 지금?'
'날렵하군'
'유쾌해 하하'

이런 내 일련의 느낌들에서 보여지듯, 김영하 씨는 소설 하면 연상되던 고리타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서, 고리타분함을 억지로 털어내고자 안간힘을 쓰는 게 안쓰러울 지경인 여타의 소위 감각파 작가들과도 격을 달리하면서,
외줄을 잘 탄다.
그야말로 가볍기는 하지만, 타박 받을만한 구석도 별로 없는 것.

한 때는,
나도 이런 격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별루다.

그래봤자, 그냥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내가 그냥 나지 뭐.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발랄하고 명랑하고 가볍고 단순하고,
이 따위 것들과 나하고는 원래가 그렇게 썩 어울리진 않았었다.

그건 태생적인 거다, 엄연히.

태생적인 내 우울함을 척도로 한다면,
김영하 씨는 내 스타일에서 조금 멀어진다.
내가 만든 이미지를 척도로 한다면,
조금 더 가까워지고.

그 두 선 안에서 외줄을 잘 타주니, 가슴 아프지도 않게, 지루하지도 않게, 그야말로 그저 재미나게, 그렇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이 단편집.

아주 황당하던 한 꼭지만 빼고는 나머지 모두 이의 없이 무난하게 별 4개 딸 만한 그런 단편집.

다시 펼쳐들게 될 것 같지는 않은,
인스턴트 같아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쩝.
맛있는 거 잘 먹구 나서 이런 소리 하면 못쓰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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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2-0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스턴트 같'다는 말이 마음에 닿네요. 저도 김영하의 소설 보며 그런 생각 종종 하는데.그런데 장편까지 인스턴트 같아 전 불만이 좀 많아요. 단편은 인스턴트 같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퀴즈 쇼> 보며 한 생각이에요.

치니 2010-02-04 15:04   좋아요 0 | URL
파고세운닥나무님 덕분에 무려 6년 가까이 지난 리뷰를 보게 되니, 기분이 묘합니다. ^-^;
저렇게 인스턴트 같네 어쩌네 하다가 그예 김영하의 다른 글들은 읽어보지 않게 되어 버렸어요. 말씀하신대로, 장편이 그러면 진짜 곤란하겠다 싶어서 더더욱 손길이 안 간 거 같아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2-0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 서평 보니까 말이죠. '그 후' 얘기가 <문(門)>인 거 아시죠? 그게 보통 나쓰메의 장편 3부작이라고 하는데. 일문학 수업에서 들었던 얘기에요. <문>은 읽어보진 않았구요. 꽤 지난 리뷰에 자꾸 댓글 달아 죄송하네요^^;

치니 2010-02-04 16:14   좋아요 0 | URL
앗 그랬나요? 저는 몰랐어요. <문>도 찾아서 읽어보고싶네요.
죄송하다니요, 재미있기만 한데요. :)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해 10월이었다.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을, 친구가 생일선물로 받을 때,
누군가, 전주 개구리 소녀라고 읽어서,
와하하 웃음 바다가 되었던 일이 있었던 때가.

세월은 정말 (!) 유수처럼 흘러서 이제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지금,
영화 개봉이다 뭐다 벌써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품을 서둘러 사 읽었다.

그 책을 선물했던 사람의 안목에 믿음이 있어서기도 했지만,
그 당시 그다지 질 좋은 종이에 인쇄 하지도 않았는데도 눈길을 확 사로잡아버리던 그 그림이 기억나서, 영화이야기가 돌자마자 책부터 읽고 보자고 맘을 먹었던 것.

그랬다.
나는 초등학생 마냥 그림을 봐왔다.
눈길이 확 가면 내게 좋은 그림, 눈길이 안 가면 누가 뭐래도 나는 안 좋은 그림.
다른 예술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썰도 많이 푸는 편인 내게,
그림이란건, 왜인지 그렇게 밖에 설명이 안되는 것만 같았다.
거기에 대고, 이건 이래서 좋아 저래서 좋아 토를 달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베르메르라는 사람의 그림이 무작정 좋으니, 이 책도 무작정 재미가 쏠쏠했다.
굳이 다른 사람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면, 그림에 대한 관심이나 예술활동에 대한 관심 없이 이 책이 그렇게나 재미있기란 좀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작가는 원래 유려하고 미끈하게, 우아하고 아름답게, 구성력을 가지고 거부감 없이 글을 잘 쓰는 재주를 타고난 사람 같아서 그런 생각은 그저 노파심일 뿐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사면서,
다른 책들도 2권 더 샀는데, 내질러 다음날에는 교보문고에 가서 2권의 책을 더 샀다.
바야흐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그런가, 내가 뭔가에 걸씬이 들렸나. 으.아.
암튼 읽을 거리가 많다는 생각에 , 배가 푸근하니 기분이 조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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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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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
[베로니카 ,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제목이 매우 유혹적인 소설 이후로 두번째이다.

[베로니카...]에 저으기 실망했던 터라,
[연금술사]의 회오리 바람에도 사보지 않고,
[11분]도 이제야 빌려 읽었다.

음,
처음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두번째도.
이상하게도,
이 사람 글은 자꾸 읽으면 읽을수록,
사기꾼 같다.
아, 물론, 대개의 소설가는 고도의 사기꾼이고,
또 그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사기에도 종류가 있겠고...
이런 종류의 사기에는 별루 넘어가고 싶지 않다.

아무튼,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가슴에 오래 남지를 못할 것만 같은 분위기,
아 설명이 잘 안되넹.

한 예를 들면,
내 친구도 강하게 공감했던 바 있는,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에 대한 주인공의 설명, 과정들...
말 장난 같아 보일 것 같은 이 구절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도,
이것이 자꾸 사기 같이 , 그러니까 작가가 정말 천착해서 알아낸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경험을 빌어서 소설가적인 멋진 글매무새로 다듬었다라고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내 눈이 너무 탁해서일까,
이사람이 완벽하지 못해서일까.

아흠, 책이란 것도 궁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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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04-08-25 0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으녕도 그런 얘기했어.
우리끼리 얘기지만 꼭 코엘료가 누군가의 생각을 표절한 것만 같다고..
궁합이 딱 들어맞는 책을 만나는 것도 행복인데.. 쩝..

치니 2004-08-25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내게 궁합 맞았던 책은, 최근에는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었던 듯.

플라시보 2004-08-28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을 제목이 너무 멋져서 사서 읽었는데 제목만큼 멋진 소설은 아니라 실망했더랬습니다. 그래서 11분에도 손이 안가더라구요. 쩝.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방대수 옮김 / 책만드는집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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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나 카레리나>를 완성할 무렵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함으로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은 톨스토이는 1880년에 들어 위선에 찬 러시아 귀족사회와 러시아 정교에 회의를 갖고 마침내 초기 기독교 사상에 몰두, '톨스토이주의'라고 불리는 사상을 체계화함으로써 예술가 톨스토이에서 도덕가 톨스토이로 변모한다.

이 정신적 위기와 극복이 이른바 톨스토이의 '회심'(回心)이며, <참회록> 속에 서술된 고백의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톨스토이는 현대의 타락한 그리스도를 배제하고 원시 그리스도에 복귀하여 근로.채식.금주.금연의 생활을 영위하였다."


톨스토이에 대한 위 설명을 읽고 나면,
이 책이 그야말로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이유가 가히 짐작 가기도 하는데,
내게 이 책은 그냥 재미난 이야기로서,
흔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주 부르짖는 '전도'를 당하는 느낌이 그닥 들지는 않는,
작가적이고 아름다운 글귀가 많은 단편집이었다.

전반적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얌전한 체념과 반듯한 명랑함,
그리고 욕심 없는 마음,
사랑을 느끼고 받고 주면서 살아가는 따스함,
그런 것들에서 푸근함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책.

톨스토이는 위대하다,
왜?
진정으로 욕심을 없애는 바로 그 지점까지 다다라서 죽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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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8-28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중 하나입니다. (데미안. 노인과 바다에 이은 3대 작품이라고 혼자 생각합니다.) 어릴때 읽었는데 제목도 너무 멋지고 내용도 좋았더랬습니다.
 
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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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재미난 책이다.
3-4시간 여에 걸쳐 독파하기에 전혀 부담이 없을만큼,
미끈하게 주루룩 읽힌다.

내가 일본 사람이었다면 더 광분하게 재미있었을 것 같은 구석이 많이 눈에 띄므로,
일본어를 좀 알거나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거나 평소 일본 작가들의 책을 탐독하는 사람들이라면,
십중팔구 재미있어할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

성장기를 제대로 겪어내지 못한 절름발이 이십대 초반들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고 나니,
내 어릴 적 시절 따위가 생각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해보려고 했다.

우씨.
눈물이 날 정도로 기억적(이런 말이 있다면)인 사건이 없다.

아니, 있는데도 내게 상처가 되는 것들은 스스로 알아서 대충 지워놔서, 너무 흐릿하고, 평범한 것들만, 단편적으로 떠오를 뿐이다.

이러다 나도,
고토처럼 하루종일 머리 끝을 자르고 앉았거나,
나오키처럼 하릴없이 몇시간이나 조깅을 하거나,
백치스러운 일상으로 애써 내면세계의 복잡함을 감추고 살아가다가,
늙은이가 되어 아주 허무해질 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지독한 허무주의는 재미 없다.

약간의 욕망을 키우고,
약간의 쇼비니즘을 창피해 하지말고,
약간의 고민도 하고,
조금만 더 치열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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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하트 2004-09-2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분의 리뷰에서도 님비슷한 말은 들었던것 같습니다. 인생이 그렇게 쿨하게만 살아가낼수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라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