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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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용을 차치하고 문학사상사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수많은 비난에도 꿋꿋하게 책 표지를 전세계에서 가장 구리게 디자인 하는 것으로 자존심을 세우더니, 이 책의 디자인은 나름 신경을 쓴 흔적이 여실하다.(독자들에게 결국 무릎을 꿇었다고 봐도 되겠다)

그렇다고 똥색에 가까운 누런 색의 바탕이 이뻐 보이는 건 아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삽화 따위를 난삽하게 그려놓은 이전의 책들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으니,

노력하는 출판사는 칭찬해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 닉 혼비도 칭찬해주어야 한다, 아니 닉 혼비의 매니지먼트를 하는 회사를 칭찬해주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혼비는 한국에서 나 말고도 매니아 층이 두터운 편일텐데, 이전의 편집 행태에 군소리 없이 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다. 내가 알기론 닉 혼비의 모든 책의 판권이 문학사상사에 있는 것 같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책은 요즘 전세계의 화두이자 한국 내 화두가 되어버린 자살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 같다. 여기서 ‘…같다라고 한 것은 당연히 이 책이 자살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인데, 역시 내 입장에서는 자살하지 말고 딱 90일만이라도 잘 살아보세 라는 삶에 대한 의미 찾기의 과정이라는 굵은 메시지보다는 사이 사이 들어가 있는 팝의 역사가 더 재미났어서 그 이야기를 우선적으로 하고 싶다.

역자는 친절하게 맨 뒷장에 나와 있는 음악가들에 대한 짧은 브리핑을 곁들어주고 있는데, 그 브리핑이 필요없을만큼 음악사적인 유명세가 뛰어난 그룹이 아닌 그룹들에 대한 혼비의 행간 멘트를 이건 주인공인 제이제이의 대사를 통해 툭툭 던져진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혼비 자신이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 장애아가 있어서 그 아픔을 아는 만큼, 이 세상에는 운명의 사슬이라고 불리워질만한 천형 같은 불행을 껴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불행 자랑(?) 습관에도 동요하지 않는 혼비 특유의 냉정한 유머가 곳곳에 스며 있음을 확인하는 건 또 다른 재미이다. 위에 말한 제이제이나 골칫덩이 십대인 제스처럼, 어떤 사람들은 남들에겐 별 것이 아닌 록 음악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거나 여자친구에게 채였다거나 남자친구에게 채인 일로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고 자살을 생각하는데 혼비가 이런 아픔에 대해 익살맞지만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는 방식이 역시 꽤 노련하다.

누가 누구에게 네 불행은 내 불행보다 좀 작으니까 내 앞에서 말도 하지마라고 하는 것만큼 부당하며 또한 일체의 소통을 막는 행위도 없다는 것을 네 명의 주인공을 통해서 역설하면서, 서서히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가는 따스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혼비의 모습은, 전작들과 유사한 것 같으면서도 유사하지 않다.

 

한마디로 그는 이제 늙었다.

속칭 꼰대가 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른이 되었다.

좋아하는 축구 팀에 대한 광적인 열성을 몇십년간 그대로 지니면서 어른스러운 연애 한번 못하던 그가(피버 피치), 우아한 백수로 살아가는 40대 솔로의 피터팬 식 가볍고 지루한 냉소(어바웃 어 보이)에서 고단한 사람들을 손 마사지로 어루만지는 굿 뉴스가 등장하는 따스함으로 옮아가더니(진짜 좋은게 뭐지?), 이제는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소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세지를 더 선명하게 그릴 뿐 아니라, 그 방법을 자신이 유쾌하게 제시할 수 있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몰락하는 세상의 어지러움에 책임감을 느끼는 어른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그 덕에 책은 이전보다 칼칼한 재미가 덜해졌지만, 그래도 오만하지 않은 어른으로,아름답게 늙어가는 혼비씨에게 박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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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4-0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님이 혼비 씨를 참 좋아하는구나. 싶은 페이퍼인데요.
이렇게 어른이 되어도, 혹은 늙지 않겠다고 똥고집을 피워도.
실은 어느쪽이어도 조금씩 투덜대며 이 사람을 지지하고 응원했을 거란 생각.
문학사상사가 전반적으로 변화하는 건지. 아님 잠깐 다른 행보를 보인 건지는
이후의 책을 봐야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요. ㅎㅎ

치니 2007-04-09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 지지와 응원 때문에 별 셋에서 넷으로 막판 수정했어요. 헤헤.
사실 책 자체만으로는 전과 같은 아쌀한 재미가 떨어지거든요.(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문학사상사에 대한 판단 유보는, 저 역시 대공감입니다. ㅋㅋ
 

엊그제 하이킥을 보니, 문희 여사는 봄이면 봄바람이 나서 미친x 이 되는 증세가 있던데,나에게 봄은 늘 나른함의 대명사라 나여사처럼 뛰쳐 나갈 마음이 들기는커녕 쏟아지는 햇살이 부담스럽고 그 햇살 속에 더 잘 비춰지는 온갖 세상의 오염들과 먼지 때문에 바깥 출입이 오히려 꺼려지는 계절이다.

(하긴 겨울엔 추워서 나다니기 싫다고 하고 여름엔 더워서 나다니기 싫다고 해왔으니, 봄에만 이런게 아니라 그냥 태생적으로 게을러 터졌다)

 

그래도 계절이 주는 여파는 작게나 크게나 누구든 피할 수 없기 마련.

나에게는, 역시 일하기 싫어 죽고 싶은여파와, ‘뭔가를 사고 싶은충동 구매의 여파가 왔다.

일하기 싫은 거야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어떻게든 시간을 떼워보자고 버티면 되는건데, 뭔가를 사고 싶은, 혹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은 충동이 지갑이나 몸이나 가만 놔두질 않는다.

나란 인간이 경제 관념이 꽝이라 그런지, 경제 관심이 꽝이라 그런지 아무튼지간에 무슨 무슨 이벤트는 항상 내가 무언가를 사고 난 뒤에 열리고 남들 다하는 인터넷 쇼핑도(알라딘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할 줄을 몰라 어찌 어찌 1시간만에 구입을 하고 나면 쓸 수 있었던 쿠폰이나 무슨 무슨 할인이 다 빠져 있거나 몇 일 뒤에 가격 폭락인 경우가 비일비재다.

오늘도 점심 먹고 나른하게 어서 어서 시간 가라 하고 있는데,

몇일 전 요가 생각을 했던게 떠올라서 나름 요가 비디오를 고르다가는,

생전 잘 들어가지도 않던 알라딘 메인 페이지를 보게 되고 이벤트에 서재 책꽂이 준다는 대문짝만한 그림이 있길래 '응모하기'부터 쿡 누르니, 무슨 책을 사야 하는 모양이라, 카테고리당 300개씩이나 되는 베스트셀러 책들을 하나씩 보고 앉았다가(그래요 오늘 백만년만에 한가해요),

이건 예전엔 읽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건 소문에 비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이건 어차피 사놔도 안 읽을 거 같은데

이건 아무리 이벤트래도 너무 비싸당

따위의,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걱정이나 하면서 창을 닫고 말았다.

이벤트도 없고 할인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때는, 휙 보관함에 들어가서 척척 고르고 결제하면서, 정작 이럴 땐 왜 이러는지 당최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위와 유사한 짓을 두어 시간 하다가,

다시 하이킥으로 돌아가서 나문희 여사가 부럽고 알흠답다는 생각을 한다.

꽃 한송이와 나비 한마리에 열광하며 기분 좋으면 노래와 춤이 절로 나오는 동심의 나여사.

그런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 대해 온 몸으로 가열차게 저항하는 나여사.

참 건강하게 잘 늙은 어여쁜 인생이다.

나는? 오늘 산 요가 디비디 오면 그거라도 열심히 해야지, 끄응.

(그래도 그간 모은 적립금으로 할인 받아서 달랑 3천원에 구매한 것에 뿌듯해 하는 중.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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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8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3-2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 ^-^ 잘 도착했나보네요.
요가는 저도 몇년전에 센터에서 3개월 정도 수강을 했는지라 나름 알던 가락은 있어요. ^-^;;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요가가 그나마 저에게는 가장 잘 맞는거 같아요. 운동이라고는 영 젬병이라서 가만 앉아서 하니 좀 낫드라구요.
이제 이틀 했으니 앞으로 꾸준하냐가 더 문제지만. ㅎㅎ 지금은 암튼 즐기는 중입니다.
 
소라닌 1
아사노 이니오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라닌, 벼르고 별러서 샀는데 멍청하게 2권이 있는지 모르고 1권만 샀다.

2권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감상을 적는 이유는 2권을 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2권을 사지 않느냐 하면, 뻔할 것 같아서다.

많은 알라디너들이 격찬한 이 만화책에게 뻔하다라는 수식어를 쓰는건 좀 미안하지만,

주인공들이 고민하는 내용이나 말들이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왜 나만 이렇게 감동을 못 받는지 반성해봤다.

 

아무래도 그녀들과 그들의 사고방식이 나랑 너무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그녀들과 그들의 생활방식도 너무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찾을 수 없는, 답 없는 고민 내용도 너무 비슷한 건 당연하다.

나는 아마 막연히, 좀 더 신선한 것을 기대했나 보다.

예를 들어,

프리터로 일하는 남자 주인공이 프리터 생활도 지겹고 돈을 위해 자기 꿈을 포기하는 것도 싫어서 음악을 하기로 하고 밴드를 구성하고 자신만의 음악을 CD에 담는 과정까지는 식상하더라도 괜찮다.

그러나 그런 그가 음반사에서 연락을 받고 신이 나서 뛰어갔지만, 음반사에서는 아이돌 가수의 백밴드를 제안하므로 거절하고 다시 좌절하다가 프리터로 돌아가는 과정, 거기다 음반사의 매니저 역할의 남성이 (알고보니) 한 때는 꿈을 이루기 위해 좋은 음악을 하기도 했다라는 설정은, 너무 너무 식상하다.

숱하게 드라마나 영화 (라디오스타 같은)에서 봐온 것이지 않은가.

 

고민에 대한 답을 달라는 건 (당연히) 아니다.

다만 고민을 그리는 깊이가 모자라다고 느낀다.

만화책이라서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깊이를 줄 필요가 없다면, 그저 담담하게 그린 거라면, 물론 이 정도면 훌륭하다.

하지만 작가로서는 적어도 다른 만화책들과 차별되는 깊이를 주고 싶었던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대사가 많다.

 

우리 시대의 청춘 군상, 혹은 자본주의 시대의 싱글 라이프를 그리는 것에 조금 더 요령 있는(?) 재간을 부리는 작가가 있다면, 오히려 <무슈장>의 작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러고보니, 이 만화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런 요령을 피우지 않는 점을 높이 사는 것일게다.

,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내가 늙은 나이에 이런 만화를 보니 감흥이 없는걸까.

오늘의 새꼬롬한 날씨처럼 애매한 기분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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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1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i 2007-03-2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이건 동네 대여점서 1권만 빌려보구요, 2권 패스한 만화예요. 보고나서 나도 늙었나, 만화가 시들하네, 이랬던...ㅠ.ㅠ 나쁘지는 않은데, 좋지도 않고, 그저 그랬어요. 전형적인 만화같지 않으려고 애쓴 티가 나는 만화의 전형... 모든 만화에 다 감동받을 순 없는 거지, 뭐 하고 넘기긴 했는데요,..헤헤.

근데, 치니님, 의외로 만화책도 많이 사시네요. +.+

치니 2007-03-2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 네, 세심한 연출을 못알아보는 제 문제도 진짜 있단 생각이 들어요. 하린군을 보면 저는 보지도 못한 표정이나 구석진 곳의 대사 한 마디에도 칼칼 거리고 웃던데... 만화의 진정한 묘미를 모르나봐요, 제가. ^-^;;

마하연 / 앗 동네 대여점에도 있나요? 그렇다믄 2권을 빌려볼 맘도 생기는데욧. 헤헤. 저도 나쁘진 않은데 좋지도 않고, 딱 그 감정. 요근래 만화책 사긴 했지만, 원래 어려서부터 만화책 별루 안봐와서 그 맛을 잘 몰라요.
재미 들리면 저 같이 게으른 타입에게 딱 좋은 장난감인데, 별루 체질이 아닌가봐요. 몇 번 시도해도 다 그냥 그렇다 싶공...^-^;;

chaire 2007-03-22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그 애매한 기분 이해해요. 특히 1권만 읽으셨다면 더더욱 그럴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1권을 덮었을 때는 좀 싱겁달까 그랬는데, 1권 끄트머리에서 터진 사건 때문에 궁금해서 2권을 안 읽을 수 없었죠. 그리고 2권을 읽고 나니, 치니 님 말씀대로 요령 피우지 않고 인생을 묘사한 진지함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도 뭐랄까 아직은 설렘을 버리지 않은, 뭐랄까 아직은 이슬 같은 물방울이 맺혀져 있는 아이들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 모야 인생 모야 그러믄서 한탄도 하게 만들고... 그러드라구요. 하여간 전 1권보단 2권이 더 좋더라는.. 하지만 내키지 않는데 사서 읽진 마시고요. 만화방에서 빌려보시거나, 안 되면 제가 드릴까요.^^ 아, 근데 무슈장이 재밌나 봐요.

치니 2007-03-22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aire / 흠, 아무래도 2권을 읽어봐야겠군요! 반만 읽고 전체를 말하기엔 역부족인게 사실인데. 만화방에서 찾아보고 없으면 카이레님에게 말씀드릴게요. 에헤 선뜻 보내주신다니 이렇게 고마울데가. 친절한 카이레님. 아 무슈장 재미있어요. ^-^ (역시 1권만 봤지만)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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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르면 입 다물고 있자.

 

이 나이 먹어서 그나마 경험상 터득한 처세라고 한다면, 모르는 주제에 떠들어대서 남들 피해 입히고 내 위신도 실추되느니 국으로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가 있다만,

FTA에 관해서는 묵묵부답으로만 일관하기엔 무언가 이건 아닌데라는 강력 포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니, 결국 신문도 안보고 티비 뉴스도 안보기로 일관하는 나 같은 냉소적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운 사람도 이 책을 주문하게 되었다.

이 사실 하나만 봐도, FTA, 대단한 물건인게다, 적어도 내게는.

 

말을 타고 타다닥 달리는 것 같은 일사천리의 또박또박한 말투에, 기본적인 외교 경험과 경제학자의 지식으로, 석훈 씨는 그야말로 우국의 총대를 맨 거 같은 인상이다.

전체적으로 우리는 매우 늦었다, 지금이라도 얼른 제동을 걸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메시지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단숨에 읽고 나면 여간 배짱이 두둑하지 않고서는 불안감에 휩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우석훈씨가 잘 모르는데도 떠드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그의 주장대로 외교부의 담당자들이나 대통령보다는 잘 알 것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협상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려면 정황상, 어째 그런 것 같다)

 

사실, 나로서는 우석훈씨의 이 책 이외에는 다른 어떤 의견도 제대로 들어본 적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 해도 너무했다, 내가 생각해도)

앞서 말한대로 모르는데 떠드는 것은 몹시 꺼려지므로, 여전히 내 의견은 거의 백지 상태이다. 한 사람만의 의견을 잘 알아보았다고 해서 전체에 대한 내 생각을 토로하기는 힘들기 때문.

간단하게 내 입장만 두고 이득과 손해를 따져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항상 들고 다니는 지갑 속 경제 개념도 아예 꽝인 내가 이득과 손해는 제대로 따져지겠는가.

게다가 이 쪽 저 쪽 이야기 좀 열심히 들어보려고 이제서야 맘 열었는데,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정부는 없고, 우석훈 씨 외 열혈 인사들만 외치는 중이다. 안되는 이유들을 열거하며되는 이유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고 싶은 심정인데 말이다.

(물론 과대광고 같은 냄새가 나는 이야기가 아닌, 과학적이고 근거 있는 이야기를 주로 해서)

답답함을 배가 시키는데는 일조한 책이지만, 책 속에서 제시한 실낱 같은 희망은 전혀 위안이 안된다. 조금이라도 속시원한 해결책을 모색하려면 아무래도 나의 무관심부터 자꾸 떨쳐내어야 하는데, 아아 불쌍한 소시민들은 일상이 너무 고단하다구.

우석훈씨도 말했듯이, 우리나라엔 시민들을 계몽해 줄 버트란드 러셀에 버금가는 철학자도 없고, 제대로 된 담론의 장도 없고. 경제학자랑 불안에 떠는 소시민들만 있어봐야 왕왕 떠들기만 하고 길은 안뵈는 거 같다.

그러니 그냥 속 편히 있다가 정 안되면 나라를 뜨자?

나로선 No.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내 나라 내 조국이라서 애국심이 절절 끓어 그런게 아니라, 그냥 사사로운 내 보금자리와 내 친구들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귀찮음을 덜기 위해서라도 이제 앉아서 토나 달지 말고 좀 움직여야 한다.

 

티비에서 잠깐 보니까,

간디학교의 졸업생 중에 서울대에 갔다는 한 청소년은,

세상은 바뀌어지는게 아니라 우리가 바꾸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졸업생 인사를 하더라. 청춘이라서 그런다 라고만 하지말고 나도 좀 젊어지자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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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도 강변북로에는 높은 회색들만 가득하고
    from 음... 2008-08-15 17:17 
    우석훈의 전작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는 내 독서 전력에서 미세하나마 충격을 준 걸작이었다. 촘촘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흥분이나 감상 대신 조목조목 따져 주며 현 시점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 모르는 분야지만, 경제학자 하면 주판알만 굴리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문화적 센스가 있는 사람이 있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 경제학자에서 생태학자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나보다
 
 
2007-03-13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dan 2007-03-14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진지하게 찝게뽕을 해야할 것 같은. 이 리뷰의 앞 부분은 꼭 제가 쓴거 같아요. -_-
FTA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 책으로 할래요. 딱 맞춰 리뷰를 올려주셨어요. 감사. ^^

chaire 2007-03-14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정적으로 FTA를 반대해요. 관련 도서들은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얼마전 예전에 방영된 피디수첩을 보고는, 정말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되겠구나 싶어지더군요. 그러니까 아마도 국정을 맡은 자들은 '국익의 총합'이란 것을 계산하나 본데, 그러니까 이를테면 농산물 개방으로 인한 농민 피해랄지, 광우병 쇠고기를 싸다는 이유만으로 구매해야 하는 가난한 국민들의 불쾌감 따위보다는, 어떤 부분에선 손해가 나더라도 이익이 되는 분야(그런 분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서 그 손해를 뒤엎을 정도로 이익을 냄으로써 국익의 총합은 증진할 수 있고, 지디피랄지 지앤피랄지, 성장률이랄지, 수출이랄지 하는 게 늘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들은 아마 물고늘어지는 게 아닐까 싶지요. 표면적으로는요. 그 배후에 어떤 정치적 술수가 있는지까지는 몰라도. 암튼, 그러나, 우리 시민의 입장에선 분명히 굴욕적이고 께름칙한, 심정적으로 몹시 기분 상하는 그런 협상 타결은 정말이지 반대하고 싶어요. 론스타 같은 넘들이 와서 우리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지들 욕심 챙겨가는 꼴은 정말 보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근데, 문제는, 저의 심정적인 반대는 참 무력하단 거죠. 결국은 매순간 정신차리고 살려면 매순간 탈자본주의화하는 정신이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것 같아요. (아, 근데 써놓고 보니, 모르는 얘길 떠들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살짝 부끄.. :)

치니 2007-03-14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 안그래도 이 책의 리뷰를 쓰신 걸 예전에 인상 깊게 보고 보관함에 담았다가 읽은거였어요, 감사드립니다, 답글을 빌어서. ^-^ 구국의 논리까지는 아니드라도 뭔가 구린 거 같거나 거짓말을 하는 거 같은 느낌만 안주었음 싶어요.

수단 / 찝게뽕,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 ㅋㅋ 근데 우리, 나이 차이 꽤 나는데, 쓰는 단어는 왜 비슷한거죵? 수단님이 애어른이었던거 같은데... ㅋ 딴 소리만 하구 있군요, 예, 읽어보셔도 좋을만한 책인 거 같아요.

카이레 / 맞아요, 제가 쓰고 싶은 말들도 카이레님이 쓴 말들인데, 잘 표현도 안되고 워낙 주워듣기만 해서 뭘 잘 모르겠으니 저렇게 써놓은거에요. 탈자본주의화하는 정신, 음...어려운거 같기도 하고. 휴.

2007-03-27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톰 존스 1
헨리 필딩 지음, 류경희 옮김 / 삼우반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톰 존스라는 책을 받는 사람은 대개 나처럼 세 번 정도 놀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 두께와 무게에 놀라고 (게다가 2권이다),

두번 째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장을 읽자마자 꽤 진도가 잘 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놀라고,

세번 째에는 그토록 길고 세세하던 대장정의 결말 부분이 무지하게 신속하고 압축적인데에 놀랄 것이다.

 

이 따위 서평이랍시고 나부랑대는 잡문에도, 서두를 어떻게 잡을까 내용 전개는 어떻게 할까 결론 즈음에는 뭐라고 휘날레를 할까 나름 머리를 굴리는데, 필딩 선생이야 오죽했겠나.

신음 소리를 내며 감탄할만한 부분은 바로 이거다.

각각의 문장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풍자, 비유, 은유, 시대적 통찰력, 인간에 대한 심오하고도 다양한 분석,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 단 한번도 잃어버리지 않는 글 쓰는 작업에 대한 자신감 등등을 빼고도, 통째로 이 전체가 구현하는 위용이 대단하다 느끼는 것은 비단 하드커버 금빛 장정 때문이 아니라 바로 엄청난 이야기의 파노라마를 엮은 열정적인 구성력.

책의 광고에는 건축적인 소설이라던가, 비슷한 말이 적혀 있는데 다 읽고나면 그런 광고 문안이 맞는거 같단 생각이 든다.

제 아무리 필딩이 완벽하다 해도, 기럭지가 기럭지 이니만큼 살짝 늘어지는 부분도 있고 작가 자신도 살짝 헤매는 것 같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당대를 생각하면 이 정도로만도, 필딩 자신이 예감했듯이,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작업이 된다는 것에는 이의를 달 사람이 없겠다.

 

그러나 이러한 길이에 비해 메시지나 전체 스토리는 단순한 편이다.

예나 지금이나 진심은 진심으로만 통하고, 허영은 또 다른 허영을 낳고, 시기와 질투는 시정잡배의 몫이고,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되갚아진다는 정도.

어쩌면 이런 대작을 쓰는 사람들일수록 내용 자체를 복잡하게 만들어서 자신의 소설을 부각시킬 필요성은 별로 못느끼는건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대작류를 기피하는 편인데도 꽤나 흥미진진하게 끝까지 궁금증을 가지며 읽었던 작품. 다음에 헨리 필딩이라는 이름을 보면 또 두께에 상관없이 집어들어 기웃거리게 될 것 같으니, 필딩이 책 속에서 여러 번 비평가들이 잡소리를 하는 걸 비웃거나, 자기 작품이 후세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고 마음껏 뻐길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잘난 척을 할 때마다 나름 귀여운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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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7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3-0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수업시간에 들은 기억이 전혀 없는 저는, ㅋㅋ 역시 공부를 제대로 안한 티가 나네요. 저도 선뜻 읽어보시라고 하기가 어렵네요. 한번 잡으면 궁금해서 놓기는 어려울텐데, 분량이 좀 길어야말이죠. 헤헤, 추천 고맙습니다.

sudan 2007-03-08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헨리 필딩을 '헬렌 필딩'으로 봤어요. 브릿지 존스의 그 작가는 아니겠지 설마 하면서 읽다가 페이퍼 마지막의 나름 귀여운 아저씨를 '나름 귀여운 아가씨'로 또 잘못 읽고는, 오오옷. 그 헬렌 필딩 맞나보다! 라고 결론 내릴 뻔 했어요. -_-

치니 2007-03-08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 / 아 브리짓 존스의 그 아가씨 이름이 헬렌 필딩이었어요? 전 그건 몰랐어요, ㅋㅋ 헨리 필딩은 저도 알라딘에서 처음 알게 된 아저씨네요. 이제 고인이 되었으니, 아저씨란 호칭도 왠지 어색하지만. 점심 먹고 노곤한데 수단님 때문에 한번 빙긋 웃어요.

blowup 2007-03-0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알라딘에서 첨 알게 된 작가였어요. 엄청난 고전인 모양인데 말이죠.
제 경우엔 고전에 대한 지식이란 게, 교과서에 나온 책하고 자기 집에 있는 전집류의 목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고전의 특징을 촌철살인의 경지로 요약해 놓으셨어요.^^


chaire 2007-03-0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 님이 말씀하신 그 촌철살인에 한 표예요. 책도 책이지만, 리뷰가 참 매끈하십니다.^^

치니 2007-03-0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 / 저도 어려서 '청소년에게 권하는 전집' 따위의 목록을 괜히 망라하는 꿈을 꿔보곤 했으나, 금세 포기했죠. 아무래도 뭐든지 오래 열심히 하는 건 제게 늘 어려웠어요. ^-^;; 그나저나 촌철살인이라니, 과찬이십니다.

chaire / 아이고 , 역시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 저 긴머리 나체 여성 그림의 작가는 누구에요?

chaire 2007-03-0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뭉크래요, 치니 님. 제목이 '죄'라네요. 그럴 듯하죠? ㅎㅎ

치니 2007-03-0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죄'라는 말을 들으니 왠지 주홍글씨가 생각나는데요, 흠.
그러고보니 뭉크 느낌이 나는거 같기도 하고 (제가 뭉크 느낌이 무언지 잘 알진 못하지만...), 아무튼 무척 인상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