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올레티비 타령이다. (네네, 영화관 가는 것조차 덥기도 하고 어차피 (여러 번 말했다시피) 제주 영화관에선 보고싶은 영화도 안 해주구요.)


<다른 나라에서> 이후로 침대에 누워 아이패드로 영화보기에 맛이 들려서 어제는 <해피 해피 브레드>를 보고 오늘은 <시작은 키스>를 봤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는 <시작은 키스>가 최고! 아,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잔뜩 들어간 감상이지만.


<다른 나라에서>가 한국이 프랑스와 걷는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면,

<해피 해피 브레드>는 일본이 스웨덴과 걷는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고,

<시작은 키스>로 말할 것 같으면...프랑스가 프랑스랑 걷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 하시는 분들은 <시작은 키스>를 보시라. ㅎㅎ

보면서 가장 크게 웃음을 터뜨린 장면이라서 비록 이 페이퍼 읽고 영화 볼 분이 단 한 명이라 할지라도 스포 발설하고 싶지 않다.


거의 모든 로맨틱코메디는 사랑의 서사 중에서 '시작점'을 모티브로 한다. 이 영화 역시 그런 것 같이 능청맞게 범상한 줄거리를 엮었다. (잘 나가는 미녀가 남편을 사고로 잃고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다가 우연히 사내에서 못 생긴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하면서 상처를 치유한다는 이야기)

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하지 않다! 말하자면 시작이 바로 끝, 끝이 바로 시작, 시작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시작이 키스였다는 아이디어는 물론 반짝이지만 절대 그게 다가 아니다. (아이, 그러니까 저는 아무래도 한국판 제목보다는 원제인 'Delicatess'가 좋다구요)

사랑하는 관계일수록 섬세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섬세함이 빠진다면 그 누구도 (아무리 잘 생겨도, 아무리 못 생겨도) 그 누군가를 사랑할 챤스는 오지 않는다고 영화는 내내 속삭인다, 그걸 알아들을 만큼의 최소한도 '섬세함'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릴 만큼 티 나지 않게.

그러니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은근히 무리하게 들이댔던 '사랑=용기'라는 공식은 영화에서 당연히 깨진다. 용감한 남자가 미녀를 차지한다고? 개뿔, 아니 아니 아니다. 또 다시 말하지만, 사랑=섬세함이다. 그 사람이 살았던 어릴 적 숲에 가서 '아, 내가 이런 미녀와 사랑하게 되다니' 하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욱을 들여다보면서 그녀가 슬퍼했을 자리를 지그시 밟아보는', 바로 그 섬세함이다. (그러면, 정말로 손만 잡고 자도 행복하더라 - 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스포)

또한, 신데렐라 되기 공식도 당연히 깨진다. 부러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영화 속 남녀 간 사회적 관계는 여성이 남성의 상사, 이 여성을 사귀게 됨으로서 뭇 사람의 질투와 시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때로는 부담스러워하고 때로는 자랑스러워 한다. 게다가 그런 남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여성이 더 높은 사람과 맞장 뜨고 싸운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남녀가 바뀐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그 유명한 드라마 대사 - 왜 내 남자라고 말을 못해?!가 여기서는 왜 내 여자라고 말을 못해?!, 딱 그렇다.) 뭐 대단한 페미니스트여서 눈여겨 본 것이 아닌데도 느껴지는 이런 신선한 설정, 아니 신선한 게 아니라 21세기에는 당연한 설정이지만 다른 로코 영화에서 별로 못 본 설정이, 로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어딘지 거북해지던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니 안그래도 흥미진진한 극 전개, 더 코를 바싹 들이대고 흠뻑 몰입하게 해준다.


나 혼자 재밌다고 흥분해서 과도하게 예찬한 리뷰는 그만두고, 이제 그냥 수다 몇 줄:

- 우리에겐 그토록 칭송받는 이케아, 여기선 안습. 무뚝뚝하고 실용만 내세운 허접 가구로 상징되니, 이 역시 뭔가 통쾌해!

- 오드리 토투가 저렇게 날씬했던가, 아멜리에선 몰랐는데. 어떤 옷을 입어도 원래 그녀를 위해 만든 옷 같다. 으, 살 뺴야겠어!

- 제대로 된 남자인가 알아보려면 친구보다는 할머니에게 소개시켜야 한다. 한 번 안아만 보고도 척, 할머니의 연륜을 믿자!

- 다락방 님이 그토록 사고 싶다던 핸드백이 어떤 건지 알았다. 이쁘고도 실용적이네요. :)

- 그러니까, 유머감각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잘 생겼는데 유머감각 없는 남자보다 안 잘 생겼는데 유머감각 있는 남자가 훨씬 우세한 무기를 지녔다는 데 500원 건다. 근데...여자도 그런가? 적어도 한국에선 아직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안 예쁘면 유머감각 연마해도 가능성이;; 쫌 슬프다. 쩝.

- 프랑스 영화를 보고나면 늘 일 따위로 고민하는 건 인생에서 가장 쓰잘데기 없는 느낌이 든다. 일중독자가 알콜중독자보다 더 하대 받는 듯?

- 사장에게 대들어도 해고 당할까 봐 겁나기 보다는 성희롱으로 쳐넣어주랴로 응수할 수 있는 사내 분위기, 캬 - 이거 진짜라면 프랑스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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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8-03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핸드백 이백만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치니 2012-08-03 21:28   좋아요 0 | URL
이백이면 뭐, 명품 치고 안 비싼 거죠? ㅋㅋㅋ 막 이래.
혹시 ppl 인가 싶을 정도로 주구장창 그 백만 들대요. ㅎㅎ

라로 2012-08-04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이 영화 좋았는뎅!!!근데 올레티비는 또 뭐야??지난번에도 그거 얘기하더니,,,앱이야??
이케아 미국에서도 싼 가구 취급받던데,,,,여기선,,ㅎㅎㅎㅎ
글구 오드리가 입고 나온 옷 다 넘 귀엽지 않았어????>.<
나도 살 빼야해,,,ㅠㅠ
근데 자기는 뺄 살이 어딨다구!!!!힝

치니 2012-08-06 00:52   좋아요 0 | URL
네, 아이패드 앱이에요. 흐, 이거 맛들이니 티비까지도 안 가고 맨날 침대서 봄. ㅋㅋ
오드리 패션 다 맘에 들어요. 근데 다 날씬(정도가 아니라 완전 말라야)만 멋스러운 옷들이라는 게 함정. ㅠ

프레이야 2012-08-04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 전 '시작은 키스' 보고
예전의 오드리가 보고 싶어 다시 '아멜리에'를 봤어요.
어쩜 그대로더라구요. 말라깽이지만 거긴 풍만한, 얼굴도 사랑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사차원스러운 ㅎㅎ
더위에 잘 지내시나요, 치니님? 전 지금 제주 와 있어요.

치니 2012-08-06 00:53   좋아요 0 | URL
아멜리에 보고 충격 받았던 1인입니다. 저렇게 특이한 배우가 또 저렇게 보편적으로 사랑스럽다니!
제주로 휴가 오신 거여요? 오, 잘하셨어요! 짝짝짝.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