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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 -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헬레나 (생물학적 노인, 여성, 아들을 일찍 잃은 아픔이 있고 슬하에는 딸 하나를 두고 있음)
인생이 무엇을 하든 순종하는 미덕을 갖춘 인간. 인간 종의 한계에 굳이 회의를 품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늙고 병들고 사랑받지 못해도, 단순함과 맹목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희망을 길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용자.
2 알피 (생물학적 노인, 남성, 헬레나의 전 남편)
인생이 무엇을 하든 자꾸 거스르려 하거나 이기려고 들어서 낭패를 보는 인간. 어리석은 짓을 하고 이를 깨닫자마자 다시 어리석은 짓을 하는 욕망의 노예. 안소니 홉킨스, 당신은 가장 멋지게 늙어가는 배우의 전당에 앉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3 샐리 (헬레나와 알피의 딸)
점쟁이의 허튼 소리를 믿는 엄마에게 '환상이 때로는 그 어떤 약보다 정신적으로 유익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영리하지만, 그 영악함이 이기심과 겹칠 때 스스로를 망친다는 사실은 모르는, 역시 어리석은 현대인. 하지만 이해해요, 다 부모 탓이죠.
4 로이 (샐리의 남편)
이 남자가 내게는 가장 홍상수 영화를 많이 떠올리게 한 장본인이자, 어쩌면 우디 앨런 자신을 조금쯤 투영한 인물이지 않을까 하는 의혹을 품게 만들었는데, 아 - 창작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여, 로이를 보고 정신 차립시다.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인생이 그나마 살 만하지 않겠습니까.
5 그렉 (헬레나의 직장 상사)
진정한 어장관리의 고수가 되려면 결국 포기할 물고기는 타이밍을 잘 맞춰서 포기해야 한다는 진리를 시사하는 남성. 우디 앨런은 이런 남자가 되고 싶었을 거야, 라고 나 혼자 생각. 흐흐.
6 디아 (로이의 새 여자친구)
5번 그렉에 비하면 한참 그 수가 떨어지는 여성. 예쁜 언니들은 이 여성이 맡은 역할을 보고 정신 차립시다. 가끔 참 예쁘고 똑똑한 분들이 이상한 남성을 만나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아마 그건 오로지 허영심 때문인가봐요.
7 샤메인 (알피의 새 부인이자 생물학적으로 가장 젊은 여성)
비밀이 없는 사람은 매력이 떨어지는 법.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센스가 암만 발달했으면 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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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꽤 넓은 편인데도 객석이 거의 꽉 찰 정도로 개봉 성적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역시 오래 꾸준히 하는 자가 이기는구나, 싶기도. 그리고 꽉 찬 관객들이 듬성듬성 적은 관객들보다 훨씬 조용해서도 놀랐다.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할 때(만) 점잖아진다.
간간히 적절한 타이밍에 흐흐흐, 울려퍼지는 웃음소리도 듣기 좋았고.
연휴에 보기에는 참 좋은 영화였지만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 이런 영화를 보면 좀 가슴이 답답해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