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수 있는 조건 하에서의 행복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 Cherry Blossoms - Hanami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얼마 전 행복전도사 최윤희씨가 자살(이라고 쓰고 나는 존엄사 했다고 읽는다)한 이후 사회적 파장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먼댓글로 붙인 웬디님의 생각 정도만 공감하며 알았을 뿐, 잘은 모른다. 

고백하자면, 나는 굳이 자살을 옹호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생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하나의 형태라고는 생각한다. 완벽한 무신론자는 아니고 정확히는 우주론자(라는 말이 있다면)인 나는, 때때로 어딘가 영혼이 자리하는 장소가 따로 있어서 '여기' 살고 있는 사람과 죽은 뒤에도 교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이 생에서의 삶이 지치고 힘들고 더구나 남에게 피해까지 주는 경우라면 스스로 그 연을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 도리스 되리가 코멘터리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는 다른 자연과 마찬가지로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는 것 뿐.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지 않겠는가 싶어서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이분법 논리에 따라 구분 가능한 명제라고 여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던 자연 진화를 했던간에 감정에 나약한 동물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을 참아내기 힘들다. 죽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그리워 하고 못 견뎌 하는 것은, 반복하건대, 그를 애도하는 순수한 감정만이 다가 아니라 '지금 내가 여기에서 힘든 것이 싫은' 감정이 더 우위에 있는, 이기적인 감정이이라고 생각한다(영화 속 자식들이 부모가 죽고 난 뒤에 보여주는 행동과 감정 표현이 이를 아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최윤희씨의 남편이, 여기, 사랑했던 아내가 없는 생을 살아내는 것보다 따라 죽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짐작, 이 영화에서 남편 루디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나서 먼저 죽어버리는 아내의 불가사의한 돌연사가 그런 내 생각에 굳건한 믿음을 더 하게 한다. 

그렇다면, 다른 묘안이 없다. 삶과 죽음이라는 도돌이 표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면, 그들과 함께, 이 생을 낱낱이 즐기고 떠날 때는 미련 없이. 이제 중년이라고 일컬어지는 내 짧은 인생살이에서는 이것만이 답이다.

* 좋은 영화는 보고나서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해 준 영화, 가을밤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뿌듯해 하는 중.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고세운닥나무 2010-10-1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까 말까 하다 안 봤는데, 그 결정이 후회가 됩니다.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차치하고 저를 위해서 말이죠.

치니 2010-10-13 13:41   좋아요 0 | URL
네, 꼭 보세요.
저는 봐야지 봐야지 했는데 이제서야 봤어요. 극장에서 봤음 더 좋았을 걸! 약간의 후회가 듭니다요. :)

프레이야 2010-10-12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려다 기회가 안 닿아 지나쳤던 거에요.
정말 삶과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요즘 자주 들어요.
죽음도 하나의 현상이라고 볼 때 그 현상을 두고 백 사람이면 백 가지의 생각이
있다는 것도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죠.
치니님, 저도 존엄사로 읽었어요.
감히 제 생각이지만, 충분히 행복한 죽음이었지 싶어요.
그리고 이 영화, 치니님 추천으로 얼른 찾아봐야겠어요.

치니 2010-10-13 13:4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존엄사로 읽으셨다니, 어째 반갑습니다. :)
영화 많이 보시는 프레이야님이 이 영화를 보고는 어떤 생각을 하실 지, 궁금합니다. 보고 글 올려주시기! :)

stillyours 2010-10-1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장에서 한 달 동안 네 번 본 영화에요.
한 주에 한 번씩.
그러고나서 디비디로 또 네 번을 더 봤어요.
왠지 열 번을 채우면 더 안 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두 번을 남겨두고 있어요.
너무 좋죠 치니 님.
치니 님 글 보니 또 보고 싶어졌어요.
그러면 이제 아홉 번.

치니 2010-10-13 16:24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이거 보고 moon님 생각을 했어요.
또 일본에 가고 싶어지기도 했구요.
발트해는 추울 거 같아서 아직 엄두가 안 나요.
영화가 좋으면 열번이 다 될 때까지 보고, 채우면 더 안 보게 될까봐 아끼는 moon님이 예뻐요. :)

레와 2010-10-15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비디를 오랫동안 보관함에 담아뒀는데, 이제 주문해야겠어요!

^^

치니 2010-10-15 11:49   좋아요 0 | URL
아, 레와님 아직 안 보셨구나. 보고나서 소감 알려주셔야 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