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재 메인 페이지에 가서 이것저것 들여다보자니, '오바마가 추천한 책'이 눈에 띈다. 오바마라는 이름이 형광펜으로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이름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 내가 오바마라면,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어도 함부로 추천할 수 없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나처럼 '저 책의 출판사나 작가를 오바마가 후원하는 것인가'라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걸 뻔히 알면서 어찌 강력한 추천을 쉽사리 하겠는가.
요새 김연아 스케이터가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데, 가끔 그녀를 보면서 생각한다. 24시간 내내 - 어쩌면 잠 자는 순간까지도 -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망상 같은 건 없을까, 빙상 위에서 실수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밀도가 꽉 차 오를 때 그녀는 과연 탄식하거나 비웃는 관객들(아니 연예인 팬덤을 보여주는 무리들)의 시선을 하루에 몇번씩 떠올릴까. 누군가는 경쟁자인 아사다 마오가 안됐다고 하던데, 나는 우리의 김연아가 안됐다. 선택은 그녀의 자유이지만, 세계 최고를 연달아 하는 것 이외에 더 재미있고 더 편안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들을 포기하고 얻은 최고라는 수식어와 유명세가, 김연아 개인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는 지는, 아니 적어도 그만큼의 대가를 치를 만큼인지는, 나로서는 아직 모르겠다.
지금은 잦아든 2PM 재범이 사태도 역시, 비슷한 구석이 있고 말이다. 아니, 재범이가, '내 옛날 홈피 들어와서 글 좀 봐줘 ~ 그리고 날 더 미치도록 좋아해줘 ~'라고 한 것도 아닌데, 샅샅이 자발적으로 뒤져서 읽은 뒤, '이눔 시키' 하면서 따진다는 게, 유명인 vs 비유명인의 구도가 아닌,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하지만 말이 되었고 그 말이 더욱 일파만파 퍼져 나간 이유는, (내 생각에는) , 그냥 그 당시 재범이는 너무도 인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오바마나 김연아처럼 전세계가 다 아는 유명인이 아닌, 이 작은 알라딘 세상에서조차 그렇다.
인기 서재, 라거나, 주로 많이 회자되는 서재의 블로거님들의 처지(?)를 한번 그려보면, 본인의 글이 유명해진다는 것이, 꼭 좋기만 할까 싶다. 글을 쓰다가 은연 중에 삽입한 자신만의 사생활이 누군가에게 타겟이 될 수도 있고, 온라인으로만 사귐을 계속하고 싶은데 끈질기게 오프라인에서 만나자고 하는 애독자에게 딱히 거절하지 못해 난처해질 수도 있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별 거 아닌 글을 썼다 싶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이슈화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안티가 생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표절 시비가 붙기도 하고...김영민이 '동무론'에서 주지하다시피, 인간의 호의/호감은 신뢰와 다른 것일진대, 글만 보고 호의/호감을 가져버린 대다수의 팬들이 오독에서 비롯된 오해를 일삼(고 자신을 좀처럼 가만두지 않)을 때, 그 알라디너는 어쩌면 '조용히 살고싶다' 라는 생각을 하다가 자연스레 이 곳에 오만정이 떨어질 지도 모른다. 오만정이 떨어지는 정도까지 안 가더라도, 블로그라는 특성에 기대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활짝 펼쳤던 비유명인 시대에 비하면 마음 자세가 조금은 경직되는 것을 점차 느껴서 도리어 쉽게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우리가 왕왕 유명인에게 범하는 오류는, 저 오만정 떨어지게 하는 작태들 속에, 우리가 한 행동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믿으면서 끊임없이 '유명인이 된 사람=공인'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그들 자신은 모르는 불특정다수에 대한 책무를 묻는다는 것이다. 아, 고달프기 짝이 없는 이 유명인들의 생활. 그래도 꿋꿋이 유명해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니 많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권력의지 내지는 욕망 정도로 설명 가능한 것일까. 인간에게는 행복 추구라는 궁극의 목적이 있는데, 그것과 거의 백프로 대치되는 유명세를 굳이 치루려고 하는 속성은 또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한번도 유명해져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아무튼 '불편해' 보인다. 그래서 많이 안 유명한 것들에게 자꾸 호의적인 시선이 간다. 서재도, 음악도, 그림도, 책도.
그러다가, 이런 책 보면 '보통의 존재'로서의 소소한 교감이 떠올라 헤벌쭉, 귀엽고 기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