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요즘 내 독서는 산문집 혹은 시평 쪽으로 자꾸 기운다. 국내 소설을 좀 읽고 싶다고 생각은 계속 하고 있는데, 허구의 이야기에 함몰되기에는 세상이 너무 하수상 하여 남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그게 더 궁금해지는 모양이다.
고종석은 다른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여기저기서 언급하고 모종의 신뢰감을 드러내는 걸 많이 봐서, 나도 언젠가 그가 쓴 글을 읽어야지 라고 저절로 세뇌되었던 케이스.
그런데 도서관에 가니 이 사람, 소설도 썼고 산문집도 썼고 비평도 썼고 시평도 썼네, 아유 그 중 어느 분야에 가장 쏙 맞는 글을 쓰시는 지 당장은 알 길이 없다. 아쉬운대로 가장 최근에 쓴 책을 읽어보고 역순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 싶어 (소위 '전향'을 하는 분들이 워낙 많으니 최근부터 봐야 안심이 된다는 단순한 논리에서) 이 책을 골라 들었다.
아직 읽기는 초반이고, 신문 잡지에 낸 칼럼이나 시평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는 것, 술과 담배를 좋아한다는 것, 영혼을 늙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 정치색이 있지만 예상보다 짙지 않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 사람도 좋아한다는 것,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때는 가끔 귀엽기까지 하다는 것, 정도의 느낌을 주고 있어서 책의 내용은 차치하고 개인적인 호감도가 상승하는 중이다. 그런데, 내가 짐작하는 그가, 그러니까 그의 글 속에서 나타난 느낌으로만 짐작하는 그가, 정말 그일까. 아니 그와 비슷하기는 할까.
그런 중에, 오늘은 알라딘 서재에서 이런 저런 글들을 읽다가 문득, 고종석 본인이 책 속에서 '글이 곧 사람이라는 말은 적중율이 거의 반도 안된다는 걸 장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간교해서 글에서는 얼마든지 자신을 다르게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 구절이 생각났다.
글도 그렇지만 '음악이 곧 사람'이라는 말을 하더라도 저 구절은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길지는 않지만 내 나름의 듣기와 읽기 역사를 들춰보더라도, 그런 경우가 꽤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내가 글을 읽을 때 행간을 읽지 못하거나 스타일에만 혹 하고 넘어가거나 통찰력이 없어서, 가 아니다. 정말로 글을 잘 쓰는 어떤 사람들은, 그 글에 희미하게 나타날 수 있는 자기 모습조차도 아주 다르게 채색해낼 수 있는 용의주도함을 타고난 '재능'으로 갖고 그걸 써먹을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만, 글을 쓴 개인의 보이지 않는 실체 같은 건 아예 모르는 채로 작품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음악은 더더욱 그러하고. 아름다운 글,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그림을 마음껏 즐기되, 너무 사랑해서 그것을 창작한 사람의 내면까지 속속들이 알려하면...음, '다친다'. 그런 면에서, 언젠가 하루키가 자신은 자신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팬들을 절대 직접 만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고 했던 심정이 이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