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세대를 위한 반자본주의 교실
에세키엘 아다모프스키 지음, 일러스트레이터연합 그림, 정이나 옮김 / 삼천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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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오지 않았으면 했던 월요일을 맞이하여 9시까지 출근을 하고 12시에는 점심을 먹고 6시가 넘어도 퇴근을 할 수 없으면 안달이 난다. 집에 오는 길에는 피곤에 지쳐 맛있는 저녁을 해먹을 요량보다는 아무 것이든 누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냥 밥통에 있는 밥을 대충 인스턴트 유부초밥용 유부에 우겨넣고 그것을 먹어가면서 이렇게 인터넷을 한다. 

거의 매일이 이런 식인데 어떤 날에는 아파서 회사를 안 가거나 열 받아서 저녁에 누군가를 만나 술을 먹거나 하는 정도의 변형이 있고, 주말에는 주간에 못했던 빨래나 청소를 몰아서 한다. 

가끔씩 문화생활도 즐기고 사유가 가능한 책 읽기도 하고싶지만 늘 여의치는 않다. 언제나 그것들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들에게 앞자리를 비워 준 다음에라야 찾아오고, 만일 그 순서를 바꾸면 새가슴이 되어 왠지 조바심이 난다. 

이런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다. 통계 따위를 내보지도 않았고 어디 나온 것을 찾아보지도 않았지만 이런 생활은 다름 아닌 전 인구가 현대에 하고 있는 생활과 큰 차이가 없다. 

그나마도 밥벌이를 시켜줄 자본가를 만난 사람은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일정한 자격(?)이 안되는 사람은 하루하루를 악몽처럼 보내면서 문자 그대로 죽지 못해 살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가끔 멍 하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가 왜 이러구 살지, 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건 왜 이리 엄두가 안 날까, 라는 생각을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생활은 여전히 똑같다. 

이 책은 예의 왜 이러구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간단히 답 한다. 

그것은 우리가 만든 체제, 그 체제 중에서도 자본주의라는 체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중도 실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자본주의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닌데 모든 책임을 자본주의로 돌린다니, 너무 극단적인 책이 아니겠는가 우려부터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만, 자본주의는 오늘날 자본의 세계화의 다른 이름이 되어버렸으므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책의 상당 부분에 공감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우리가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 전 고대부터 체제를 만들어왔고, 가장 최근까지도 국가의 이데올로기나 체제는 지금보다 다양했으며 이렇게 세상의 대부분이 자본주의 체제로 통일되어가는데 옛날보다 살기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실패한 공산주의를 딛고 보다 타협적인 대안을 내놓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좌빨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언제나 변혁은 인간에 의해 꿈 꾸어져 왔으니 이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꾸자는 이야기일 뿐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이상 꿈이 될 수 없다. 꿈은 몽상과 다르다. 꿈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전념하는 동안 보이지 않는 작은 변화들이 모이고 모여 언젠가 우리가 꿈 꾸었던 바로 그 세상의 근사치에 가까운 체제를 만들어 갈 수만 있다면, 자본주의고 사회주의고 우파고 좌파고 간에 다들 좋을 것 아닌가. 

그렇게 하기 위해 이 책이 제안하는 행동강령은 소위 운동을 하라는 것도 촛불을 꼭 들어야 한다는 것도 시위대에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주라는 것도 자신들의 행동강령을 세뇌 시키라는 것도 아니다. 조직적으로 누군가가 대표로 나서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가자!라고 외치지도 않았는데 수많은 네티즌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그냥 구경하기 위해, 혹은 그냥 놀기 위해 광장에 나갔던 작년 6월 그 때 우리들이 한 것처럼, 그렇게 모두가 체념하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최근에 유행했던 말 중에 '아마 안될거야 우리는..."시리즈가 있었다. 정말 안될까? 아니,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당당하게 말하고 그 증거도 보여준다.

그저, 모두가 다양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잊지 말되, 인간이 개별적으로 이기적이 되는 것보다 서로 나눔으로써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만 하면 된다. 누군가의 권력에 의해 무개념 무사유 무의식으로 움직이는 체제를 거부하고 설사 내가 그 권력을 갖더라도 휘두를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 이 세상에 있는 인구 개체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라는 것만 인식하자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억지로 쌓아놓은 위계질서는 무너질 수 밖에 없으니까.  

비록 책을 읽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쳇바퀴 안으로 들어가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이 된다 할 지라도 한번쯤 이런 책을 읽고 환기하는 것이 분명히 작은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은 설고 거칠게 짜인 이런 책이 어쩌면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필독서가 될 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책은 나 같이 마르크스 자본론 하나 읽지 않고 살아온 성인이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되고, 중고교 학생들에게도 읽히면 좋을 책이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자본이 아닌 자연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많은 십대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될테고, 그들은 당연히 우리의 미래가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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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2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안그래도 저도 눈여겨보고 있었던 책이예요

치니 2009-07-20 20:43   좋아요 0 | URL
아, 역시 괴물님은 두루두루 필요한 책들을 잘 찾아내시네요.
전 몰랐다가 지인의 소개로 읽었답니다. :)

다락방 2009-07-2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태그를 보니,
그쵸, 질문도 아는 사람이 하는거예요.

그나저나 저 역시 마르크스 자본론 하나 읽지 않고 살아왔으니 이 책이 도움이 되겠군요!

치니 2009-07-21 09:50   좋아요 0 | URL
ㅋㅋ 다락방님,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뭘 모르는 애들은 질문도 안하더라고 하던 생각이 나요.(저는 종 치기 전에 질문하는 애들이 젤 싫었죠. 끙)

그런데 이 책 읽고나니 늦기는 했지만 자본론, 더 이상 읽기를 미룰 수 없다 싶어요. 아이고 언제 읽나. ㅋㅋ

또치 2009-07-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근데 청소년들한테 권하기에는 책제목이 너무 '쎄다' ...
일단 나부터 읽어봐야겠어요! (아으, 알라딘 서재는 온통 뽐뿌질 서재...)

치니 2009-07-21 10: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제목이 좀 그렇다고 생각해요. '촛불세대를 위한'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도 어떤 부모에겐 좀 거부감이 들겠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나니 제 아이에겐 읽히고 싶다로 결론이 나서 다행이었어요.

네꼬 2009-07-21 12:59   좋아요 0 | URL
출판사 이름은 무려 삼천리.

치니 2009-07-21 13:15   좋아요 0 | URL
ㅋㅋ 아무렇지도 않았던 출판사 이름이 네꼬님이 이렇게 말한 순간, 왜 이리 재미있어지는지.

네꼬 2009-07-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예요. 그러니까 체념하지 말고 이것저것 뭐든 해보자 이거군요. 새겨 듣겠습니다. 그런데 치니님은 참, 영화도 책도 장르고 뭐고 할 것 없이 잘근잘근 잘도 읽으셔요!

치니 2009-07-21 13:17   좋아요 0 | URL
네, 사실 저도 체념을 쉽게 하는 꽈인데 이거 읽으니까 반성 좀 되더라구요.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사는 건 아무래도 좀 창피한 일 같아요.

제가 좀 장르 불문이죠. 히 -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오늘 아침엔 내가 왜 요새 진지한 책만 읽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있는 소설 추천 바랍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