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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킹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뭔가에 중독된다는 것에 늘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중독된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무조건 싫고 두렵다.
젊은 시절 한 때의 치기로 그렇게 되었다, 라고 평가되는 것은 더욱 소스라치게 싫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언제고 끊어도 좋은,
그것이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는,
집착이라는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한 마디로 스스로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행위는 부자연스럽고 아름답지 않고 종국에는 나를 파멸로 이끌어 갈 수도 있을 것이라 여긴다.
하하, 그러나!
나는 니코틴에 중독 되어 있고, (많이 피우진 않는다, 독한 담배는 안 피운다, 아침 공복에는 피한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위의 부제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결국 ‘피우고’ 있는데.)
술을 끊는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지만 잠시 떠올려만 봐도 그 인생 참 재미없다 싶으니 초기 중독 상태일 지도 모르고,
사람에게 집착하지 말아야지 수백번을 다짐해도 마음이 그대로인데 쿨 하게 관계를 끝내는 법 따위는 여전히 알아내지 못했고,
그 외에도 커피를 안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순간, 콜라를 안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순간, 고기를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처럼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식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이걸 바꾼다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별로 바꿀 생각도 없고,
한 마디로 몸과 마음이 골고루 약하기 짝이 없어서 언제든지 아주 힘든 일이 생기면 통제력을 상실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이 바로 나인 것이다.
저자 캐롤라인 냅은, 그런 나와 (혹은 나와 비슷한) 우리들의 대변자이다.
저 잘났다고 똑똑한 체 하면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세련된 모습으로 거리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이 시대의 많은 독신 여성들(물론 독신 남성들이나 가정이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 모두가 대상에 포함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독신 여성이므로 유독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저자는 이들의 이중생활 – 수위에는 차이가 있겠으나 대개는 이 생활을 할 거라는 데 500원 건다;; - 의 허점을, 자신이 알코올과 거식증에 빠져 지낸 세월을 찬찬히 성찰하고 그 성찰의 결과를 기자 출신 다운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최대한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채찍질이나 협박이 아닌 읍소 - 꼭 맞는 비유는 아니겠지만, 마치 그 옛날 왕에게 우국충정과 혼신을 다해 충언하는 신하의 그것 마냥 절절한 읍소처럼 들린다. 이 책을 그저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알코올 중독자의 금주 일대기 정도로 가볍게 읽어버릴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음주 뿐 아니라 많은 행위에서 나는 항상 ‘지나침’을 간과할 수 있다. 적절한 선이 어디에 존재하는 지 매번 알아채면서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시면 취해야 정상이지(취하지도 않으려면 술을 뭐 하러 마시나), 그리고 사람이 술을 마시면 다음날 일을 그르칠 수도 있지, 라는 식의 자기합리화가 마치 낭만의 단편처럼 묘사된 시대를 살았던 나와 같은 세대에게는 더욱 더 와 닿는 부분이 바로 그 ‘적절한 선’이다. 그 선을 찾는 일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의연하게 해낼 수 있을 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생을 우리 자신이 조정하는, 끌려가기보다는 끌어오는 느낌을 약간 얻어낼 지도 모르겠다.
흠, 그래도 어제 오늘 비가 왔는데 술 한 잔 안 하면 섭섭한가? 라는 생각 중.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