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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 2008 촛불의 기록
한홍구 지음, 박재동 그림, 김현진 외 글, 한겨레 사진부 사진, 참여사회연구소 외 /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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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순전히 게으름 때문에 촛불 현장에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마음으로 응원하고 앉아서 아고라와 관련 동영상들을 보면서 울컥 하며 눈이 뻘개진 것이 전부이다.  

무섭고 두렵고 엄숙하던 우리 시대 시위나 집회와는 달리, 재기 발랄할 뿐 아니라 거의 문화 축제를 방불케 한다고들 했던 그 한 판 場에 대해서, 86학번인 나는, 그래도 여전히 (게으름을 가장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잠깐씩 광장 공포증에 휩싸였는지도 모른다.   

학교에 가면 5.18 영상을 틀어주는 장소에만 가도 어디선가 누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가 고발할 것 같았고, 시위가 잦은 대학에 다녔던 큰 오빠는 시위대 근처에도 안갔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아버지가 전라도 사람이라고 말하면 불시검문을 받다가 그냥 이유없이 끌려간대도 누구에게 뭐라 하소연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내가 처음 면접을 보았던 대기업에서는 대학교 시절 '데모한 적 있는지'를 묻고 여부를 종이에 적었다.  

그런 나라였다. 그런 나라여서 숨을 죽이고 살다가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이제는 잊고 웃기까지야 못해도 터놓고 말은 해도 되는 밝은 나라가 된 줄 알았다. 대통령 가지고 마구 놀려도 아무도 뭐라 안했고, 대통령을 탄핵 한다고 해도 뭐라 하기는 커녕 탄핵 반대 시위도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걸 느껴보면서, 어느새 우리는 잊었던 것 같다. 각자가 지닌 정신적 외상 따위는 훌훌 털어버리고 그런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는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그렇게 쉽사리 갖다니(쉽사리 갖지 않았다면 나머지는 다 괜찮으니 경제만 살리라고 대통령 뽑아주는 일은 안했을테니까),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요즘에 와서 보자면 이 얼마나 순진한가 말이다. 

순진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 예전에 말했듯이 우리 국민이 유난히 잘 잊는 국민들이어서, 아니면 우리는 기록하는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주는 기록의 의미는 단순한 기록의 의미만이 아니라, 다시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국가에게 배신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보는 의미, 더 나아가서 이렇게 차곡차곡 해나가다보면 그야말로 빛이 어둠을 이겨내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희망까지도 주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머리글에서 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이 우려했다고 쓴 것처럼, 이 기록이 조금이나마 편향적으로 혹은 감상적으로 치우칠까봐 읽는 내내 약간은 노심초사 하면서 읽었다. 비교적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을 많이 한 글도 있었지만 자신의 입장을 그대로 피력하는 산문 스타일도 있었으니, 또 누군가가 여기 적힌 글들의 진위를 가지고 시비를 걸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떤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고 글을 쓰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사실을 왜곡하는 수준이 아니고 다만 같은 사실이라도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어서 객관적인 기술조차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렇다면 이 책은 오케이. 내게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오케이였으면 한다. 장하준의 책이나 우석훈의 책도 군대에서는 금서가 되는 나라니까 말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기억을 곱씹는 것 이상의 아우라가 패배주의를 물리쳐준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해당사항 무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우리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해당사항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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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9-03-2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이 댓글도 없이 추천을 해주셨고요, 저는 두 번째 추천을 해놓고 이렇게 으쓱대고 있어요. 치니님, 안녕? (살랑살랑~)

치니 2009-03-24 14:17   좋아요 0 | URL
댓글 없는 쓸쓸함을 알아주고 추천까지 덤으로 주시는 다정한 네꼬님, 안녕?
(살랑살랑 ~ ) 히히 감사합니다.

웽스북스 2009-03-25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이 댓글도 없는 추천을 해주셨고요, 어떤 분이 두번째 추천을 하고 으쓱으쓱 살랑살랑하셨구요, 저는 세번째 추천을 해놓고는 뿌듯해하고 있어요. (자자자 왼손엔 바톤하나, 누구에게? ㅎㅎ)

치니 2009-03-25 10:24   좋아요 0 | URL
어이쿠, 상냥한 웬디양님도 ~ (이럴 때 정말 피터팬의 웬디 같으십니다)
아흑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