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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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농담을 잘 하는 사람이 진지한 사람보다도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로 인해 한 때의 내 목표는 하루에 한번은 남을 웃게 해주기, 따위가 되기도 했다. 남이 나를 웃겨서 웃을 때보다 내가 남을 웃겨서 느끼는 희열감이 나를 더 행복하게 했기 때문이다. 찌뿌드 한 얼굴을 하고 무감각하게 인사를 하는 상대에게 말 한마디 표정 하나로 픽 웃음이라도 터지게 해주면, 내가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무척 기뻤다.

지금도 회사에서 내 별명은 '개그 지영'이다. 내가 주로 하는 것은, 표정 개그나 자학 개그다. 위트가 부족하고 머리가 좋지 못하니, 짐 캐리를 닮았다는 내 얼굴을 무기로 웃겨주거나 스스로의 못난 부분을 들춰내서 하는 개그가 그나마 먹히는 것이다.

한 때는 음담패설을 해서 웃겨주기도 했다만, 이제는 나이가 먹을만큼 먹은 지라, 총각들이 너무 수줍어 하기만 해서 재미가 없으니, 끊었다.

이런 짓들로 인해 실없는 사람이 되거나 만만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데, 그건 좋다. 그러나 이런 짓들을 그만두라고 종용하면서, 어린 직원들의 군기를 해이하게 만든다고 충고를 받을 때는 좀 기분이 상한다.

세상에, 농담을 하지 않고 일만 할거면 회사를 무슨 수로 매일 다니라는거냐!

이런 식으로 실상 제대로 된 농담도 못하면서 은근 우쭐했던 나는, 보네거트의 이 책을 읽고 급좌절 하고 만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작가의 풍자와 은유가 통쾌하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이룰 수 없는 급이라는 걸 새삼 알아버린 거다.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고, 나무와 숲을 모두 볼 수 있고, 가장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갈해야 할 때, 농담과 풍자로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드는 이런 내공은, 자못 위대하다. 그러나 어쩌리오. 마크 트웨인처럼 그 역시 노년에 이것을 포기해버리고 흐르는대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더 이상 힘이 나지 않는다는 것 같다. 우리는 이제 또 누구에게 위안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가.보네거트는 죽었다. 미국은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 수백만의 보네거트가 더 나와야 한다. 그래서 그 정신병자들을 열심히 채찍질 해야 된다. 그리고 제발, 책을 읽자, 누구든 책을 읽어보면 누가 정신병자인지나마 알 수 있을텐데. 잠깐이나마, 이건 정말 아닌데 하면서 무서운 생각이 들텐데.

우리도 만만치 않다. 이명박씨, 요즘 어떤 책을 읽고 계시는지, 꼭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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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6 1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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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6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07-0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리 과장님의 걸죽한 음담패설 덕에 왠만한 수위의 농담은 다 알아들어요. 가끔은 혼자 알아들어서 막 민망하구 ㅋㅋ 개그지영,이라니 ㅎㅎ 매우 궁금합니다

치니 2008-07-06 17:42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도 예전에 페이퍼에 다른 사람들을 웃겨주는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적으셨던 거 같은 기억이 있는데...
^-^ 다혈질로 오인 받으시기도 하고, 아무튼 웬디양님의 존재로 회사에서 일할 맛 나시는 분들 많을거 같아요.

chaire 2008-07-0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의외예요. 걸쭉하고 자기파괴적인 개그를 즐기시는 줄은 정말이지 예상 못했거든요.
그런데 짐 캐리 닮았다는 데서, 아하 살짝 그런 부분이 가능하겠네 싶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유머와 재치를 갖는다면, 그건 진짜 신의 선물이라 생각해요. 그런 건 쉽사리 학습이 안 되는 거잖아요.

치니 2008-07-08 10:03   좋아요 0 | URL
다들 의외라고 하시니, 제가 글에서 얼마나 무뚝뚝하고 재미 없었나 싶네요. 흑.
짐 캐리 이외에도, 예전에는 맷 딜런이나 조니 뎁 닮았다는 소리도 들었다눈...ㅋㅋ
(남상인가봐요!)
자연스럽게 나오는 유머는, 역시 마음이 여유로와야 하는데 헐, 요즘은 그렇지 못한거 같아요.

기억의집 2008-07-08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책을 읽으면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금방 알 수 있는데.. 사실 저의 엄마도 이명박교주의 열성신자인데요. 가만히 친정엄마 이야기 들으면, 뭐뭐 카더라식의 이야기밖에 하지 못하세요. 아무리 저와 언니와 남동생이 친정엄마한테 근거 있는 바른 소리를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으세요. 어디서 떠돌아 다니는 명박이 옹호 이야기만 접수하시지... 하물며 다음 메인에 뜬 기사만 읽어도 이교주의 정체를 알 수 있을 텐데..커트보네커트같은 나이 든 진보적인 노친네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치니 2008-07-08 10:05   좋아요 0 | URL
음, 아마 저희 부모님도 열성은 아니지만 이명박 찍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피곤해서 아예 부모님과 그런 대화를 나누지 않는데, 기억의집 님은 그래도 열심히 설득하시는군요.
아마 저같이 쉬이 포기하는 사람도, 이런 사태에 일조한게 아닐까 싶은 자책이 드네요.

2008-07-08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09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8-07-10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의 자학 개그라니! 떠오르지 않아요. 그럴 리가 없어. (아니 내가 왜 망연자실?) 사실은 고급 유머의 달인이면서!!

저도 이 책 좋아해요. 지금 서재 들어왔는데 저 표지가 있어서 그만 어맛, 그러고 말았어요. "나는 과학기술을 생략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왜곡하는 소설은 섹스를 생략함으로써 빅토리아 시대의 삶을 왜곡하는 소설만큼이나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 어딘가 개운해요.
:)

치니 2008-07-11 08:59   좋아요 0 | URL
우히히, 아무튼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시절이 길었는지라...뭐든 했답니당.

이 책 좋아하는 알라디너가 은근 많아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알라디너분의 리뷰를 보고 확 꽂혀서 샀구요. 그런데 읽어보니, 과연! 좋아할 수 밖에 없더군요. ^-^
SF 소설가라는 명칭을 붙여준 것에 대해 한 말이죠? 네꼬님이 쓴 말. 무엇이든 규정 짓기 좋아하는 , 그것도 왜곡되게... 그런 사람들에게의 일침, 개운하고 멋져요. :)

2008-07-11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1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1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1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