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스스로에게 행복한지 묻는 순간부터 행복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 있다. 행복이라는 것은 느끼는 것(혹은 느끼는 줄도 모르는 것)일진데 그것을 정의하고 소유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행복도 행복인 줄 모르게 된다는 말이 아닐까. 서구 문명이 자리를 잡으면서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든 수량화 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의 능력도 연봉으로 따지고 건강한지는 수명으로 따진다. 책을 읽을 때에도 몇 권을 읽었는지를 세고 친구가 몇 명인지로 인맥을 따진다.

 생각해보면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선뜻 말로 대답할 수는 없어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것. 어린 시절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노래나 남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수줍어하며 추던 포크댄스를 생각할 때처럼 숫자로 자랑할 수는 없지만 혼자서라도 순간 훈훈해지는 그런 것 말이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우기의 방글라데시의 모습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비가 많이 오고 있었고, 집이라고 있는 것은 대나무 비슷한 나뭇가지로 대충(?) 지어놓은 것이라 풀 사이로 빗물이 줄줄 새고 있다. 길거리에는 흙탕물에 젖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활짝 웃는 얼굴이다. 그것은 오지에 가야 볼 수 있는 순박한 웃음이었다. 홍수와 기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도 TV에서는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가 1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내 눈으로 정말 행복하게 웃는 그들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에 그 충격은 정말 컸다. 그 후로 나는 방글라데시를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행복한 나라로 기억하게 되었다. 동시에 가난한 것이 불행하다는 의미가 아님을 배웠다.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를 보면 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의사를 찾아온 내용이 있다. 암 전문의는 환자가 말기 암이라고 오진했었다고 고백한다. 당신은 건강해요, 축하합니다. 라고 말하는 의사 앞에서 환자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그는 살 날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절망했지만 곧 행복해졌다고 했다. 불행했던 결혼 생활이었지만 곧 그가 죽는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도 다들 잘해주기 시작했고,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는 남은 생을 정리하기 위해서 직장도 그만두었고 집도 팔아버렸다. 하지만 지금 의사가 그에게 ‘당신은 암이 아니에요’라고 말했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도, 재산도 정리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에게 남은 것은 건강뿐이라고 하면서 오진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행복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의사를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 살면서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후가 가장 행복했다고 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행복의 지도>는 직업이 기자인 한 미국인이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여행한 책이다. 그는 기자로 일하면서 매일 사람들에게 불행한 뉴스를 전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에는 행복한 나라의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고 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과 같아서 행복한 나라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저자가 여행한 나라들을 보면 돈, 복지, 행복지수, 건강 등 많은 행복의 요소를 떠올릴 수 있다.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나라는 ‘부탄’이라는 곳이다. 부탄이라고 하면 부탄가스밖에 몰랐던 나. 얼마 전 모 포털사이트에서 부탄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에도 그저 신기한 나라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방글라데시에 대한 TV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나는 외국인일 뿐이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처럼 부탄이 무슨 파라다이스가 되어주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꼭 부탄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가져본다. (그때까지 부디 변치 말길, 부탄...)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사진이 없어서 약간 섭섭한 책이긴 하다. 처음에는 ‘행복’이라는 주제가 너무 가벼운 것이 아닌가... 했었지만 책을 읽다보니 점점 이만큼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기자답게 피상적일 수 있는 행복이란 주제에 대해 여러 시각으로 날카롭게 집어내기도 하고 어떤 것도 교과서적인 행복은 될 수 없다며 다양한 행복의 조건(?)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의 유머감각 덕분에 많이 웃기도 하고 각 행복한 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 가치관을 읽으면서 내 생활도 돌아보게 된다. 느낌표를 붙일 만 한 나라(미국) 출신인 그가 행복한 나라를 찾아 떠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미국인으로서 외국의 모습을 어떻게 그렸을지 읽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행복지도 안의 나라들’과 한국이 비교되는 몇 가지 부분에서는 안타깝다고 할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 다운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행복이란 내 분수에 맞게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도 있고 자족하며 사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도 안다. 알고는 있지만 행하기 어려운 것.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이 무슨 트로피라도 되는 양 소유하려고 하는가보다. 한국에도 이왕이면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그 행복이라는 것이 지금과 같은 척도로 매겨진 것이 아니길, 지금의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나의 삶에 만족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 해피투게더 라는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나와서 알고 있는 시를 한 편씩 암송하는 장면이 나왔다. 알맞은 음색과 발음으로 읊조리는 시는 그들이 방송을 위해 급히 외운 것일지라도 참 예쁘게 들렸다. ‘가을 하늘이 참 예쁘다’고 전한 친구의 말에도 크게 느낄 수 없었던 계절이 시 낭송을 들으니 나도 이번 가을에는 시 한 편 외워둘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날 나는 아주 어릴 때 외웠던 ‘산유화’를 기억해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 일부러라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자고 다짐한 게 기억이 난다. 너무 바쁜 일상에 남과 다른 생활 리듬 때문에 힘들어서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는 채 지냈던 날이 있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렇게 사나 싶어 갑작스럽게 우울해졌었다.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며 몇 달 만에 처음 읽은 책이 오히려 그런 감정을 복받치게 해서 어쩔 줄 몰랐던 때. 잘 울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버스 안에서 훌쩍훌쩍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너무 젊고 어렸기 때문에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지금은 우스운 일이지만 그 때 그 고민은 물리칠 수도 없지만 동시에 쉽게 받아들이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하늘을 보면서 살자’고 다짐했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온전히 느끼면서 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좁은 집에 화분을 사 들여 놓는다고 핀잔하던 내가 새싹이 돋는 것에 감동하며 매일 베란다의 화분을 들여다보고 산책에 나가면 길가의 풀과 물고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누구나 가을을 앓는다. 앓는 것이 있으면 달래는 것도 있을 텐데 영혼을 앓고 있을 때 나를 달래주던 것은 무엇이었나.


 오랜만에 바라본 창밖 풍경이 노란색 천지라서 놀랐다. 달력에 11이라는 숫자가 눈에 띄었던 것도 11월이 한참 지났을 때였다. 계절을 온전히 느끼기로 하고나서 가을이 되면 길마다 세워진 은행나무 잎의 노란색 때문에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노란색 눈을 뒤집어 쓴 듯이 반짝이는 노란 빛의 은행나무가 정말 좋다. 이맘때면 노란색이 좋다는 나에게 울 엄마는 ‘노란색이 좋아지면 애정결핍이래.’라며 놀리곤 하신다. 엄마 말씀 대로라고 해도 반짝이는 노란색을 볼 때마다 어린아이가 되어 행복해하는 동안에는 그 결핍도 아무것이 아니게 되니까 또 좋다.

 시는 어려워서 잘 읽지 않게 된다. 좋아하는 시를 대라고 하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백석의 시를 조금 좋아합니다.’라고 수줍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백석의 시가 전문적으로 어떻게 해석이 되든지 내 마음대로 그의 시를 느끼고 아이처럼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나귀’를 떠올리면 샤갈의 그림과 백석의 시가 동시에 떠올라서 파랑새 동화책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행복해진다.


 읽기 쉬운 시가 좋아서 이 책을 골랐다. 앞의 몇 장을 읽었을 때 난해하게 단어를 띄어 놓은 시가 아니라 줄줄 늘어놓은 일기 같은 시라서 읽기 편할 거라 생각했다. 시인의 마음을 공감하고 싶었다. 은행잎의 노란 색과 샤갈의 그림 같은 시를 원했지만 허연의 시는 너무 어두웠다. 그는 10년 만에 시를 썼다고 한다. ‘소년’이었을 스스로를 ‘나쁜 소년’이라 표현하는가하면 다른 시에서도 유독 그는 혼자 있다. 10년 동안 그는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그가 ‘혼자라도 나는 행복해’라고 말했더라면 안심했을 텐데 ‘나는 혼자였고 앞으로도 굳이 여럿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타인과 세상에 눈과 귀를 막아버린 듯해서 가슴이 아팠다.


 시 <서걱거리다>에서도 그는 지하철의 사람들과 함께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규정하는 입장이다. ‘세상은 시보다 허술하다,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하는 그가 가여웠다. 세상에 대해 미리 짐작하면 고립되는 일 뿐이다. 어린아이가 늘 행복한 것은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세상의 좋은 점을 먼저 본다. 무엇이든 어둡다고 단정 짓는 순간 외롭고 괴롭다.


 그가 세상 혹은 스스로의 어두움(?)을 해소하고 있는 중인지 아직 확신이 없다. 시인이라고 혼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글만 쓴다면 그것은 시가 아니라 뱉어낸 독백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피 빛깔있는책들 - 즐거운 생활 269
조윤정 지음, 김정열 사진 / 대원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피를 마시면 평상시와 다르게 활동적이고 즐겁고 무엇보다 각성되어 있는 상태가 된다. 알코올이 늘 감상적인 슬픔을 촉진하는 데 비해 한 모금의 카페인은 눈물의 분비를 억제한다. 커피의 궁극적인 효능이 각성하게 하는 것이라면 알코올의 궁극적인 효능은 그와는 반대로 잠들게 하는 것이다. 술을 들이키며 이별의 아픔에 눈물을 떨군다면 커피는 아픔을 잊는 힘과, 견디는 인내를 통해 새로운 만남을 꿈꾸게 한다. -9쪽

  

 커피의 계절이 돌어왔다.
지난 여름 불 위에 얹어야 하는 모카포트도, 물을 끓여야 하는 드립커피도 빠이빠이 하고 내내 인스턴트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잠 때문에 커피를 멀리하는 아빠를 쏙 빼고 엄마와 동생, 나 이렇게 세 명이 하루에 한잔 이상 꼭 마셨기 때문에 큰 봉투에 있는 커피믹스를 여름내내 두 봉지나 비웠다. 너무 더운 날에는 봉지를 뜯어서 물에 휙휙 타서 마시는 것도 귀찮을때가 있다. 그래도 커피 당번은 늘 나였다. 커피는 남이 타주는게 맛있는데 나는 언제쯤 맛난 커피를 마셔보려나 : D

 

 모카포트로 끓이는 커피는 온전히 내 몫이다. 포트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집에서 나 혼자여서 포트에 물을 담고 커피를 갈아 넣고 다지고 뚜껑을 덮어서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둔 후에 커피가 올라올 때까지 지켜서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불을 조절하는 것도 익숙한 내가 해야할 일이다. 집에서 커피담당이 된 것도 몇해가 지났지만 다른건 몰라도 커피를 타서 돌리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잘 볶아지고 숙성된 원두를 뜯으면 고소하게 올라오는 냄새도 가지각색이고 드르륵 갈아낼 때마다 굵기, 배전정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다. 모카포트도 매번 맛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만들때마다 나름대로 집중하게 되고 잔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드립을 할 때에는 '커피빵'이 봉긋 부푸는 것을 보면 겨울에 호빵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고 든든하기 짝이 없다.

 

 집에 손님이 오면 내가 만든 카페라떼나 카페모카를 내 놓기도 하고, 그러면 예정에 없던 칭찬도 듣고, 카페에 가지 않으면 마시기 어려울 종류의 커피를 내 놓으면 마시는 분들도 좋아라 하신다. 특히 우리 엄마 친구분들이 오시면 엄마는 자랑삼아 커피를 주문하고 나는 부끄러워하며 커피를 내 놓는다. 가끔 외출을 하실 때에는 아예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달라고 하시곤 커피를 들고 친구분들과 나눠 드시고 오시기도 한다. 그래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 사치라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래도 가끔은 나도 밖에서 남이 만들어 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면 저렴한 원두 한 봉지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매일매일 한 잔씩 마셔도 밖에서 어쩌다 한번 마시는 것과 비슷하니까 아까워서 밖에서는 커피 대신 다른 것을 먹게 된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 답게 요즘에는 커피를 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작년엔 인기 혼수품이라고 기사에도 나올 정도니까 이제는 이런 모습이 점점 보편화 되고 있나보다.

 

 오래 전 이탈리아에 갔을 때만해도 커피를 마실 줄 몰랐었다. 그래서 한 카페에 들어가서 메뉴판을 보았지만 아는 커피라고는 '에스프레소' 밖에 없어서 주문했다가 설탕을 아무리 넣어도 먹을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 때 좀 더 다양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올걸 후회가 될 때도 있다 : D

 

 김영사에서 나온 '잘먹고 잘사는 법' 시리즈 중에 [홍차]책이 있는데 그 책은 홍차에 대한 지식위주로 쓰여 있었다. 이 책은 대원사에서 나온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의 하나인데 카페 커피스트 주인인 조윤정님이 지은 책이다. 처음에 책을 펼쳤을 때 에세이 같아서 놀랐다. 단순히 커피에 대한 설명과 커피를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 나와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에 커피에 관한 에세이를 발췌해서 담아둔 것과 조윤정님이 직접 감상해서 쓴 문장들이 '커피'라는 제목과 꼭 어울렸다. 레시피라는 것도 결국엔 자기만의 그것을 만들게 되어있는 것이고, 커피에 대한 지식도 인터넷에서 찾으면 얼마든지 있는 것이라서 지식 외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 날 때마다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의 기원, 종류와 산지별 맛과 향 등 특징, 로스팅하는 방법, 도구의 종류와 다루는 방법, 몇가지의 레시피가 상세하게 실려있다. 커피를 즐기는 방법을 찾고 있는 초보자에게 입문서로도 딱 맞는 책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안의 특별한 악마 - PASSION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양윤옥 옮김 / 아우름(Aurum)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좀처럼 소설을 잡고 읽을 시간이 없어서 이왕이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한 권 골라볼까 하고 뒤져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가볍게 읽을 책으로 일본소설 만한게 없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을 보고 자기계발서 종류의 소설이 아닐까 짐작했다.Passion이 여러 뜻이 있지만 '열정'이라고 먼저 읽혔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이 평소에는 몰랐던 본인만의 열정을 발견하는 내용일까, 하고 예상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미리보기로 앞 부분을 읽어보았는데 전혀 다른 전개인것 같았다. '아이, 싫어, 이러지 마, 고가 씨' 로 시작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에도 계속 므흣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 뭐하는거지? 하는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 프란체스코는 수녀원에서 자랐고, 수녀 처럼 정절을 지키며 살아왔다. 성생활을 제외하고도 그녀의 생활은 검소하고 절제되어있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악마. '고가'라는 이름의 불청객은 불경스럽게도 프란체스코의 성기 안에 붙어서 살게 된다. 그는 바로 인면창(종기 같은 것)인데 입만 열면 못된 욕을 하고 프란체스코를 저질녀로 만들기도 하며 그녀가 조신하게 살아온 것은 '여자로서의 가치가 없어서'라고 몰아부친다. 순결한 삶이 전부였던 그녀와 불경스러운 고가 씨의 만남. 그리고 그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야하디 얄라숑스러운 일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저속한 내용의 책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많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엇, 야한데' 싶으면서도 킥킥거리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고가 씨'의 등장과 번역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고가 씨의 입담은 저속하고 듣는 이를 낯뜨겁게 하지만 꽤나 웃기다. 그리고 양윤옥 씨의 번역 후기에서도 나와있지만, 역자는 자칫 19금의 책이 되어버릴 수도 있을 여러 낱말들을 '자기검열'을 거쳐서 순화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조개'라는 표현이다. 순결하고 맑고 순진한 주인공 프란체스코의 모습과 걸걸한 고가 씨의 말 가운데서 등장하는 몇몇 순화 된 단어들을 읽으면서 분홍을 '핑크'라고 했을 때의 기분을 느꼈다. <스무살 도쿄-오쿠다 히데오>, <도쿄타워-릴리 프랭키> 등을 읽으면서 느꼈던 말랑말랑하고 포근한 느낌의 번역을 이 책에서도 살짝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양윤옥 씨의 공이 크다고 생각했다. '역시 양윤옥 씨네'라고 생각했으니까.

 

 후반부 까지도 소소한 재미와 웃음을 선사하는 이 책은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핑크무비'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핑크무비'가 그래봐야 뽀르노다, 아니다, 하는 논란은 있지만 '핑크무비'가 소개될 때 '여자들만 볼수 있어!'라거나 '여자가 즐기는 에로물'이라고 하는 것 처럼 이 책 또한 여자들이 재미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코드의 책이 될것 같다. 결말에서는 'Happily ever after'라고 끝나는 여느 동화책 같아서 조금 실망했지만 의도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책의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성'에 대한 가치관이랄까 그런 것이 어느 면에서는 너무 치우쳐서 묘사하거나 설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쓴 것일까'라는 의문을 여러번 품기도 했다. 이를테면 설문조사원이 프란체스코에게 성희롱(소설 안에서는 여자가 피해자인 사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성희롱 사례에서 가해자 쪽인 사람들에게) 한마디씩만 해주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에게도 틀림없이 아름다운 짝이 나타날 거예요> 라구요." 라고 대답하는 장면 등등. 프란체스코가 하는 말은 너무나 이론적이기만 할 뿐 수많은 예외적 상황 앞에서는 성호를 그으며 아멘- 할 수 밖에 없을 대사였기 때문이다. 모순 덩어리인 여자랄까??

 

혹시 이 책을 읽는다면 '페미니즘' 혹은 '마초이즘'에 초점을 맞추어 읽지는 말기를. 그냥 '가볍게' 읽으면 될 일이라고 본다. (프란체스코 + 고가 씨 = 여 + 남 이라고 생각하면 두 주인공의 극단적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너-무 극단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에로'라든지 '야한 것'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소설을 이토록 가볍지만 비중(?)있게 그려낼 수 있고, 관객이나 독자의 호기심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일본 문화의 범위(혹은 차이?)랄까, 사회적 분위기랄까, 그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골드미스, 골드맘, 슈퍼맘 등등 잘나가는 여성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늘어나고 있다. 여성들이 여전히 사회에서 혹은 가정에서 만족할 만큼의 인정을 받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과거에 비해서 여권이 신장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 '골드'나 '슈퍼'와는 관계 없는 평범한 나같은 사람은 뭔가 뒤쳐진다는 생각까지 드는 요즘이다ㅠㅠ


 가끔 TV에서 옛날 드라마를 한 장면씩 보여줄 때가 있다. 드라마가 현실을 100%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트렌드는 충분히 반영을 한다고 생각된다. 불과 10년 전의 드라마만 해도 가부장적인 내용의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여자 입장에서 보면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 아직 많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옛날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니까.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비교적 엄격하게 지켜졌던 옛날과는 달리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해 여자가 먼저 그 금기를 깨고, 요즘은 남자들 또한 남자다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듯하다.


 외모를 보는 시선도 그러하다. 예전에는 남자다운 성격에 우락부락 근육질을 가진 사람이 미남이었다면 요즘은 예쁜 남자가 대세다. 드라마에 나오는 예쁜 남자는 요리도 잘하고 이벤트도 잘 해주고 젊은 나이에 돈도 잘 번다;; 여자들이 슈퍼우먼이 되어 살림에 애도 봐야하고 돈도 벌어야하고 집안 대소사도 챙겨야 한다면 남자들도 그만큼 역할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남자에겐 ‘아내’가 있지만 여자에겐 ‘아내’가 없다는 게 다르겠지만ㅋ)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비슷비슷한가보다. 여기 <오, 나의 마나님>에 나오는 남편이 어찌나 야무지게(?) 살림에 대해 잘 알고 이것저것 하는 것도 많은지 ‘아, 부인이 돈 벌어오고 남편은 살림을 하는 집인가보다’ 했다. 아내는 쿨!한 슈퍼맘이다. ‘아내의 연봉이 자기보다 더 늘었고 아내는 여전히 예쁘고 뭘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고 지혜롭고, 남편인 나는 뱃살이 겹치고 벽에 못도 하나 못 박을 뿐’인 이 남자의 마나님 모시기. 


 책을 읽다보면 주부가 해야 할 푸념이 많아서 '이게 여자가 쓴 거였나'하고 헷갈릴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남자’로서 토로하는 푸념이 나오면 그제야 '아 남자가 쓴거지’하고 웃음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남자와 여자의 권력이나 페미니즘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 말한 시대적흐름(?)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일 뿐이다. 때론 비굴하게, 때론 시니컬하게, 솔직하게 쓰여진 재미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