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스스로에게 행복한지 묻는 순간부터 행복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 있다. 행복이라는 것은 느끼는 것(혹은 느끼는 줄도 모르는 것)일진데 그것을 정의하고 소유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행복도 행복인 줄 모르게 된다는 말이 아닐까. 서구 문명이 자리를 잡으면서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든 수량화 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의 능력도 연봉으로 따지고 건강한지는 수명으로 따진다. 책을 읽을 때에도 몇 권을 읽었는지를 세고 친구가 몇 명인지로 인맥을 따진다.

 생각해보면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선뜻 말로 대답할 수는 없어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것. 어린 시절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노래나 남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수줍어하며 추던 포크댄스를 생각할 때처럼 숫자로 자랑할 수는 없지만 혼자서라도 순간 훈훈해지는 그런 것 말이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우기의 방글라데시의 모습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비가 많이 오고 있었고, 집이라고 있는 것은 대나무 비슷한 나뭇가지로 대충(?) 지어놓은 것이라 풀 사이로 빗물이 줄줄 새고 있다. 길거리에는 흙탕물에 젖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활짝 웃는 얼굴이다. 그것은 오지에 가야 볼 수 있는 순박한 웃음이었다. 홍수와 기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도 TV에서는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가 1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내 눈으로 정말 행복하게 웃는 그들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에 그 충격은 정말 컸다. 그 후로 나는 방글라데시를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행복한 나라로 기억하게 되었다. 동시에 가난한 것이 불행하다는 의미가 아님을 배웠다.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를 보면 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의사를 찾아온 내용이 있다. 암 전문의는 환자가 말기 암이라고 오진했었다고 고백한다. 당신은 건강해요, 축하합니다. 라고 말하는 의사 앞에서 환자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그는 살 날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절망했지만 곧 행복해졌다고 했다. 불행했던 결혼 생활이었지만 곧 그가 죽는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도 다들 잘해주기 시작했고,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는 남은 생을 정리하기 위해서 직장도 그만두었고 집도 팔아버렸다. 하지만 지금 의사가 그에게 ‘당신은 암이 아니에요’라고 말했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도, 재산도 정리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에게 남은 것은 건강뿐이라고 하면서 오진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행복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의사를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 살면서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후가 가장 행복했다고 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행복의 지도>는 직업이 기자인 한 미국인이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여행한 책이다. 그는 기자로 일하면서 매일 사람들에게 불행한 뉴스를 전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에는 행복한 나라의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고 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과 같아서 행복한 나라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저자가 여행한 나라들을 보면 돈, 복지, 행복지수, 건강 등 많은 행복의 요소를 떠올릴 수 있다.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나라는 ‘부탄’이라는 곳이다. 부탄이라고 하면 부탄가스밖에 몰랐던 나. 얼마 전 모 포털사이트에서 부탄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에도 그저 신기한 나라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방글라데시에 대한 TV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나는 외국인일 뿐이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처럼 부탄이 무슨 파라다이스가 되어주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꼭 부탄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가져본다. (그때까지 부디 변치 말길, 부탄...)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사진이 없어서 약간 섭섭한 책이긴 하다. 처음에는 ‘행복’이라는 주제가 너무 가벼운 것이 아닌가... 했었지만 책을 읽다보니 점점 이만큼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기자답게 피상적일 수 있는 행복이란 주제에 대해 여러 시각으로 날카롭게 집어내기도 하고 어떤 것도 교과서적인 행복은 될 수 없다며 다양한 행복의 조건(?)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의 유머감각 덕분에 많이 웃기도 하고 각 행복한 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 가치관을 읽으면서 내 생활도 돌아보게 된다. 느낌표를 붙일 만 한 나라(미국) 출신인 그가 행복한 나라를 찾아 떠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미국인으로서 외국의 모습을 어떻게 그렸을지 읽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행복지도 안의 나라들’과 한국이 비교되는 몇 가지 부분에서는 안타깝다고 할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 다운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행복이란 내 분수에 맞게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도 있고 자족하며 사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도 안다. 알고는 있지만 행하기 어려운 것.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이 무슨 트로피라도 되는 양 소유하려고 하는가보다. 한국에도 이왕이면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그 행복이라는 것이 지금과 같은 척도로 매겨진 것이 아니길, 지금의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나의 삶에 만족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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