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특별한 악마 - PASSION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양윤옥 옮김 / 아우름(Aurum)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좀처럼 소설을 잡고 읽을 시간이 없어서 이왕이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한 권 골라볼까 하고 뒤져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가볍게 읽을 책으로 일본소설 만한게 없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을 보고 자기계발서 종류의 소설이 아닐까 짐작했다.Passion이 여러 뜻이 있지만 '열정'이라고 먼저 읽혔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이 평소에는 몰랐던 본인만의 열정을 발견하는 내용일까, 하고 예상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미리보기로 앞 부분을 읽어보았는데 전혀 다른 전개인것 같았다. '아이, 싫어, 이러지 마, 고가 씨' 로 시작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에도 계속 므흣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 뭐하는거지? 하는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 프란체스코는 수녀원에서 자랐고, 수녀 처럼 정절을 지키며 살아왔다. 성생활을 제외하고도 그녀의 생활은 검소하고 절제되어있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악마. '고가'라는 이름의 불청객은 불경스럽게도 프란체스코의 성기 안에 붙어서 살게 된다. 그는 바로 인면창(종기 같은 것)인데 입만 열면 못된 욕을 하고 프란체스코를 저질녀로 만들기도 하며 그녀가 조신하게 살아온 것은 '여자로서의 가치가 없어서'라고 몰아부친다. 순결한 삶이 전부였던 그녀와 불경스러운 고가 씨의 만남. 그리고 그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야하디 얄라숑스러운 일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저속한 내용의 책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많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엇, 야한데' 싶으면서도 킥킥거리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고가 씨'의 등장과 번역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고가 씨의 입담은 저속하고 듣는 이를 낯뜨겁게 하지만 꽤나 웃기다. 그리고 양윤옥 씨의 번역 후기에서도 나와있지만, 역자는 자칫 19금의 책이 되어버릴 수도 있을 여러 낱말들을 '자기검열'을 거쳐서 순화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조개'라는 표현이다. 순결하고 맑고 순진한 주인공 프란체스코의 모습과 걸걸한 고가 씨의 말 가운데서 등장하는 몇몇 순화 된 단어들을 읽으면서 분홍을 '핑크'라고 했을 때의 기분을 느꼈다. <스무살 도쿄-오쿠다 히데오>, <도쿄타워-릴리 프랭키> 등을 읽으면서 느꼈던 말랑말랑하고 포근한 느낌의 번역을 이 책에서도 살짝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양윤옥 씨의 공이 크다고 생각했다. '역시 양윤옥 씨네'라고 생각했으니까.

 

 후반부 까지도 소소한 재미와 웃음을 선사하는 이 책은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핑크무비'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핑크무비'가 그래봐야 뽀르노다, 아니다, 하는 논란은 있지만 '핑크무비'가 소개될 때 '여자들만 볼수 있어!'라거나 '여자가 즐기는 에로물'이라고 하는 것 처럼 이 책 또한 여자들이 재미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코드의 책이 될것 같다. 결말에서는 'Happily ever after'라고 끝나는 여느 동화책 같아서 조금 실망했지만 의도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책의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성'에 대한 가치관이랄까 그런 것이 어느 면에서는 너무 치우쳐서 묘사하거나 설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쓴 것일까'라는 의문을 여러번 품기도 했다. 이를테면 설문조사원이 프란체스코에게 성희롱(소설 안에서는 여자가 피해자인 사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성희롱 사례에서 가해자 쪽인 사람들에게) 한마디씩만 해주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에게도 틀림없이 아름다운 짝이 나타날 거예요> 라구요." 라고 대답하는 장면 등등. 프란체스코가 하는 말은 너무나 이론적이기만 할 뿐 수많은 예외적 상황 앞에서는 성호를 그으며 아멘- 할 수 밖에 없을 대사였기 때문이다. 모순 덩어리인 여자랄까??

 

혹시 이 책을 읽는다면 '페미니즘' 혹은 '마초이즘'에 초점을 맞추어 읽지는 말기를. 그냥 '가볍게' 읽으면 될 일이라고 본다. (프란체스코 + 고가 씨 = 여 + 남 이라고 생각하면 두 주인공의 극단적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너-무 극단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에로'라든지 '야한 것'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소설을 이토록 가볍지만 비중(?)있게 그려낼 수 있고, 관객이나 독자의 호기심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일본 문화의 범위(혹은 차이?)랄까, 사회적 분위기랄까, 그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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