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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ㅣ 빛깔있는책들 - 즐거운 생활 269
조윤정 지음, 김정열 사진 / 대원사 / 2007년 12월
평점 :
커피를 마시면 평상시와 다르게 활동적이고 즐겁고 무엇보다 각성되어 있는 상태가 된다. 알코올이 늘 감상적인 슬픔을 촉진하는 데 비해 한 모금의 카페인은 눈물의 분비를 억제한다. 커피의 궁극적인 효능이 각성하게 하는 것이라면 알코올의 궁극적인 효능은 그와는 반대로 잠들게 하는 것이다. 술을 들이키며 이별의 아픔에 눈물을 떨군다면 커피는 아픔을 잊는 힘과, 견디는 인내를 통해 새로운 만남을 꿈꾸게 한다. -9쪽
커피의 계절이 돌어왔다.
지난 여름 불 위에 얹어야 하는 모카포트도, 물을 끓여야 하는 드립커피도 빠이빠이 하고 내내 인스턴트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잠 때문에 커피를 멀리하는 아빠를 쏙 빼고 엄마와 동생, 나 이렇게 세 명이 하루에 한잔 이상 꼭 마셨기 때문에 큰 봉투에 있는 커피믹스를 여름내내 두 봉지나 비웠다. 너무 더운 날에는 봉지를 뜯어서 물에 휙휙 타서 마시는 것도 귀찮을때가 있다. 그래도 커피 당번은 늘 나였다. 커피는 남이 타주는게 맛있는데 나는 언제쯤 맛난 커피를 마셔보려나 : D
모카포트로 끓이는 커피는 온전히 내 몫이다. 포트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집에서 나 혼자여서 포트에 물을 담고 커피를 갈아 넣고 다지고 뚜껑을 덮어서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둔 후에 커피가 올라올 때까지 지켜서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불을 조절하는 것도 익숙한 내가 해야할 일이다. 집에서 커피담당이 된 것도 몇해가 지났지만 다른건 몰라도 커피를 타서 돌리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잘 볶아지고 숙성된 원두를 뜯으면 고소하게 올라오는 냄새도 가지각색이고 드르륵 갈아낼 때마다 굵기, 배전정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다. 모카포트도 매번 맛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만들때마다 나름대로 집중하게 되고 잔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드립을 할 때에는 '커피빵'이 봉긋 부푸는 것을 보면 겨울에 호빵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고 든든하기 짝이 없다.
집에 손님이 오면 내가 만든 카페라떼나 카페모카를 내 놓기도 하고, 그러면 예정에 없던 칭찬도 듣고, 카페에 가지 않으면 마시기 어려울 종류의 커피를 내 놓으면 마시는 분들도 좋아라 하신다. 특히 우리 엄마 친구분들이 오시면 엄마는 자랑삼아 커피를 주문하고 나는 부끄러워하며 커피를 내 놓는다. 가끔 외출을 하실 때에는 아예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달라고 하시곤 커피를 들고 친구분들과 나눠 드시고 오시기도 한다. 그래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 사치라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래도 가끔은 나도 밖에서 남이 만들어 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면 저렴한 원두 한 봉지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매일매일 한 잔씩 마셔도 밖에서 어쩌다 한번 마시는 것과 비슷하니까 아까워서 밖에서는 커피 대신 다른 것을 먹게 된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 답게 요즘에는 커피를 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작년엔 인기 혼수품이라고 기사에도 나올 정도니까 이제는 이런 모습이 점점 보편화 되고 있나보다.
오래 전 이탈리아에 갔을 때만해도 커피를 마실 줄 몰랐었다. 그래서 한 카페에 들어가서 메뉴판을 보았지만 아는 커피라고는 '에스프레소' 밖에 없어서 주문했다가 설탕을 아무리 넣어도 먹을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 때 좀 더 다양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올걸 후회가 될 때도 있다 : D
김영사에서 나온 '잘먹고 잘사는 법' 시리즈 중에 [홍차]책이 있는데 그 책은 홍차에 대한 지식위주로 쓰여 있었다. 이 책은 대원사에서 나온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의 하나인데 카페 커피스트 주인인 조윤정님이 지은 책이다. 처음에 책을 펼쳤을 때 에세이 같아서 놀랐다. 단순히 커피에 대한 설명과 커피를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 나와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에 커피에 관한 에세이를 발췌해서 담아둔 것과 조윤정님이 직접 감상해서 쓴 문장들이 '커피'라는 제목과 꼭 어울렸다. 레시피라는 것도 결국엔 자기만의 그것을 만들게 되어있는 것이고, 커피에 대한 지식도 인터넷에서 찾으면 얼마든지 있는 것이라서 지식 외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 날 때마다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의 기원, 종류와 산지별 맛과 향 등 특징, 로스팅하는 방법, 도구의 종류와 다루는 방법, 몇가지의 레시피가 상세하게 실려있다. 커피를 즐기는 방법을 찾고 있는 초보자에게 입문서로도 딱 맞는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