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놀랐다. 읽는 내내 놀랍고 궁금하고 기가 막혔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사신치바> <오듀본의 기도> <사막> <마왕> 등의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최신번역작이다. 법학부를 졸업한 이사카는 이번 작품에서 세 명의 중심인물 사이에 깍두기 처럼 끼어서 관찰자가 되는 '시나'로 둔갑했던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아마 이사카 스스로도 '시나'가 되어 극중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글을 쓰는 쪽이 훨씬 신나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

 

 300페이지를 넘어가는 책을 고를 때는 재미를 우선으로 꼽는 나는 사실 이번에 좀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신치바>로 맨 처음 만난 이사카의 소설은 음식으로 치면 양념이 특이해서 흥미로웠지만 계속 먹고나면 양념맛 밖에 기억나지 않는달까. 하루키와 시게사토씨의 <소울 메이트(꿈에서 만나요)>에 나오는 단편 내용을 빌려오자면 '화려한 카펫에 가려진 다다미' 또는 '돈가스에 가려진 밥'의 느낌. 그래서 이번에도 양념만 잔뜩 뿌려 나온게 아닐까 의심했다. 게다가 400페이지가 넘는 두께. 일단 피하고 볼 일이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디자인이 눈에 띄는 책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신간 광고 페이지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는데 금새 반해버렸다. 이사카 코타로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일단 재미가 있다. 전반적으로 '2년전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로 나뉘어 두 시점이 서로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형식인데 처음 시작할 때 부터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다. 결말을 치닫고 있을 무렵 잠시 책 읽는 것을 멈추고 '그래서 지금까지 이 두꺼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라고 되새겨보고 있자니 막상 정리되는건 간단했다. 동네의 애완동물들이 무참히 죽여진다. 세 명의 젊은이에 의해서 심심풀이로 자행되는 일이었는데 노숙을 하는 개와 고양이로 만족하지 않고 펫샵에서 파는 개와 고양이 등등 죄의식 없이 데려다가 차로 치어 죽이고 사지를 동강내서 죽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세 명의 주인공 중 한명인 고토미는 펫샵 점원으로 부탄 사람인 도르지와 우연히 동물살해범들과 마주친다. 동물살해와 살해범, 그리고 주인공들간의 스토리는 그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말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래서 뭐?'라고 되물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연계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추리소설도 잔혹극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청춘소설이냐? 그것도 아니다. 이 책은 단순하고, 재미있고, 사람을 궁금하게 하는 힘이 있으면서도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고 무겁지도 않다. 머리아프게 왜 그랬을까, 이 사람들의 관계는 무엇일까 따지지 않아도 되는 소설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비하면 심플한 스토리랄까. 하지만 어떤요소를 빼버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소설이다. 이 부분은 좀 지루하잖아, 라든지 왜 이렇게 질질 끄는거야,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사실 앞서 말했듯 나는 3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은 미리부터 '두렵다'고 낙인찍고 읽기를 시작해서 읽는 속도가 의지와는 상관 없이 느려진다. 이 책을 읽기전에도 분명 일주일은 넘게 걸릴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을 어제 잠들기 전부터 읽기 시작해서 눈이 아프도록 읽다가 잠들고 오늘 오후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똑바로 앉아서 다 읽어치웠다. 읽기 쉽고, 잘 넘어가고, 재미있는 책이다.

 

 일본 소설은 가볍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난해할 때가 많지만 표면적으로 보이는 내용은 정말 가볍다. 가끔은 그런 가벼움에 정신이 아찔해질 때가 있다. 너무 가벼워서 속이 울렁거린달까. 일본 소설을 몇 권에 걸쳐서 한꺼번에 읽으면 카페인 과다복용 직후 처럼 어지럽다. 비슷한 분위기와 비슷한 주제, 비슷하게 뭉뚱그려진 알듯 말듯한 대사들. 이 책에도 어김없이 일본작가와 올드 팝(마치 하루키와 재즈처럼), 가벼움이 녹아있지만 있던 울렁증도 앗아가버릴 정도로 산뜻하다. 아 개운해.

 

 확실히 <사신치바>보다 좋다. 훨씬. <사신치바>에서의 첫인상 때문에 이사카의 작품 모두에 등을 돌리려고 했던 것에 대해 그에게 진지하게 사과하고 싶을 정도이다. 여전히 그의 소설은 가볍지만 이 책에는 인정할만한 균형감이 있어서 좋다. 

 

 이 책에서 내가 찾은 반전은 두 가지이다. 그 중 하나는 미리 짐작했던 것이었고 부탄인이 부탄인이 아니었음은 예상하지 못했다. (스포일러?) 그 순간은 두 사람 모두를 번갈아가며 이해하려 노력했다. 부탄인과 또 다른 사람. 아참, 부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나라인지는 몰랐던 나라. 이사카는 왜 부탄이라는 나라를 골라다가 썼을까, 했던 궁금증은 책을 읽으면서 풀렸다. 그리고 부탄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실제로 내친김에 인터넷 검색도 좀 했다.) 책에서 하도 부탄인이 일본인과 닮았다고 해서 검색해보니 정말 그래서 놀랐다.(옷도 비슷한데?) 부탄에 여행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부탄은 외국인이 여행가면 하루에 300달러를 꼭 써야 한다고 한다. 정말일까?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나라. 부탄에 가려면 인도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데 재미있다는 점에서 인도와 닮아있나.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의자에서 15cm정도 튀어올랐다. 역자인 인단비씨의 프로필을 읽고 단번에 이 사람 어쩌면 둘러 둘러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괜히 친근감을 느끼긴 했는데 후기에서 그녀(여자가 맞다면)는 가와사키가 나오는 꿈에 그가 '오다기리 죠(일본의 연예인)'로 등장했다고 했다. 게다가 가와사키 보다는 어쩌면 도르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과 똑같아서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유쾌하다고 할까. 꼬리가 휜 고양이 이름을 '꼬리끝동글말이'라고 표현하는 정도의 낙천성. 이 책은 덤블링 같다. 튕겨 오르는 것이 가벼워서 날아오를 듯 하지만 바닥에 닿는 잠깐동안 무거워지는 그런 책. 이사카 코타로만의 유머감각도 살짝 살짝 음미하며 키득거려도 좋을듯 하다. 웰컴 투 이사카 월드.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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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왕자 2007-06-28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보고갑니다
리뷰 담아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