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담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김중혁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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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진담이 되어 현실로 넘어간다.
현실은 농담이 되어 소설이 된다.

김중혁표 농담?
김중혁이란 이름은 너무 많이 들었다.
출간하면 언제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던 이름...
그래서 인지 그동안 거부해 왔었다. 소설도, 에세이도...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나는 농담이다>를 통해 처음 접했다.
순전히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를 믿고 읽었다. 그것도 직접 구매해서...
뭐 사서 읽는 책 반, 대출해서 읽는 책 반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그저 궁굼해 졌다. 그의 소설들이...
당장 생각나는건 <가짜팔로하는 포옹>이다. 다음에 시간되면 꼭 읽어볼 목록 우선순위에 뒀다.

최근엔 소설을 잘 안읽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와 함께 사회과학책들을 통해 지식을 쌓기에 바쁜 탓도 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멀어졌다. 박경리나 조정례 같은 묵직한 대하 소설을 읽다보니 진이 빠진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전에 읽었던 소설이 히가시노게이고의 소설이여서 일까. 김중혁의 소설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으면 집중해서 한자 한자 천천히 읽어왔던 그동안의 습관과 다르게 한 번도 멈추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간 것 같다. 독서노트에 한자 적지 못한 책은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김중혁의 농담은 현실같다.
요즘 시국이 너무나 농담같아서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반면, 대놓고 농담이라고 하니 현실의 삶이라고 느껴버리는 경우랄까?...

삶이 농담이고, 농담이 삶이 되는 세상.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바라본다.
농담인듯 싶지만 진담인 말
농담뒤에 살짝 숨겨 건내는 진담 하나
부끄러움과 오글거림에 면역이 없어 애둘러 농담으로 감춰버리는 진심들...

김중혁의 소설에서 발견한건 조금은 오글거려도, 부끄럽고 얼굴팔려도,
진심을 건낼 수 있는 '삶'이다.

책 소개는 출판사의 소개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서 대신한다.

우주를 유영하듯 농담 속을 거닐다! 문학성과 다양성, 참신성을 기치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의 작품을 엄선한 「오늘의 젊은 작가」의 열두 번째 작품 『나는 농담이다』.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중혁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이 작품은 지구와 우주 그 사이에서 펼쳐지는 저자만의 무중력 스탠드업 코미디이자 독자라는 관제 센터를 향하는 로맨틱한 편지이기도 하다.

낮에는 컴퓨터 수리공으로, 밤에는 백퍼센트 코미디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지구에 있는 한 남자, 송우영. 그는 얼마 전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됐다. 어머니는 그의 이부형제 이일영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남겼다. 하지만 일영은 실종되었고, 우영은 주인없는 편지 앞에서 혼란스럽다. 그저 농담 속에서 살고자 하던 우영. 어두운 무대에서 그는 관객을 향해 농담을 던진다. 그의 농담은 우주에 닿을 수 있을까.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남자, 이일영. 오랜 시간 훈련받은 우주비행사이자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연인인 그는 우주로 나아가는 오랜 꿈을 이루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모체 우주선과 분리되어 우주를 떠돌고 있다. 이왕 최대한 먼곳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그는 광막한 우주에서 관제 센터를 향해 메시지를 전송한다. 그것은 절대 절명의 구조요청이었다가, 철학적 사유였다가, 가벼운 농담이었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는 편지가 된다. 그의 메시지는 지구에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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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세트 - 전7권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최인자 외 옮김 / 시공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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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열흘만 늦게나왔으면....좋겠다... 그럴일은 없겠죠... 남아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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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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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벌> - 히가시노 게이고

가을...
높은 하늘은 푸르다.
흘러가는 구름은 고요하다.
떨어지는 낙엽은 외롭다.
피어나는 국화는 무겁다.
조용하던 벌은 요란하다.

벌집을 건 디는 순간
가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목숨을 위협하는 전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을 찍어내는 공장 같다.
그를 알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몇 권이나 되는 소설을 읽었는지 셀 수 없다.
일 년에 2권 이상은 출간하고 번역되는 것 같은 기분...
다작의 달인이라고 할까?

한국에 번역된 올해 마지막 소설이길 바라는 <천공의 벌>!

내가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벼움이다.
한없이 가벼워서 판타지나 무협소설을 읽듯이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속도감이 좋다.
많은 걸 담으려 하지 않고 가볍게 한 번에 하나씩만 담아낸다.
거기다 추리? 서스펜스? 스릴러? 의 장르적 요소를 더해 재미를 준다.
마지막으로 단 하나의 질문으로 많은 생각을 남겨버린다.

읽을 때는 한없이 가벼웠으나 읽고 난 후에는 너무 무거워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짓 눌릴 것 같은 압박감이 드는 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점이랄까?
가끔 생각해 보면 나만 괜히 무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은 재미있었다. 좋았다. 즐거웠다. 편했다. 이런 평들이 많으니까...
그 뒤로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천공의 벌>은 원전에 관한 이야기다.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높은 나라 일본...
한 번 일어난 사고는 재앙이 되어 돌이 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아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많은 생각들이 있었고,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원전 정책 때문에 이 소설을 쓴 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아직까지도 농수산물에 대한 안전성이 확실하지 않으며, 대부분을 우리나라가 수입한다고 하는 뉴스를 접했을 때의 충격, 각종 쓰레기와 폐기물이 역으로 한반도로 흘러들어온다는 보도에 얼마나 놀랐는지...
그때 일본의 원전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원전 또한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일본보다 더 높은 원자력 의존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보다 더 안전불감증에 걸려 조작이 판을 치니 감히 재난으로부터 안전하다 할 수 없는 원전을 가진 우리기에 더 많은 관심이 갔고, 마음이 무거웠다.

<천공의 벌>의 내용은 간단하다.
누군가 군사용 헬기를 납치해 원전 위에서 협박하는 것.
언제나 그렇듯 결말은 다시 일상이지만... 바라는 것은 경각심이다.

재앙은 아무리 대비를 해도 일어나기에 재앙이고, 인간은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완벽할 수 없는 존재기에 어디선가 생각지도 못한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재앙은 우리 모두의 일이기에 숨기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공개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소설 속의 세상이 현실과 너무 닮아, 우리 현실을 보는 것 같다.
관료제의 구조, 문제의 축소, 아무 문제없다는 발표, 자신감...
책임은 회피하라 있는 정부, 경제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많은 것들...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

원전과 소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도무지 정리할 수 없다...
혼란스러움... 아무래도 장염이라는 녀석 때문에 아픔을 잊기 위해 무작정 읽어버린 탓이다.
생각하기 싫어서 선택한 소설... 요 며칠 그동안 밀린 소설을 읽어낸 건 다행인데...
이렇게 뭔가 남길 수 없다는 것이.. 아무래도 문자만 읽어버렸나 보다...

차근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시 펼쳐보진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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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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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 제바스티안 하프너
본명 : 라이문트 프레첼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변화의 흐름을 읽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고 배웠다.
사실을 중심으로 살을 붙이는 것은 역사가마다 다르기 때문에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당시에 마음을 알 순 없다. 그렇기에 역사는 숲과 나무를 한번에 보면서 흐름을 읽어야 한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를 통해서 읽은 도이치제국사의 흐름.
제바스티안 하프너.

그가 말하는 도이치제국사는 신성로마제국으로 부터 이어저 오는 지금의 독일사와 거리를 둔다.

왜? 어째서? 무엇때문에?
도이치제국에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과 깊은 통찰의 결과라고 해야 할 것같다.

약 81년의 역사, 국가라고 하기 보단 한 인간의 역사라 할 정도로 짧은 시기에 존재 했던 제국의 역사
제국이 탄생에서 부터 소멸까지...
이걸 무슨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와 비슷했지만 다른 운명을 가진 제국, 독일제국의 후반 부 역사에 집중했다.
1945년 그날 이후 지구상에는 2차 대전으로 인한 분단국가가 탄생한다.
유럽대륙에서는 독일이, 한반도에서는 조선이...

당시의 독일과 우리가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닮은 점도 많다는 것은 명확하진 않지만 대강은 알고 있다.
분단국이였다는 것,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이 있었다는 것, 최극빈국에서 극히 짧은 순간 경제 대국이라 불릴정도로 경제적 성장을 이뤘다는 것, 주변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들 이라는 것.

차이점은 뭐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 책임을 졌어야 했던 국가"와 "대신 책임지어진 국가"라고 해야 할까?
제 3제국의 히틀러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에 전쟁이 끝난 후론 정치적 힘, 군사적 힘, 경제적 힘,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고, 전쟁의 책임을 물어 4개국가의 협의에 의해 둘로 나뉘었다.

우리는 국가로써 전쟁을 준비하고 탈환을 준비하는 과정중에 갑작스럽게 타의에 의한 해방을 맞이했다.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패전국은 일본이 되었으나 그 결과 둘로 나뉜것은 한반도였다.

스스로 찾지 못한 국가의 가혹한 운명으로 받아 들여야만 할까?

주변국의 상황도 달랐다.
소련과 미국 둘 모두 연합국이라 하겠지만 소련은 붕괴했고, 미국은 여전히 건재하다.

주변국에선 자신을 위협할 통일국가가 탄생하는 것을 두고 볼 순 없었지만
독일은 동독의 극심한 가난으로 인해 통일을 할 수 있었다면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서 가난하지만 국가가 굶어 죽을 정도의 가난은 아닌 북한을 유지하고 있기에 지금까지 미뤄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둘로 나뉜 그 순간부터 정치가아닌 국민들은 통일을 염원했으나 아직도 나뉜상태로 있는 건 아마 정치와 경제의 문제는 아닐지...

1945년... 세계의 눈으로 본 한반도는 '일본'이였을까?

스탈린과 히틀러, 힘대 힘!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
동부 전선과 서부전선!
동떨어져 있던 아메리카대륙의 미국...

대륙과 반도, 어쩌면 그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도이치란트의 역사에서도 그져 원인분석을 해볼 뿐이다.
그들은 어째서 전쟁을 일으켰는가?
어쩌면 큰나라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작은나라는 방어를 하지만 큰 나라는 그 힘을 어디로든 발산해야 되서 공격을 해야한다는 논리적이라고 할 순 없는 그 이유 때문에 전 세계에 전쟁을 불러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일본역시 내부적으로 통일을 이뤄 큰 나라가 된 후에 가장 가까웠던 그들 보다 작았던? 조선으로 공격성을 드러냈으니... 그들이 중국과 러시아로 뻗어 나간건 당시 유럽의 정세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계 곳 곳 전쟁이 아닌 곳이 없던 시대

시간이 더 흘러 100년이 더 지난 후엔 그 시대와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 하게 될까?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역사라고 한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동일이 통일할 거라 짐작할 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1990년에 쓴 후기가 담긴 이유다.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고, 주변에선 원하지 않았던 독일의 통일이 이뤄졌고,
그로 인해 독일제국은 부활 했다.

한반도 역시 그 누구도 짐작 할 수 없는 때에 통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 하룻밤 자고나면 갑작스럽게 북한과 통일을 하자는 여론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점점 늘어나는 탈북사태가 점점 커져 갑자기 통일하게 될 수 있는 것도...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한반도의 통일 역시 갑자기 이뤄지기라 믿고 싶다.

독서노트 (정리?)

도이치 제국역사의 특이점
1. 수명이 짧다
- 행동의 자유를 지닌 국가로서는 1871년 부터 1945년 까지 74년
- 제국의 전 단계인 북도이치 연방 + 2차 대전 이후 승리국 4개의 연합 통치 기간까지
80년 또는 81년

2. 짧은 생존기간 완전히 다른 4가지 시기가 나타났다.
- 1918년 (1차 대전 패전, 바이마르 공화국 시작)
- 1933년 (히틀러 제국총리 취임)
- 1890년 (빌헬름 2세 황제 시대 시작, 비스마르크 총리 퇴임)

3. 세번의 전쟁으로 시작, 2번의 세계대전과 함께 끝
- 덴마크 전쟁
-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전쟁
- 프로이센 - 프랑스 전쟁

도이치 제국은 큰 나라 였다.
.
.
.
하지만 스스로를 확장하여 뻗어나갈 빈 공간은 거의 없었다.


1933년 히틀러의 취임으로 세계는 또 한번의 충격을 겪는다.
그때 우리는 일제강점기 였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암살의 배경이 되었던 그 때가 1933년이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의 시대
책 한권에서 끝내기 보단 다양한 그 시대의 자료와 사료를 찾아보면서 하나 하나 사건을 기억하고 퍼즐을 맞춰나가듯 찾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 글은 네이버 카페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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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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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빛나는 이야기

 

  순서
  - 고드름
  - 그녀
  - 미진이
  - 아는 사람
  - 만두
  - 파란 아이
  - 이어폰

 

문학이 아니라 굳이 청소년 문학인 이유는 무엇일까?
꽤 많은 책을 읽어 왔지만 아직까지 그 구분에 대해선 의문이다.
청소년이 등장해서 청소년 문학? 성장소설이기에 청소년 문학?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문학이라서 청소년 문학일까?

그 어떤 기준을 가져다 써도 청소년문학만의 특징이 없다.
청소년 문학은 우리에게만 있는 독특한 걸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당장 생각나는 이 두 작품 역시 청소년이 등장하고 성장소설임과 동시에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선정되는데 청소년문학이라 하진 않는다. 생각해보면 더 많은 작품들이 있겠지...

김려령의 소설은 출간 당시에는 청소년문학이란 꼬리표를 떼고 나오지만 어느덧 청소년문학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다. 굳이 청소년 문학이어야 할까?

<샹들리에>역시 그렇다.
청소년이 읽으면 좋겠지만 일곱 빛을 내는 이야기는 청소년보단 사회에서 어른이라 규정하고 있는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읽어야 하는 문학이다.
나이를 먹어 어른이라 불리는 수많은 사람들...
수능과 취업 경쟁으로 취업 후엔 진급과 장기 경쟁
경쟁의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만 하며 살아온 20살이 넘어 어른이라 취급되는 많은 사람들...
미쳐 마음이 성장하지 못 한 채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들이 꼭 읽고 깊이 생각해봐야 될 그런 이야기다.

첫 번째 단편 <고드름>
등장인물의 대화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실험적 작품이다.
주변에 흔히 보는 학생, PC방에서 실없이 떠들던 이야기는 살인 모의가 된다.
쓰러진 사람을 구했다는 뿌듯함은 순간일 뿐 느닷없이 가해자가 되어버린 어이없는 상황.
어른들은 실없는 이야기에 "왜"라는 질문으로 의미를 담으려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살을 붙인다.
어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 채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두 번째 단편 <그녀>
이야기 속 사건은 분리가 된다.
배경은 장례식이지만 주인공에게 장례식은 생각하기 싫은 '그녀'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싸움을 거는 '그녀'생각만 하다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그녀'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단편 <미진이>의 주인공이 된다.
이번 이야기 역시 아이들의 세상에서 바라보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상이 보인다.
동네 사람들이 전부 가족보다 더 참견하는 상황.

불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금은 보기 드문 마을 이야기...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세대갈등 문제.
같은 시간대에 사는 사람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다른 시대다.
요즘 어른들은 그들이 살았던 어린 시대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 했다.
요즘 아이들은 그들이 살아본 적 없는 세상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이 그때는 아닌데 왜 그때 이야기를 하는 걸까?

갈등은 마음이 성장하지 못한 '어른'때문은 아닐까?
시간이란 마법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는 먹는다.
육체는 성장하고 늙어가지만, 마음은 시간이란 마법 속에 어느 한순간에 머물 뿐이다.
그 어긋 남이, 미쳐 준비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어른이되 어른이 아닌 무엇으로 만들어 버린다.

정말로 태어날 때부터 못된 아이였을까.
왜 그렇게 됐을까. 참 이상한 그녀를 만났다.

 

세 번째 단편 <미진이>
두 번째 이야기의 "그녀"는 미진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평범함이란 무엇일까?
세상에 사는 사람들 만큼 다른 삶이 있다.
모두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세상, 평범함은 무엇일까?

'미진이'의 이야기가 그렇다.
평범했다 생각했던 세상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배우는 것.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만큼 다양함이 있다는 것.
'엄마'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었고, '친구'라 생각했던 '친구'들은 없다.
모든 것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 갑작스러움은 커다란 충격이 되어 삶을 뒤흔든다.
느닷없는 교통사고처럼...

삶은 교통사고다.
타인이, 또는 아는 사람이 나와 충돌해서 일어나는 교통사고
충돌의 흔적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되어 남는다.
사고의 흔적이 희미해지면 또 다른 곳에서 일어나 버리는 교통사고.

끝없는 충돌이 '나'를 마구 찌그러트린다.
찌그러짐 속에서 '나'라는 형체는 수 없이 바뀐다.
찌그러진 차를 수리하듯 '나'를 수리할 수 있으면 좋으려만 불가능하다.

'삶'이란 녀석은 그런 교통사고지만 멈춤 없이 굴러간다.

내 미래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꾸는 꿈은 있다.

네 번째 단편 <아는 사람>
믿지 못할 세상이 문제일까? 조심 없는 '내'가 문제일까?
과외는 폭력이 되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그냥 폭력이 아닌 '성폭력'
성범죄는 '아는 사람'에게서 일어난다는 경각심. 사회의 문제일까? '나'의 문제일까?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변해버린 세상은 누구의 책임일까?
폭력은 폭력일 뿐이라는 것.
두려움에 도망치면 피해자만 늘어난 다는 것.
조금 두렵더라도 폭력에 맞서는 용기가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예방책임을 알려준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라도 말하고 철저하게 처벌해야 하는 이야기.

종종 뉴스에서 들려오는 성범죄의 이야기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절절하게 들려오니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이야기가 된다.
'아는 사람' 그 누구나가 잠재적 가해자는 아니지만...
'아는 사람'조차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세상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내 몸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안다.
별것인 극소수의 매우 특별한 사람들만 가진 권리가 아니다.
눈에 띄지 않아도 생생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권리다.
.
.
.
너는 끝났지? 나는 시작이다.

 

다섯 번째 단편 <만두>
만약이라는 가정, 대신이라는 미안함.
평생 상처가 되어버린 이야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질문. 그리고 우정...
다시 한번 '평범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연 하나쯤 있는 삶이 평범함일까? 특별한 사연 없이 살아가는 것이 평범함 일까?
아! 굳이 평범해야 하나?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고, 그들 중 나 역시 특별하지 않다는 것. 아니... 나만의 특별함이 하나쯤은 있다는 것.

'만두'가 품은 것은 저마다의 사연, 저마다의 삶.
모양이 제각각인 만두처럼, 삶 역시 제각각이라는 것.
다양한 만두가 어우러진 만둣국처럼, 삶 또한 어우러짐이라는 것.

이런 만둣국도, 저런 만둣국도, 어우러져야 '맛'난다는 것.
국물이 많기도 하고, 고명이 없기도 한... 그런 만둣국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여섯 번째 단편 <파란 아이>
누구 대신의 삶,
그 누가 죽은 이 라면... 그 삶은 무엇일까?
'나'도 '그'도 아닌 정체 없는 '삶'이란...
'파란 아이'는 '자신'을 찾음으로 '어른'이 된다.

비밀과 비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이해의 영역으로 다가온다.
어긋났던 세상이 맞춰진다.

소년은 한때 '요즘 아이들'이었을 요즘 어른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자신들은 꽤 정숙한 성장기를 보내고 꽤 근사한 어른이 된 것처럼
요즘 아이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소년이 보기에는 요즘 어른들이 문제다.

상실의 슬픔을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이 되어 남는다.
이야기 속에서 잠시나마 '세월호'의 남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아이를 잃은 엄마, 친구를 잃은 친구, 엄마를 잃은 아이...
상실은 대체할 수 없는 상실일 뿐이다. 잃은 누군가를 대신한다는 것.
대신할 수 없는 무엇을 대신하는 것이야말로 고통이다.

늘... 무언가 하느라 바빴지만,
정작 한 것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일곱 번째 단편 <이어폰>
이어폰으로 두 귀를 막으면 현실과 단절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다.
'나'만의 세상, '나'만의 세계, 소리를 차단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세상에 있어도, 결코 현실과 완전히 분리되진 않는다.

'쿵'하는 소리... 그리고 귀찮음...
'나'만의 세상에서 나가기 싫었던 그 순간의 선택이 매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만든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죄책감'...

머리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렇다고 하는 '죄책감'
상실은 지난날의 못해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만약'이라는 가정, '왜'라는 후회...

그동안 부주의라는 말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약간의 실수로 인한 약간의 손실, 그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저 말은
엄마의 죽음과 같은 무게로 가슴을 짓눌렀다.

상처는 아물 수 있을까?

<샹들리에>의 일곱 빛은 '상처'이며, '치유'다.
어른이되 어른아 아닌 사람들에게 비춰주는 '빛'이다.
수많은 다양함에서 '나'를 찾는 것.
'내'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어른'아닐까...

반짝이는 샹들리에의 빛이 위로와, 용기, 희망으로 감싸 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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