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저 구름처럼 느려. 이 잎에서 저 잎까지 가는 데 한참이나 걸려. 나뭇잎 사이가 아무리 가까워도 건너뛰지도 못해. 아직은 작고 어린 애벌레니까.

그래도 나중에 나비가 되면 구름처럼 하늘을 둥둥 떠다닐 거야. 이깟 나뭇잎이 대수겠어? 저 나무 끝까지 날아오를 거야.

- 김원아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중에서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 이것은 미성숙한 존재가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르는 스토리에서 흔히 쓰이는 은유다. 너무 흔해서일까? 애벌레에서 어린이를 연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도 실제 동화에 등장한 경우는 별로 없다. 작가는 영리하게도(영리한 것은 얼마나 좋은가!) 이 빈자리를 좋은 동화로 채워 넣었다.


소재만 잘 잡은 게 아니다. 앞서 애벌레를 '미성숙한 존재'로 흔히 은유한다고 했는데, 애벌레로서는 지금 자신이 완전한 존재다. 언젠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될 존재가 아니라, 오늘의 애벌레로서 하루를 산다. 먼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는 형님들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배춧잎에 모양을 내면서 재미를 찾고,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몽상에 잠긴다. 그리고 당장에 닥친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세계를 구해낸다. 


7번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장면은 물론 아름답지만, 나는 그 장면 없이도 이 이야기가 많은 것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나비가 되지 않고도 7번 애벌레는 완전한 생명이다. 어린이도 그렇다. 어른이 되기 전이라고 해서 미완성의 존재가 아닌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조금 바꾸자면 어린이에게는 오늘까지가 평생의 삶이다.


작은 판형에 그림이 많고 귀여우며 문장이 단순하다. '첫읽기책'이라는 시리즈 의도에 비해서는 이야기가 긴 편이지만, 이 시리즈로 나온 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 작가의 첫 책이라는 점도 반갑다. 상 이름 그대로, '좋은 어린이 책'.



+ 함께 읽는다면









꼬마 애벌레 말캉이 1, 2 (황경택 만화)

궁금한 건 못 참고, 심심한 건 더 못참는 애벌레 얘기.

깜짝 놀랄 만큼 뻔뻔하다는 게 웃음의 포인트인데

읽다 보면 은근히 감동을 받는다.

초등 1학년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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