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자란 스기노는 일상을 살면서도 '시선을 딴 데 두는' 사람이었다. 스기노는 열두 살이 넘어서도 어린애처럼 엉뚱한 짓을 하곤 했다. 멸종한 바닷새에게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띄우기도 하고 교실의 뜯긴 마룻바닥 아래 콩나무를 심기도 했다. 두 손 놓고 자전거 타기나 공중그네를 연습하는 소녀였으니 서커스에 빠지는 것도 당연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정해야 했을 때도 마술사나 선원이 되고 싶어 했다. 결국 병든 부모를 돌보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느라 고향 마을에 정착해 살면서도 그런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것, 위험한 것에 끌리던 그녀는 결국 마술사에게 매혹되어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젊은 남편과 어린 두 아이를 남겨 두고서.


식구들 사이에서 외할머니는 빨래를 널다 떨어지는 사고로 돌아가신 것으로만 되어 있었다. 외할머니, 즉 스기노에 얽힌 비밀을 알아낸 것은 이제 열두 살인 후코다. 여름방학을 보내러 시골 외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빨래 널 때 쓰는 2층의 문이 신비한 정원으로 연결되는 문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젊은 시절 행방불명된 외할머니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후코 역시 정원에 매혹되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뻔하는데, '온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외친 친구 덕분에 위험에서 벗어난다. <<시계 언덕의 집>>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바닷가 마을의 평화로운 정경이 공들여 묘사된 것은 나처럼 인내심이 적은 독자에게는 힘든 코스였다. 스기노뿐 아니라 여러 마을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러시아 문물에 대한 얘기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비밀의 문은 금방 찾았는데, 문 안쪽에서 신나게 모험하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것도 의아했다. 후코가 이 정원의 진짜 주인일 것이라고 짐작한 매력적인 소녀 마리카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거의 지루하다고 할 작품인데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은 것은 작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결국은 속이 시원해지거나 웃음이 나거나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그래서 후코의 외할머니가 미지의 것을 동경하다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내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외할머니를 되찾는 것도 아니고, 그 죽음 혹은 행방불명을 위로하지도 않는다니. 냉정하다. 작가에 대해 배신감마저 들었다.


다카도노 호코는 <<꼬마 할머니의 비밀>>에서 어려지는 옷을 발명한 할머니들이 모험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할머니들은 어린이의 몸이 되어서 갖가지 문제를 겪고 해결해나면서 '어린이다움'의 힘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진지한 씨와 유령 선생>>은 빡빡하게 살던 진지한 씨가 유령과 마주하면서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이야기였다. 달리 말하자면 환상이 느긋함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유독 스기노에게는 이렇게 가혹할까. 그건 지금 후코가 어른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후코는 그 속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환경 속에서 홀로 경험하는 세계, 그것이 가져다주는 해방감.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동안은 어른이 되는 걸 두려워했지만 어른이란 건 어쩌면 부모의 자식이나 가족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으로만 존재하여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두렵기는커녕 아주 멋진 일이었다." (211-212쪽) 


방학 동안 느끼는 해방감은 어른이 된 느낌으로 혼동될 수 있지만, 이어지는 대목에서 후코가 할 수 없이 방학 숙제를 하는 것처럼 아직 완전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아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해방감과는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마법에 기댈 수도 없고, 환상에 빠져 현실을 잊을 수도 없다. 단지 '허락되지 않은 것' 정도가 아니라, '위험한 것'이다. 차갑게 들리지만 그 점을 알게 하는 것이 정말 후코를 위하는 길인지 모른다. 판타지는 이상으로서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나락이 될 수 있다. 외할머니는 끝내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해 추락했고, 외할아버지와 엄마, 외삼촌은 그로 인해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분명 초원의 끝까지 달려가서 바늘 산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움의 대가, 그것은 너무나도 비쌌던 것입니다." (272쪽)


후코와 함께 비밀을 풀어가던 친구 에이스케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후코가 환상에 빠져 추락하려 할 때 온힘을 다해 그녀를 부른다. 후코가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를 찾은 것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온기와 힘이 담긴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환상이 아니라 사람에게 의지해서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현실이란.


후코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그때 문을 열고 본 세계의 아름다움과 위험을 잊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나도 마음이 풀리고 안심이 된다. 다시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정도가 아니라 작가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는 이제 좀 컸다고 환상의 세계를 잊으면 안 돼, 하고 독자를 묶어두지 않는다. 오히려 머무르려는 독자를 등떠밀어 삶으로 내보낸다. 그렇다면 이제 환상의 세계는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후코가 추락할 뻔했던 2층의 문 밖으로 떨어진 회중시계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