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탁탁 소리를 내며 소년이 뛰듯이 걷기 시작한다. 소년의 등 뒤로 챙, 하고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탁탁탁탁 아홉살 소년의 걸음이 삼십이 되기 전에 골목이 끝나면 왼편으로 꺾어 큰길에 나선다. 책가방 안에서 필통 속 연필이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이따금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다시 왼편 큰길로 접어들어 곧장 걸으면 학교 가는 길이다. 소년의 걸음으로 아주 가까운 길은 아니지만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면 어느덧 학교다. 얼마 전 운동장에 새로 깐 모래는 강에서 가져온 것이라는데 참 곱다. 본관 앞에는 조그마한 닭장이 있다. 하도 작아서 아이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닭장 안에는 소년이 돌보는 닭이 있다. 소년은 닭이 달걀을 낳을 때마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내 담임선생에게 가져다준다. 마르고 눈이 순한 소년에게 담임선생이 맡긴 일이다. 학교가 파하면 타박타박 같은 길을 걸어 얌전히 집으로 돌아온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한자리에 십분만 앉아 있어도 오가는 이의 사연이 다 파악되는 작은 읍이지만 소년에게는 친구집을 찾아가는 길이 이 골목인지 저 골목인지 헷갈릴 만큼 복잡한 세계다. 놀러오라고 한 친구네 집을 찾다 포기하고 와서도 친구에게는 짐짓, 그냥 안 간 것처럼 둘러대며 시치미를 뗀다. 소년은 그런 골목을 누비고 놀다가 아버지가 일하는 대서소 앞을 지나며 친구들 앞에서 우쭐해진다. 아빠, 나 백원만. 아버지는 동네 뒷산을 곧잘 따라 오르는 작은 아들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흔쾌히 동전을 건넨다. 소년은 기분이 좋아져 뛰어논다. 동네 뒷산 가는 길에는 어느날 갑자기 세워진 국가유공자의 비석이 있다. 80년대 중반의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모던한 비석 장식에 소년은 마음을 빼앗긴다. 비석 둘레 낮은 울타리 위를 아슬아슬 외나무다리 걷기를 하다가 그만 균형을 잃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 소년의 형이 놀라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간다. 소년들로서는 도무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향교 앞 계단을 뛰듯이 내려간다. 놀란 소년의 어머니는 제일 가까운 도시로 나가 아이를 치료하려다가 흉터 없이 꿰매주겠다는 동네 의원의 말을 믿기로 한다. 그러나 서른 중반이 되도록 그날의 기억은 소년의 정수리에 조그맣게 남아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소년은 그 작은 읍을 떠나 제일 가까운 도시로 나왔다. 전에도 한번 나오려면 언제나 차 안에서 멀미를 해야 했던 곳으로. 그 도시에서 소년은 정없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던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대학은 적당히 흥미롭고 적당히 지루했다. 여전히 지방 도시에 있는 집으로 내려갈 때면 언제나 알 수 없는 외로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군복무 중에 '무언가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 술을 드신 날이면 집에 가전제품을 하나씩 들여놓으시던 아버지는 오랜 병고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는 복잡하고 힘든 관계 때문에 마음을 다쳤지만, 어린시절 학교 다니던 길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은 어른으로 잘 자랐다. 인적 없는 골목길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고양이가 마음 쓰여 걸음을 떼지 못하는 사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람쥐 사진을 검색하기도 하는 사람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학교를 찾아가 이제는 사라진 닭장 자리를 짚으며 아쉬워하고, 동네 꼬마를 따라 바로 그 운동장까지 산책 나온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즐거워하는 사람으로. 소년은 자랐다. 자라서, 네꼬씨의 애인이 되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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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0-05-16 18:02   좋아요 0 | URL
프랑스 시골에 계시지만 공주님인 공주님. 그 공부 얘기를 들어야 되는데 제가 이러고 있어요. 게으름 피워서 미안해요. 언제 오세요? -_- (일찍도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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