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전 여름호 마감을 해놓고 몇 주만의 늦잠을 잔 주말에, 그 소식을 들었다.
그 다음주 일정은 모두 엉망이었다. 뭘 어째야 좋을지 몰라 그냥 광장으로 갔더랬다. 
 
이번엔 가을호 마감을 하기도 전에 소식을 들었다.
역시 몇 주만에 맞이한 주말,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손톱을 깎고, 밥을 챙겨 먹고
양치를 두 번 하고 전날 급하게 마련한 까만 원피스를 차려입었다.
그리고 연세대김대중도서관으로 갔다.
광장을 내준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그 영악한 계산이 끔찍했다.
석달 전 대한문 앞에서 본 초라한 빈소와 전경버스들이 떠올랐다.
거기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 로비에 작은 분향소가 마련돼 있었다.
정확히는 향도 없이, 꽃과 사진만 있는 추모대.
절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될지 몰라 일찌감치 서두른 게 머쓱할 만큼
도서관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아니, 줄 설 필요 없이 곧장 영정에 마주설 수 있었다.
상주 역을 하는 도서관 직원과 맞절을 하는데 그가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생각보다 너무나 쓸쓸한 분향소를 지키는 그들은 내가 정말 고마운 모양이었다.
줄을 설 필요가 없어 뜻밖에 시간이 생겼으므로, 나는 도서관 안의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김대중 선생님의 파란만장한 정치 일대기, 그리고 선생님의 손때 묻은 책들,
감옥에서 못으로 눌러 쓴 편지, 책장을 넘기기 좋게 검지 중간만 벌어진 털장갑,
그리고
87년 광주 묘역에서 연단을 향해 걸으며 엉엉 우시는 필름,
그리고
당신을 도와준 외국 친구에게, 그리고 자신을 위해 쓴 휘호, 敬天愛人.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러니까 그분이 우리를 이렇게 부를 때마다 그 마음속에는 敬天愛人이 있었던 거지.
그분께는 우리가 하늘이었고, 또한 사람이었던 거지.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 일기장에 이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고 하셨던 거지.    

손수건을 꺼내면서 보니
혼자 오신 아주머니 한 분이 소리도 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서 계셨다.

영결식장에, 광장에, 거리에,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었다.
그래, 두 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짧은 계절이었다.
모두들 기운이 떨어졌고 날은 너무나 덥고 우리는 모두 피로하다.
우리는 이미 울다 지쳤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분의 죽음은 그렇게까지 험하지는 않았다는 것.
우리가 한스럽게 몸부림치지는 않아도 되게, 그렇게 돌아가신 게 그래도 다행이다.

*

5월 영결식 때 검은색 옷을 제대로 갖춰둘까, 생각했다가
이 죽음을 아직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관두었다.
그런데 이제는 좀 좋은 검은 옷을 한 벌 사둬야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적어도 두 분의 주기에 입을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도 계속 여름에 이 날들을 맞이해야 될 테니까, 옷을 한 벌 갖춰야겠다.
까만색 원피스를, 그분들을 기억하고 내 마음을 다잡는 날 입을 까만색 원피스를 한 벌 사야겠다.
햇볕 아래 오래 서 있어야 될 테니까 시원한 걸로.
그분들이 보시게 될 테니까, 예쁜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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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4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5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8-29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원하고 예쁜 검은 여름옷으로 준비하셔요~~~ 연중행사로 입어야 하니까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