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진 오닐이라는 미국의 극작가를 나는 몰랐었다.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받았고(홈어드밴티지?) 노벨상(국력에 힘입어?...퍽!)까지 받은 극작가. 나는 희극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과연 이 책을 수월히 읽어낼까, 부담스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  

희극이나 소설이나 사람 사는 이야기 다를 바 없는 거 알지만, 어쩐지 극작품엔 몰입이 안 된다. 익숙하지 않아서겠지... `밤으로의 긴 여로` 극작품이다. 선입견으로 인한 부담을 덜고자 날림으로 읽기 시작했다.
디테일한 배경은 뭉개버리고 지문은 훌쩍 넘어 대화(스토리)에만 집중했다. 먼저 읽어둔 책 말미의 소개글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밤으로의 긴 여로`라는 유진 오닐의 대표작을 읽으면서 나는 유진 오닐을 만날 수 있었다(희곡 낯설다며 느닷없다)

희곡에 대한 선입견은 그랬었고, 이 책 `밤으로의 긴 여로`에 나는 흠뻑 빠져 읽고 또 읽었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극은 하루 동안의 긴 대화이다. 어느 가족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 그날의 대화는 여느 날과 달랐다. 주인공들은 거실과 주방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과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다. 하루 동안의 에피소드이지만 그날의 대화에 과거가 담겨 있고 미래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대화를 읽었는데 어느 순간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희미했던 인물들이 살아나고 복색과 표정이 뚜렷해진다. 거실의 등의 노란 불빛이 주위를 밝히고 탁자 위의 위스키 향이 코끝을 스친다. 인물들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언성이 높아짐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과 시선에 긴박함이 서린다.
책을 보면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기분, 오랜만에 느꼈다. `잘자요 엄마`가 그랬었는데... '밤으로의 긴 여로' 연극으로 꼭 보고 싶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 인물은 유진 오닐의 아버지(티론), 어머니(메리), 형(제이미) 그리고 유진 오닐(에드먼드). 유진 오닐 분의 에드먼드를 제외하고 모두 실제 이름이다. 에드먼드는 어려서 죽은 둘째 형의 이름이다. 이 극에선 죽은 형의 이름이 유진 오닐로 서로 바뀌어져 있다.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기 위한 조치라 생각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희극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빠져들어 읽은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역시 감정이입이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 네 명의 식구, 때론 한몸같이 살갑지만 사실은 다른 객체들.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네 명의 배우가 생겨났다.  전혀 다른 배경이고 나에겐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다르지 않았다. 나의 가족과... 그리고(아마도) 세상의 모든 가족들의 마음 한켠에 있음직한 이기적 속내가 그렇다. 가족 이전에 나(사람)이므로.
이입됐었다 말했다. 누구에게? 대답은 모두에게이다. 나는 모든 등장인물을 동정했고 비웃었다.
나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가슴이 시리고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내고 그 잔인함에 스스로 자책하는 그 바보 같은 모습을 관객으로서 바라보며 나는 나를 보았다. 자기미화의 욕구를 참지 못하는 스스로를 조소하고 또 그런 내가 가여워 동정하는 세상 속의 나. 내가 그 거실에 있었다.  
아픔에 서러움에 세상의 상처와 매서운 눈길에 마음이 아파 따뜻한 품을 찾아든다. 가족이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바깥 세상이 무섭다. 그래서 안전한 곳 가족의 품에 스며든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나 아닌 사람들에겐 서로 무장해제되어 아픈 곳을 드러낸다. 나 좀 봐줘, 아파, 안아줘... 애써 의연해질 필요 없는 분신 같은 사람. 
가족은 그렇게 위로받고 싶어 가면을 벗고 맨몸을 드러내지만 서로가 위로만 바란다면, 기대가 큰 만큼 실망과 분노는 커진다. 믿었던 만큼 실망도 큰 법일까, 분노에도 거침이 없다. 폭언과 추궁의 매서운 말의 칼날로 섭섭하고 미운 마음을 담아 휘두른다. 지금 아픈 나를, 내 맘같이 살펴주지 않는 가족에게 섭섭한 마음에 서로에게 상처의 말을 휘두른다. 서로 더 깊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낸 상처는 내게 자책으로 돌아온다(어쩌면 그게 목적이었을지도...). 자식들은 부끄러움에 자괴하지만 멈춰지지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 이른 어느 가정에 희망의 빛은 없어 보인다.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중산층의 유명 연극 배우의 집에서.

한때는 아름다웠던 메리, 그녀는 돌팔이 의사에게 에드먼드를 낳은 직후 산후 치료를 잘못 받아 모르핀 중독자가 되었다. 가정의 중심인 어머니의 부재는 에드먼드(오닐)에게도 큰 불행이었으리라.  

아버지 티론은 아일랜드 이민 2세로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각고의 노력 끝에 연극배우가 되었고, 세익스피어 전문 배우가 되었으나, 결국 부富를 쫒아 통속배우가 되고 만다. 어린시절 사무친 가난에의 극복을, 배우로서 성공하여 이뤘음에도 티론의 삶은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고 재물의 축적이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보상이라도 되는 듯. 맹목적인 땅 사들이기를 한다. 명예와 교환된 그의 재물(땅)은 가족에게 또다른 상처로 되물림된다. 진정한 꿈을 경제적 가치와 맞바꾼 티론. 그것은 메피스토텔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심정이었을까? 부와 명성를 얻은 배우 티론에게는 큰 상실이었나보다. 처음 티론이 자신의 진정한 꿈을 놓은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티론은 자기의 꿈을 버리고 가족의 복락의 근원인 돈을 벌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티론은 돈은 있으나 바로 사용할 줄을 모른다. 수전노, 그럴 수밖에... 돈과 바꾼 꿈,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그 귀한 것과 맞바꾼 돈을 함부로 사용할 용기가 티론에겐 없다. 사랑하는... 그래서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에게마저도. 
  
티론과 메리의 큰 아들 제이미.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염세주의자. 집안에 꼭 하나씩 있는 철없는 망나니 아들.  

유진 오닐 분의 에드워드. 어린 시절부터 형 제이미를 우상으로 여기고 제이미에게서 세상의 철학을 배움. 하지만 아버지를 닮아 육체적으로 강인한 제이미와는 달리 심약하고 예민한 어머니 메리를 닮은 에드워드는 방탕, 방랑한 생활을 못 이겨 폐병에 걸리고 만다.  

오직 돈으로만 과거 가난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티론과 평범한 가정을 꿈꾸었으나 임신 후 돌팔이 의사에게 몰핀 처방을 받은 이후 마약 중독에 빠져 자기를 잃은 메리. 그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삐뚤어진 성정의 제이미와 유약한 에드워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연극배우 가정의 내면의 상처는 치유가 힘들어 보인다. 서로를 탓하며 불행의 원인에서 자기는 벗어나려하지만 모두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자책에서 벗어나려 마약으로 술로 여자로 냉소로...

돌이킬 수 없는 파탄 가정의 불행. 서로를 할퀴며 불행의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이기심과 속된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바탕에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이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해와 용서를 담아 이 책을 썼다,는 오닐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아프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치부를 들추는, 그렇게 해서 자기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족의 사랑을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려 했던 오닐의 마음이 느껴져 아팠다. 

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물론 책의 배경과 소재는 내 그것과 다르다. 하지만 다르지 않았다. 나의 소중한 가족.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가족도 가정이라는 세상에서는 나와 유리되어 있는 존재다. 가족에게마저 네 탓을 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넘사스러워 말 못하는 가족간의 갈등과 미움. 그 상처를 미화 없이 드러냄으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오닐의 용기의 고백에 존경을 표한다.

애처로운 메리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며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버티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무너지는 메리의 의지력에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까?
지난날 가난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굶주림으로 몰아넣는 티론. 티론이 돈 몇 푼 아끼고자 제대로 된 의사에게 진료를 맡겼었더라면... 메리는 먀약쟁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결국 원인은 구두쇠 티론에게 있는 것인가? 
상처로 자기를 가누기 힘든 부모 아래 성장한 또 다른 아픈 영혼 제이미와 에드워드. 이들은 자신의 상처의 근원을 자기 밖에 있다고 믿으려 한다. 가정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 죄책감을 벗기 위해 선택한 고통의 원인은 사랑하는 가족이다. 맞다 아버지의 인색함과 어머니의 마약중독이 아니었다면 제이미와 에드워드는 지금 겪는 고통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에게 불행의 화살을 돌린다 해도 불행은 해소되지 않는다. 더욱 슬프다. 죄책감에 자책하고... 원인은 너무나 많다. 얽히고 섥힌 불행의 원인들 하나하나 짚어가며 되돌릴 수 없는 불행한 과거로의 여로에 빠져들지만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일 뿐,  

해결 방법은 없다.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은 가족이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인정하는 것 밖에. 그래서 가족이다. 나는 살면서 이런 상처를 보지 못했다. 피부가 벗겨지고 살과 힘줄이 헤쳐져 뼈가 드러난 상처. 어느 명의도 치료할 수 없는 사무친 병들.이런 병을 잊게 만드는 건 모르핀 뿐이다. 하지만 잠시 잊는 건 치료일 수가 없다.   

내 가족, 발가벗겨짐이 두려워 애써 왜면하는 가족의 상처, 나도 있겠지,,,  나는 오닐처럼 드러내어 울부짖을 용기가 없다. 큰 불행이 없어서일지도 모르나 희노애락의 감정을 다른 사람과 견줄 수는 없는 법이다.  

오닐의 용기, 내게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우 2011-12-31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집 살림을 하시니 여기다가도 복사해 놓습니다, ㅎㅎ>

진작 읽었으면서 이제야 답글 씁니다.

향편님, '밤으로의 긴 여로'를 참 꼼꼼하게 읽으셨군요.
그리고 가족에 대하여 매우 적실한 소감을 쓰셨습니다.

그래요, 향편님.
몸부비며 사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동굴.
한 인간의 기본적인 정체는 그 동굴 속에서 모두 형성되지요.
동굴은 숙명입니다.
사랑과 미움, 위로와 상처, 친밀과 소외, 이해와 외면, 미움과 용서, 부끄러움과 고통.

그리고 그것들은 필경 연민으로 남겨집니다.
향편님은 짐짓 초연한듯 말씀하시지만, 뉘에게나 그런 연민 없지 않을겝니다.

유진 오닐의 용기라고 말씀하셨지만 기실 얼마나 주저주저한 용기였을까요.
공연을 막고, 발표를 미루라는 유언까지 남겼으니.

그리하여 우리는 유진 오닐 가족사의 진실을 들여다 보고, 바로 나의 가족에 대하여 생각에 잠겨보는 시간을 얻은 것일테지요. ㅎㅎㅎ

차좋아 2011-12-3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가족사에 간련한소설에서 제 소회를 느끼는바 대로 적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린 이제 가정을 이룬 젋은 제가 느끼는 감정이 미숙할까 두려웠고 그 솔직이 덜 여문 인격에 근거함이라면 동우님 보시기에 너무나 어려 보일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그런 생각끝에 오히려 좀 당당히 써 보자 해서 쓴 독후감이었어요.
나중에 동우님 글 읽으면서 좀 놀라기도 했고, 미리 알았더라면 더 조심히 썼을 것 같아요.

참. 동우님이 지난 제 글에 덧글 달아주셨잖아요 그 거에 대한 답글, 제가 덧글을 비밀글로 올렸더라고요.... 바보 같이. 답글이 길어져서 정리좀 하고 다시 올린다는걸 깜박한 듯 싶습니다. 다시 공개로 해 놓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