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홍대에 커피집을 낸 친구와, 그 가게를 보러 갔다왔다. 라떼의 맛을 알게 해준 대루의 커피집 이름은 대루커피. 홍대역에서 내려 골목길을 요리조리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작은 커피집엔 작은 테이블이 두 개. 자주 가는 동네라면 더 신났을 텐데... 홍대도 가끔 가니깐 갈 때마다 들러야겠다, 고 생각. 정성 가득, 농밀한 라떼만으로도 대루커피에 갈 이유는 충분하다. 대루랑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토요일은 아침 일곱시 영이를 만나 불암산 산행. 무진의 특산물이 안개라고 했었지,,, 영에겐 불암산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영과 불암산에 두 번 갔는데 두 번 다 한치 앞만 보일 정도로 안개가 가득했다. 영아~ 불암산 그렇게 신령스러운 산 아니야~, 볕 드는 날 다시 가보자고 ㅋㅋ
영과 서로 호칭은 한 살 나이 많은 내가 "영~", "영아" 이렇게 부른다. 이름이 외자인 '영', 李영. '영'은 나보고 "형" 이라고 부르는데 내 이름 끝자가 형이니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셈이다. 영~, 형~,
금요일 저녁 대루를 보러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어떤 남자가 발작을 일으켰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고 간질이네, 하고 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딱해서 가만히 쳐다볼 뿐, 별 도리 없다. 주변의 승객들은 간질 환자의 발작을 처음 보는지 두 번째 발작에 누구랄 것도 없이 119에 구조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오지랖도 넓게 나서고 말았다. 괜찮아요, 간질이예요. 심한 편 아니니까 괜찮아요, 하고는 발작 중인 아저씨 옆 자리에 앉아 어께로 아저씨를 받혀 주었다. 세 번의 발작, 경련을 일으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운 시선이 늘어났다. 나는 아저씨가 의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붙잡고 눈을 바라 보았다. 아저씨는 의식이 분명하여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는데 경련이 풀어지고 진정되자 조용히 고마워요, 라고 말했다. 단내가 너무 심했다. 행색이 누추하지도 않았는데 아저씨가 밭은 숨을 낼 때마다 풍기는 역한 입냄새에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아저씨는 고마워요, 라고 말할 때 고개를 숙이며 내게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온 몸이 경련을 일으킬 때는 분명히 난 봤었는데... 그래서 나는 큰 문제는 없겠구나 생각을 했었다. 정도가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일상에서 아저씨가 겪어야 할 불편과 본의 아니게 난처한 상황에 놓여야하는 그의 일상이 어떨지 가늠이 안된다.
대루커피에서 아내를 만나 그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묻기도 했다. 간질 환자의 고통이 더 클까, 틱 장애를 가진 사람의 고통이 더 클까, 글세..., 그럼 간질과 이명은 어떤게 더 괴로울 것 같아?.
이명으로 인한 괴로움에 호소를 안하게 된 건 열하일기를 읽고 나서다.
연암 박지원이 연경 사신단과 함께 떠난 중국 여행의 기록인 열하일기에는 흔히 역사라고 하는 세계사적 차원의 사건들도 기록되어 있지만 박지원 개인의 일상과 주변 사람들의 재미난 에피소드도 쓰여 있다. 그중 에피소드라 하기엔 내게는 충격적인 이명에 대한 이야기. 어느 날 박지원이 이명으로 고통 받는 사람에게 아주 냉정한 소리를 한마디 한다.
네 귀에 소리라는 게 너에게만 들리는 소리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자꾸 하소연 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느냐, 민폐다, 에이 멍청한 놈 같으니라구, 입 좀 다물어라.(각색임)
저 에피소드 읽고 얼마나 챙피해지던지... 그 순간 이후로 나는 귀에서 소리가 들려서 힘들어, 따위의 푸념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안하게 된 이후로 그 소리의 존재는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그게 무섭고 힘들다). 나만 들을 수 있는 것에 대해 그 존재의 증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입을 다물었으니 세상에서 그 소리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어떤게 더 아플까, 라는 질문의 어리석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이명은 당사자는 괴로우나 세상사람들이 그 고통을 알수 없다는 서러움을 동반하는 질병이다. 간질이나 틱장애는 (내가 부러워하는)주변사람들의 위로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동정이 결코 위안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육체적 불편으로 인한 건강한 사람들의 편견 또한 큰 상처일 것이다. 생활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대화 말미에 그래도 아까 그 간질 아저씨가 나보다 더 힘들거라 생각해,라고 마무리 지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났다. 일어나 보니 아내 얼굴 반쪽이 굳어 있는 것이었다. 안면 마비라니... 감을 수 없는 왼쪽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고 웃을 때마다 얼굴이 더 이그러졌다. 왜지? 왜 내 아내에게 저런 황당한 일이 생긴거지?
눈물을 흘리며 웃는 아내에게 양희은 같네, 라고 말했다 아내는 내 유머에 더 크게 미소를 짓는다 웃으니 더 양희은 같았다. 아내의 꿈틀거리는 얼굴을 보며 노래 한 번 해봐~, 하고 한 번 더 놀린다. 아내는 또 웃는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면서...
안면 마비 환자가 흘리는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한단다. 감정과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 악어의눈물. 아내가 흘리는 악어의 눈물의 보면서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을 했다. 악어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은 눈이 말라 시릴 때까지 흐르는 악어의 눈물에 가려 진짜 눈물도 희석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