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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 아우또노미아총서 27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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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축적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현실 유토피아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자 최종 목적이기도 하다.

부의 축적이 인생사의 궁극의 목표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물질만능의 세상임을 부정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하지만 부의 축적을 과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최종 목적이라는 말에는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위의 도발적 명제는 염세적 시각의 내 말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 만능을 꿈꾸며 생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세상 만인이 한마음일리 없고 사람마다의 뜻과 목적도 다름이 틀림 없으니 첫 줄의 단정적 명제는 틀린 말이다.

그러나 정말 틀린 말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각각의 생각이라고는 하나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살고 커다란 벽에 갇혀 있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벽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없는 공통 운명임을 전제한다면 과히 틀린 명제도 아닐 것이다.
소트라테스는, 대중은 벽속에 갇혀서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밖에 인식할 수 없으며 벽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대중에게는 벽 너머의 세상에 대해 전해 줄 철학자가 필요하다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은 내 인식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인지자본주의>는 대중에게 철학자와 같은 책이다. 내게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가 없으니 <인지자본주의>와 같은 책을 통해 벽 너머의 세상을 알아간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우리는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에 의해 계획, 운영된다. 나는 '1노동력'의 가치로 표현되는 인간이라는 도구이다. 인간이라는 도구는 다른 모든 상품들과 다르지 않다. '1노동력'의 인간은 스스로가 자본 시장에서 상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으며, 영과 육의 에너지를 팔아 생존에 급급할 뿐이다.
노동력은 인간이 팔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인데 교환 대상자인 자본가(자본)는 그 노동력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불하지도 합당한 가치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자본가는 잉여라는 이윤을 얻는 것이 목적이므로 노동가치를 폄하해야만 잉여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노동자는 착취당하고 있음에도 그저 밥벌이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자본이 생장하고 번성하는 근원적 에너지 잉여가치. 
인간의 존재가치가 생산을 의한 도구로 전락하는 자본의 세상. 

자본주의라 하여 인간이 만들어 내고 필요에 의해 사회구조적 도구로 쓰는 가치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본에 의해 인간이 쓰여지고 있는 세상이다.
생체력을 이용한 육체 노동자, 인지력을 이용한 정신노동자, 그리고 자본에 결탁한 자본가와 정치인까지 모든 인간들은 자유 사고를 하며 노동력을 자유의지로 팔고 있지만 자본세상에서 진정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에야만 자본에의 구속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독립적 인지상태를 획득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자유 의지로 인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적 사고를 하는 인간과 대중.
여러 개층의(마르크스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같은 노동자라고 말하고 있다. )  노동자들이 스스로 착취의 대상임을 깨닫고 연합하여 자본에게 대항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성환님은<인지자본주의>라는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자본의 벽 너머에 대한 상상력을 일깨우고 우리가 착취의 대상임을 알려주는 우리 시대의 철학자가 또 한 명 나타났다.
(아쉽게도 대중은 돈 벌고 쓰기 바뻐 철학자의 외침을 새겨 들을 여유가 없다. 또 인간은 그것으로 어느 정도 만족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통해 본 노동자.
그들은 팔 수 있는 노동력 그 이상을 팔았고 그 초과 노동력은 자본가의 초과이익 즉 잉여가치였다. 자본이 잉여가치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악랄하기를 넘어 경이적이기까지 했다. 분업과 협업을 통해 창출된 잉여가치는 노동자들이 이뤄낸 것임에도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배당이 없었고, 기계의 도입으로 부녀자와 아이들이 싼값에 노동 현장에 투입되고, 일터를 뺏긴 건장한 노동자들은 하릴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은 세기와 대륙을 뛰어 넘어 아직도 진행형이다.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자본에 맞서 싸우게 된다. 거대 자본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은 힘은 미약하기만 하다. 하지만 응집된 노동자들의 힘은 자본도 당해 낼 수가 없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자본이 스스로 진화하여 인간의 인지력조차 통제하고 착취하고 있음을 인간이 깨달아야 하는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인간의 노동력을 생산의 수단으로 사용하던 과거의 자본가과 달리 지금은 인간의 인지력을 이용해 생산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지적 창작활동, 교육, 서비스 등등.. 산업 전반이 인지와 지적 작업에 의지하고 자본가는 지적 결과물을 교환, 생산가치로 인정되는 세상이 도래하였다. 인지 노동의 세상은 저자가 밝히듯 마르크스도 인식하는 부분이었으나 마르크스 조차 주요하게는 다루지 않았던 영역이다. 정신노동의 가치가 측량되고 그로부터의 잉여가 육체 노동의 잉여보다 커진 시점에서 저자는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자료와 수많은 철학자의 말을 빌어 작가는 인지적 삶에 대해 자각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본의 탄생과 도래과정, 농경, 상업자본주의, 산업 자본주의를 잇는 전환기적 자본주의의 실체까지 폭넓은 사유와 정보가 담겨 있는 <인지 자본주의>.
시공을 초월하여 세계적으로 사고하는 저자의 시선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눈 앞에는 우리의 현실문제가 나타난다.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자크 웰릘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사실 수월히 읽을만한 책은 아니다. 주제도 그렇거니와, 학술서 관념적 분위기와 저자의 개인적 관조가 뒤섞여 대중에게 전하는 이야기임에도 전혀 대중적이지 못하다. 독자를 배려를 안 한고 자기 할 말만 싣컷 했다는 인상이지만, 뭐 진심은 충분히 전달 될 수 있다고 본다. 
책 속 중간중간 저자는 우리 현실속 자본의 문제와 노동현장의 실태를 언급한다. 용산 참사와 촛불집회도 이미 역사가 되어 현재 사는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2011년 지금은 한진중공업 사태가 있다. 노동과 자본의 대립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승패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인격화된 자본과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대립, 아직 먹고 살 만한 노동자들의 관망은 또 다른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저자는 노동 역사의 진화에 이성의 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인간 이성의 힘이야말로 거대한 자본에 맞서 자본에 길들여지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성, 곧 인지적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지배 권력을 정복하고 그것의 부패한 제도를 해체하려는 물리적, 정치적 행동이 동시에 필요하다. 고 저자는 책을 맺는다.

자유주의가 회의적인 시기이기는 하지만 미약한 부분을 보완해서 자본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자본은 항상 그래왔다. 노동자들의 혁명이 있을 때 무너지는 듯하지만, 한걸음 물러나서 전열을 정비한 자본은 더욱 막강해져 다시 돌아온다.  

조정환 선생의 <인지자본주의>를 읽으며 또 한 번 경각심이 생긴다. 하지만 어떤 실천을 해야 할지 ,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는 자본의 족쇄를 스스로 끊을 용기가 있는가? 답은 '아니다' 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았다고 해서 문제를 풀기가 쉬운 일은 아닌 것처럼... 
고백하건데, 나는 자본의 품이 자연스럽고 자본에 의한 착취도 버틸 만하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모 연예 프로그램의 말이 생존언어인 양 자연스러운 시대. 내가 그렇다. 고개를 숙이고 나는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본과의 공생을 시도한다. 궁긍적으는 자본에의 권력을 나눠가지길 희망하는지도 모르겠다. 

약인지 독인지 모를 진실의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책을 통해 또 다시 혼란스러워지지만 내일의 내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바 어떤 것을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입발린 말도 못하겠다. 저자 말대로 인지만으로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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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7-16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좋아님 제가 쉬는 동안 이렇게 많은 글을 올리시다니 -.- 너무 좋아용~~

이 책은 저도 사기 위해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책입니다. 차좋아님의 솔직한 리뷰를 보며 많이 느껴요. 저 역시 똑같아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전 그래서 지금 공부를 하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자본의 족쇄에서 노동이라는 단어가 풀려나기를 바라며 말이죠.

현실은 참 지겹고 무서워요. 버릴 수도 없고 말이죠. 자본에 의해 매일 매일 지배 당하고 사니 말이에요.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를 할 수 있는 희망은 반드시 있다고 저는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 힘 내요. 차좋아!

전 솔직히 요즘 아파트에서 근무하며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지겨운 민원들 그리고 자신들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사람 들속에 숨 죽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도 그 수와 반대로 많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부족하지만 그런 분들의 평화를 위해 나름대로 불량 학생들에 대한 선도도 하고 있고, 위험 상황은 없는가, 또 어떻하면 좀 더 친절하게 해 줄 수 있는지를 사색하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약하다고 해도 해 볼려구요. ^^ 자본주의의 이 시대의 흐름에 기별도 안 가겠지만요.

차좋아 2011-07-18 12:51   좋아요 0 | URL
쉬시는 동안 논문을 하나 쓰셨더군요 ㅋㅋㅋ 저는 시간을 두고 읽어볼 참입니다. ㅎㅎ

아랫입술 깨무는 일이 많아졌어요. 자국이 깊이 날 정도로 깨물고는 화를 참고는 그 뿐이에요. 내가 뭘 해야 어떻게 해야하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들이 부렁루 때도 있지만, 저는 그러 입술만 꽉 깨물고는 눈을 감아버립니다.
그저 잊고자 달리고 달려요.
자본의 세상이든 흉포한 마음이 뻔히 드러나는 사람이든 그저 무서우니 혼자 있곤 해요.
속 편하니까....

저는 아무것도 안 믿어요. 저는 저만 믿는데 제가 너무 약해서 문제입니다.

esmeral 2011-08-3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웹진 <자율평론>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연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차좋아 님이 작성하신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서평글을 오는 9월 초 발행 예정인 <자율평론> 36호 게재할 수 있을지 문의를 드립니다.

<자율평론>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총 35호의 웹진을 발행한 계간 정치철학 웹진이며,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는 copyleft 웹진입니다. 그간 <자율평론>에 게재되었던 모든 원고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aam.net/xe/autonomous_review

<자율평론>은 인문학 강좌 공간인 다중지성의 정원, 독립 출판 활동을 하는 갈무리 출판사, 세미나 공간 다중지성 연구정원의 마디 단위로, 위 공간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지적 활동들의 성과들을 모아내고, 우리들의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원고료를 드리기는 어렵지만, 게재를 허락해 주신다면 웹진이 발행되는 대로 PDF 파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모쪼록 긍정적인 검토를 부탁드리며, 더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다면 아래 연락처로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자율평론> 편집위원회 김정연 드림
daziwon@waam.net / 02-325-2102

차좋아 2011-09-01 09:05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가져가셔도 됩니다. 도움이 된다면 저로서도 기쁜일이지요. ^^

자율평론 2011-09-0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게재 허락 감사드립니다. ^^
PDF 파일을 보내드릴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자율평론} 36호가 발행되는 대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차좋아 2011-09-01 11:34   좋아요 0 | URL
chajoa7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