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 캔을 따다가 피가났다. 심하게 베인 건 아니어서 개의치 않고 참치를 냄비에 털어 넣었다. 상처가 궁금해서 베인 손가락을 다시 봤다. 살짝 베인 게 아니었다. 어느틈에 손가락을 타고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베이자마자 봤을 때는 빨간 실 선처럼 핏기가 보였는데 금새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서 빨아 먹기 시작했다.처음엔 싱크대에 피가 떨어질까봐 얼떨결에 입으로 가져간 것이었는데 일단 입안에 넣고 나나 계속 피를 빨고 싶어졌다. 계속 빨다보면 멈추지 않을까? 아기가 손가락을 빨듯 손가락을 힘껏 빨았다. 왼 손으로는 가스밸브를 열고 참치 캔에 물을 받아 휘휘 행궈서 냄비에 쏟아 넣고 타.다다다다, 까스렌지 불을 켰다. 응? 갑자기 피맛이 안 느껴진다. 다 빨아 먹었나? 손가락을 꺼내 보니 손톱 둘레에 핏자국이 그대로다. 실선 같은 상처에서는 몽글몽글 피가 다시 베어 나온다. 다시 입으로.... 찌개를 맛있게 끓이기 위해 산들애를 한 스푼 넣고 좋아하는 두부를 숭숭 설어 냄비에 올리고 고춧가루도 한 스푼 뿌렸다.
한 손으로도 참 잘했다. 맛있게 차려진 찌개와 한 공기 밥을 보면서 대견해했다.'한 손으로 했다'
한 손으로 찌개를 끓이는데 특별히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피는 계속 흘러나왔다. 밥을 왼 손으로 먹을 수는 없었다. 왼 손으로 먹어본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와서 밴드를 붙이고 싶지도 않았다. 한 손으로도 잘 끓였는데 결국 오른 손이 필요했다.
입 속의 응급처치는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다. 쪽쪽 빨다보니 상처가 벌어졌다. 참 잘했어요,는 찌개 끓이기에만 유효했다. 참 멍청했다. 입맛도 없어졌다. 밴드를 붙였다. 금새 피가 비쳐서 한 장 더 붙였다. 그리고 잤다.
꿈을 꿨다. 오랜 만에 꿈이었다. 우리집 에 친구들이 놀러를 왔고 나는 싫어하는 친구 둘과 싸었다. 좋아하는 친구들이 날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좋지만 싸움을 하는 날 좋게 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거지 같은 꿈이었다. 피는 멈췄다. 꿈도 깼다. 핏자국은 남아있다. 꿈이 꿈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