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다. 그래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잠이 많아지고(혹은 적어지고) 청소도 못하고 밥도 못먹고 운동은커녕 우유 사러 가게에 나가지도 못하고 폭식을 하고(혹은 못 먹고) 뚱뚱해지고(혹은 마르고) 직장에서 성과도 못 내고- 그리고 다시 이 모양 이 꼴의 자신이 싫어지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싫어할 거라 생각하고 이 세상에 혼자밖에 없다 생각하고 죽으면 좋을 것 같고. 그래서 또 우울하고. 악순환이다. 주위 사람들은 도와주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으므로 도와줄 수 없다. 우울한 환자(!! 우울은 감기같은 병이다, 그러나 좀더 지독한 병이다)에게는 수백만의 시간과 수백만 번의 포옹과 수백만 번의 위로가 필요하다. 그런데 배우자도 친구도 선생님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므로 수백만의 시간과 수백만 번의 포옹과 수백만 번의 위로를 제공할 수 없다. 이해하기는커녕 왜 그 모양으로 사냐고 비난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때론 그 비난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세상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악순환의 고리는 우울한 환자 자신이 끊을 수밖에 없다. 주위 사람들이 이해하고 도와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니가 우울을 알아??!!(우울한 사람들의 한마음 같은 목소리) 덧붙임. 내가 부모로서 이 책에 밑줄친 부분 세 곳. 의도적이지 않게 부모가 자녀에게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만약 네가 옆집에 사는 톰처럼 좋은 아이라면...”, “우리는 네가 이러이러한 아이일 때만 사랑하겠다”, “모든 수업에서 A를 맞아야만 너를 인정하고 사랑하겠다”라는 조건부적인 사랑을 제공할 때 자녀들은 자기 가치에 의심을 품게 된다.(낮은 자존감은 우울을 부른다.) 아이들은 사소한 일을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오해할 수 있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책을 읽어주시겠다고 전화가 오니까 다른 방으로 가버렸어.” 전화벨 소리만도 못하다고 느끼게 된다면, 그 아이는 스스로 전혀 가치가 없다고 믿을 수도 있다.(아동기의 경험은 인생을 좌우한다.) “울지 마!” 다섯 살 된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엄마를 본 적이 있다. 그 아이는 그의 진짜 감정을 숨긴다. 그리고 상처받은 그 아이는 어딘가로 도피한다. 그 아이가 나중에 불량배가 된다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다. 그 아이에게 소리 내어 울게 해주는 게 좋은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감정이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를 표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억눌린 감정은 어느 순간 폭발하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어 부모를 황당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